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꿈 방문자 08화

아빠가 남기고 간 것

by 하늘위로


아빠가 내게 남겨둔 유품 상자를 열었다. 대체 그게 무엇이기에 100억이라는 돈의 가치를 매긴단 말인가, 상자에는 딱히 뭔가가 들어있지 않았다. 오래된 사진들이 든 앨범, 오래된 책 몇 권, 아끼던 만년필, 지갑, 통장, 수첩, 필통, 일기장, 노트북, 외장하드 그리고 두 개의 결혼반지...


평소에 정리를 잘하던 아빠다웠다. 필요 없는 것들은 그때그때 정리했기에, 아빠가 지내던 집을 정리할 때도 힘든 것이 없었다. 단출하게 옷 몇 가지, 전문서적들 그게 다였다. 식사는 단골 식당에서 매 끼니를 해결했고, 주방에도 찻잔 몇 개와 티백 몇 가지, 원두 그리고 커피 내릴 때 쓰는 물건밖에 없었다. 필요 없는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은, 공간의 소모라고 말했던 아빠다웠다. 그 외에 아빠가 소중히 여겼던 것은 고스란히 단단한 철제 상자에 넣어진 채 내게 전달되었다. 잠든 채 그대로 깨어나지 못한 아빠는 마치 자신의 죽음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완벽히 정리를 마친 후 떠났다. 철제 상자의 비번은 내가 처음으로 아빠에게 아빠라고 부른 날이었다. 아주 오래전 그날 그 순간을 아빠는 소중히 여겼고, 그 비번은 오직 아빠, 엄마 그리고 나만 아는 날짜였다.


나는 사실, 아빠가 하고 있던 연구를 아예 모르고 있지는 않다. 그토록 사람들에게 다정하고 선한 아빠는, 엄마가 떠난 후 내내 복수만을 꿈꿨다. 아빠는 꿈속에서 몇 번이고 엄마를 죽게 만든 그를 죽이러 갔다고 고백했다.


"지선아, 아빠가 그놈 꿈속에 들어가 그 사람을 죽도록 고통스럽게 할 수 없을까..."


아빠는 울면서 내게 말했다.


"꿈속에서라면 죄가 되지 않을 수 있잖아."


아빠는 그의 꿈속으로 들어가, 그를 죽이려고 마음먹었다. 그게 내가 알고 있는 아빠의 비밀 연구였다.


그 후엔 모르겠다. 그 연구가 얼마나 진행되었는지, 지나가는 말처럼 가볍게 물어도, 그 이야기만 나오면 아빠는 입을 꾹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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