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학적 소비 2
이 책을 집에서 쓰기가 참 어렵다. 아이들이 “아빠, 놀자!”라며 나를 찾기 때문이다. 그래서 코로나가 심각할 때는 한적한 장소에서,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주로 동네 도서관에서 글을 썼다. 도서관에 가면 수많은 사람들이 늘 앉아 있다. 도시락을 먹을 수 있는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어 나는 항상 도시락을 싸서 다녔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많은 사람들 중 도시락을 먹는 사람이 거의 나밖에 없다는 점이다. 대부분 근처 식당에서 사 먹는다. 나는 속으로 ‘이분들, 돈이 새고 있구나’라고 생각한다. 도시락을 싸서 다니면 돈을 아낄 뿐 아니라, 식당에 가는 시간, 음식을 기다리는 시간, 그리고 도서관으로 돌아오는 시간을 모두 절약할 수 있다. 이렇게 새는 시간과 돈만 막아도 부에 더 빨리 다가갈 수 있다.
나는 금융사에서 세일즈맨으로 18년을 일했지만, 정장은 늘 한 벌이었다. 여름에만 입는 얇은 정장 한 벌을 더 갖고 있긴 했지만, 그 외에는 매일 같은 정장을 입었다. 주말 아침에 세탁소에 맡기면 밤에 나오므로 더 많은 옷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양말 10켤레 중 5켤레는 늘 구멍이 나 있다. 하지만 아무도 모른다. 좌식 식당에 갈 때만 간혹 남들이 볼 수 있긴 하지만, 사람들은 내가 원래 구멍 난 양말을 신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오늘 다니다가 구멍이 났다고 여길 확률이 높다. 물론 구멍이 너무 커지면 나도 버린다. 평생 동안 브랜드 있는 운동화를 단 두 번 샀다. 두 번 모두 서른이 넘어서 부자가 된 후에 샀고, 6만 원대의 나이키 운동화였다.
마트에 가면 ‘요즘 비싼 것’과 ‘요즘 싼 것’이 항상 있다. 얼마 전에는 계란 한 판이 1만 원이 넘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는 그냥 안 먹으면 된다. 계란 대신 ‘요즘 싼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생일이나 기념일처럼 특별한 날이 아니고서야, 또는 그날 특별히 먹고 싶은 음식이 아니라면, 그때그때 저렴한 식재료로 끼니를 해결한다. 보통 이런 ‘싼 것’들은 제철 음식일 확률이 높아서 오히려 몸에도 더 좋다.
한 친구가 제주도 호텔에 놀러 온 적이 있었다. 저녁을 먹기 위해 호텔로 가서 피자와 치킨을 배달해 먹었는데, 피자 두 조각과 치킨 몇 개가 남았다. 친구가 바로 쓰레기통에 버렸다. '내가 가져갈 테니 버리지 마'라고 말할 틈도 없었다.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남은 배달 음식을 다음날 반찬으로 먹곤 하는데, 그날은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친구가 부자 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국물을 내고 남은 멸치나 무, 새우, 대파 등은 따로 용기에 담아 둔다. 식사할 때 간장이나 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훌륭한 반찬으로 변신한다. 솔직히 맛있지는 않지만, 그냥 버리기에는 아깝지 않은가?
어느 대기업의 회장님이 고객을 접대하기 위해 골프를 치며 수십만 원, 수백만 원을 쓰지만, 찢어진 골프 장갑은 만 원짜리라도 꿰매서 사용한다고 한다. 본받을 만한 행동이다. 그리고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회사에 수백억 원의 이익을 안겨다 줄 수도 있는 고객을 상대하려면, 골프 비용으로 수백만 원은 써도 된다. 그러나 만 원이 아닌 오천 원짜리 장갑이라도 꿰매서 더 쓸 수 있다면 왜 새것을 사야 하는가?
짠돌이로 유명한 방송인을 TV에서 본 적이 있다. 그의 검소함이 내게는 당연한 행동으로 보이는데, 사람들은 그에게 감탄한다. 이런 검소한 습관은 마땅히 본받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게다가 좋은 행동이지 않은가? 자연과 환경에도, 타인과 나 자신에게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