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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뜐뜐 Aug 20. 2021

소개팅_01

첫 번째 이야기

미국 유학 시절 친했던 친구가 대뜸 연락이 왔다. 나에게 외롭냐고 물어봤고, 나는 고민 없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나에게 카톡 프로필을 건네줬다. 사실 자기가 졸업하고 한국에 돌아가면 소개팅을 받기로 했다나 뭐라나. 여튼 전해 듣기로는 성격이 강해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 만나보면 다를 수 있지 않겠냐며 약간의 우려심을 표하면서도, 만나보는 게 좋겠다고 나를 다독였다. 그래. 나는 일단 알겠다며 친구에게 연락처를 건네받았고, 소개팅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던 계절. 나의 첫 번째 서른 살이었다.




전화번호를 저장하고, 카톡 프로필 사진을 봤다. 잔뜩 취해 보이며 무척 신나 보이는 그녀와, 여럿 남자들과 함께 있는 그런 프로필 사진. 근데 그 여럿 남자들도 쇼미 더 머니에서 봤던 래퍼들. 예상대로 느낌이 좋지는 않았다. 그래도 일단 카톡을 보내 봤다. 안녕하세요 날씨가 좋네요, 언제 볼까요. 이런 상투적인 말들을 건넸다. 그녀도 날씨가 좋다며, 이날 보는 게 좋겠다며, 그럼 그때 보자고 날짜와 장소를 잡았다. 현충일 오후 5시, 그리고 장소는 남산이 보이는 경리단길 레스토랑으로 예약을 했고 녹사평역 2번 출구에서 그녀를 만나기로 했다.


그렇게 며칠 , 나는 녹사평역에 도착했다. 약속 시간보다 15분이 늦어도 오지 않는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봤다. 전화를 받은 그녀는 지하철을 반대로 타서 늦는다고, 그래서 미안하다고 한다. , 그럴 수도 있구나. 태어나서 처음 들어본 신박한 변명이었기에 그냥 알겠다며 천천히 오시라고 전화를 끊었다. 소개팅 처음이라 긴장했던 나는, 녹사평역 출구 뒤에서 호흡을 가다듬고 최대한 자연스러운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노력하고 있었다. 소매를 걷었다 내렸다, 재킷을 입었다 벗었다를 반복했지만 어떤 것도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눈앞 도로에는 아지랑이가 피어올랐고, 6 따가운 햇볕의 스포트라이트는 나를 향해 있었다. 순간 멀리서 그녀의 손짓과 목소리가 들렸고, 나는 안녕하세요라는 말을 반사적으로 건넸다. 늦어서 미안하다며 말을 건네는 그녀를 봤는데, 웬걸. 사람이 이렇게 예뻐도 되나 싶었다.


마음은 갑자기 두서없이 쿵쾅거렸고, 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목적지로 향하는 좁은 길가에는 사람들과 차들로 가득했다. 그들의 열기와 6월의 열기가 만나 눈치 없는 땀은 겨드랑이 주변을 감싸기 시작했고, 예약한 레스토랑까지 걸어서 10분 정도 더 남았다고 말하는 구글맵이 야속하기만 했다. 그리고 하필 언덕이라니. 경리단길이 언덕에 있는지 몰랐다. 가는 동안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막막했고, 그녀의 왼쪽에 서야 하나 오른쪽에 서야 하나 잘 모르겠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레스토랑에서 만나지 않고 왜 녹사평역에서 그녀를 만났는지 이유를 정말 모르겠다. 나는 분명 멍청이가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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