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이야기
연애를 줄곧 잘해오던 편이었다. 그렇다 할 외모는 아니지만 그래도 나를 좋다는 사람 한 둘은 있었다. 고백을 해본 적은 없었다. 나를 좋다는 사람에게 고백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저 듣고 싶어 하는 그 표현, 우리 사귀는 거야? 이 정도. 재수 없다고 들릴 수는 있겠지만, 재수 없어할 필요는 없다. 그저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질이나 하던 게 내 연애였으니까. 그동안 연애의 빈틈이 없었기에 나이 서른이 되도록 소개팅 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짐의 반복이 무색했다. 설렘과 슬픔의 감정선이 느껴지지 않았달까. 무책임하게 끝을 맺었던 과거의 연애가 무의미하게 느껴졌고, 그 시간들이 아까웠다. 목 끝까지 차오르는 나이라는 숫자는 연애가 아닌 결혼을 생각하게 만들었고 나는 점점 숨이 막혀갔다. 나의 형편없는 연애도 골치 아픈데, 결혼이라니.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미국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을 하게 되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나의 쉼 없던 연애는 이제 끝이 났다. 사회에 나를 맞춰보려 안간힘을 써봤고, 잘 들어맞지 않는 나 자신이 싫어졌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에서 나 자신은 점점 희미해져 갔다. 가로등에 비친 내 그림자도 내가 아닌 것 같은 그런 기분. 마음 한켠에 묻혀있던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우연찮게 친구의 권유로 소개팅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을 만난다니, 무모함과 설렘이 공존했다. 일단 소개팅 장소로 나갔다.
멀리서 그녀가 걸어왔다. 늦어서 미안하다며 인사를 건네는 그녀를 보는 순간,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시간이 멈췄다. 그녀의 미소에서는 빛이 났고, 모든 감각은 그녀를 향해 있었다. 나의 흑빛 인생에 색채가 풍부한 사람이 나타났다. 여태껏 만난 사람 중에서 단연 화려했다. 생각지도 못했다.
예약했던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남산타워가 한눈에 보이는 테라스 좌석에 앉았다. 그녀가 맛있겠다며 고른 메뉴들은 무엇이 들어간 건지 도통 모르겠지만, 일단 맛있겠다며 나도 좋아하는 메뉴라고 대답하고 있었다. 그녀는 레몬이 들어간 코로나 병맥주를 시켰고, 나는 무알콜 모히또를 시켰다. 어떤 대화가 오고 갔는지는 흐릿하지만, 그녀의 말투에는 자신감이 넘쳤고 듣고 있는 나는 주눅이 들었다. 대화 내내 끌려다니다, 결국 마음까지 내어주게 되었다.
다시 한번 만나보고 싶었다. 집으로 돌아와 그녀에게 연락을 해봤다. 오늘 정말 즐거웠다고. 하지만 카톡 채팅방의 1은 지워지지 않았고,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혹시나 메시지가 도착하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몇 번 더 연락을 보냈지만, 역시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함께 있던 시간이 나쁘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이것은 나의 착각이었나 보다. 질척거려볼까 고민도 했지만, 그녀의 마음을 돌릴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그녀와 끝이 났다.
며칠 후, 소개팅을 시켜줬던 친구한테 연락이 왔다. 어땠냐고 물어봤고, 나는 뭐 그럭저럭 나쁘지는 않았다며 마음을 숨겨버렸다. 친구는 뭐, 알겠다고 다음에 다른 사람 소개를 해주겠다며 나에게 위로를 해주는 말투였다. 분명 내가 까였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게 느껴졌지만, 나도 내색하지는 않았다. 나는 일단 알겠다며, 요즘은 바빠서 다음에 연락하자고 대화를 마쳤다.
그러다 다음 날, 그녀에게 카톡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