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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담 Mar 22. 2021

역사탐방에세이 1화

 프롤로그

   정통사극 드라마 ‘조선왕조 오백년’를 보면서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배우들의 말과 행동과 표정을 보면서 역사 속 인물들의 욕망과 좌절과 회한을 짐작하곤 했다. 드라마가 끝난 뒤에도 쉽게 잠들지 못하고, 국사대백과사전과 인물대백과 사전을 펼치고, 고구마줄기를 걷어 올리는 것처럼 파고 들어갔다. 예를 들어, 인수대비가 나오면 인수대비에 관한 것을 찾아 읽고, 한확의 딸인 것을 알게 되면, 다시 한확을 찾아 읽고, 한확을 찾아 읽다 한확의 누이들이 명나라 공녀로 갔다고 나오면, 명나라 공녀로 간 한확의 누이들을 찾아 읽는 식이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뿌옇게 날이 밝아오기도 했다.  

금성당 전경


   2013년 봄에 이사를 했더니, 세종대왕의 여섯째 아들 금성대군을 모신 금성당이 바로 코앞에 있었고, 세종대왕의 서장자인 화의군의 묘가 산책로에 있었다. 화의군은 금성대군보다 한 살 위로 탄생 순위로는 6남이지만, 보통 9남이라고 한다. 정비 소헌왕후의 소생인 여덟 명의 대군들 뒤로 순서를 매기기 때문이다. 화의군 묘역을 관리하는 관리인을 만나 화의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얼굴에 화색을 띠며 굉장히 반가워해서, 혹시 화의군의 후손이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금성대군과 화의군은 단종 폐위에 반대했던 단종의 숙부들로 훗날 세조가 된 그들의 형으로 인해 사약을 받고 죽음을 맞이했다. 그 관리인에게 20세에 요절한 세종의 다섯째 아들 광평대군이 생선 가시가 목에 걸려 굶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광평대군이 태어났을 때 사주점을 보게 했는데 굶어 죽는다는 점괘가 나와서 분가시킬 때 많은 재산을 하사하였다고 했다. 삼성의료원이 있는 일원동 일대가 광평대군이 하사받은 땅이라고 했다. 태어날 때부터 대군 신분으로 태어났는데, 굶어 죽을 일이 있을까 했지만, 기가 막히게도 굶어 죽었다는 것이다. 목에 생선 가시가 걸려 음식을 먹을 수 없었던 것이다. 세상에나, 이런 기막힌 일이. 자식이 목에 걸린 생선 가시 때문에 눈앞에서 굶어 죽어가는데 어떤 부모가 고통스럽지 않겠는가. 세종대왕과 소헌왕후는 광평대군 죽음 이후에 급속도로 건강이 나빠졌다고 했다. 세종대왕은 무척 자식들을 사랑했던 왕이었다고 했다. 지금도 후손들은 세종대왕이 자기네 조상을 얼마나 사랑했었는지 경쟁하듯 이야기한다고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는데 무척 재미있었다. 먼 옛날 왕가의 일이 얼마 전에 일어났던 일처럼 생생하게 느껴졌다.  

 

화의군 묘역


  천년 고찰 진관사도 근처라 자주 산책을 다니는 곳이다. 진관사는 고려 현종과 인연이 있는 절이기도 하지만,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수륙제를 지낼 것을 명한 절이기도 하고, 세종의 한글 창제에 관련된 장소이기도 하다. 어느 날 아파트 베란다에서 바라보니 큰 건물을 짓는 게 보였다. 산책 삼아 나가보니 한국고전번역원이 이전해 올 건물을 짓는 거였다. 이게 뭔 복이람. 나도 몰래 탄성이 나왔다. 그렇게 역사에 대한 관심이 다시 되살아났다.      

  

진관사


  2015년 지역문화원에서 향토문화해설사 교육생을 모집한다는 공고문을 보고 지원하였다. 서울에 대한 대략적인 역사와 유적, 지역에 있는 문화재에 대한 것들을 공부하고 답사했다. 해설을 들으며 답사하니, 아는 만큼 보인다고, 비석에 있는 문양 하나, 글자 하나 다 의미 있게 다가왔다.


  해설을 들으며 답사를 다닐 때, 언젠가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 구석구석 역사적 장소들을 찾아 역사 탐방에 나서리라 다짐했었다. 2020년 2월 드디어 30년 넘게 해오던 일을 정리했다. 이제 마음속에 품었던 소망들을 실현할 그 시간이 된 것이다. 그런데 웬걸, 처음 경험하는 사태가 터졌다. 듣도 보도 못한 역병 코로나가 우리를 덮친 것이다. 옛사람들이 역병이 닥쳤을 때 얼마나 허둥대었는지 짐작되었다. 역사 탐방은커녕 친구를 만나 밥을 같이 먹거나 커피를 마시는 일조차 눈치가 보였다. 일상이 무너진 것이다. 있을 때 잘해, 라는 유행가 가사가 생각났다. 평범한 나날들이 너무 그립고, 그저 그런 소소한 날들이 실은 너무나 소중했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1년이 지났지만 무너진 일상은 회복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나이를 한 살 더 먹었다. 친구가 가볍게 넘어졌는데 요추 1번이 금 가고 내려앉아 병원에 입원해 누워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예전 같으면 크게 넘어져도 다치지 않고 벌떡 일어났을 텐데, 조그마한 핑계거리에도 뼈가 금 가고 어긋나는 나이가 된 것이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우리 부모들도 그렇게들 나이를 먹었다. 서글프지만 어쩔 수가 없다. 더 늦기 전에 계획했던 역사 탐방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게 일어났다. 아직도 다섯 명 이상은 밥도 같이 먹지 말라는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행 중이라 같이 탐방하겠냐고 물어보기가 조심스러웠다. 코로나 시대에 누군가와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위험부담을 서로 지는 것이기도 하니까.      


  처음에는 혼자서라도 나설까 했다. 그래도 벗이 있어 같이 간다면 좋을 거 같아 조심스레 역사 탐방에 대한 소망을 말했더니, 지호맘과 경찬맘이 같이 하겠다고 나섰다. 그렇게 의기투합해 길을 나섰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흘러가는 순간의 일부분을 함께 하는 사람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 탐방을 같이 하는 지호맘과 경찬맘은 내게 매우 소중한 사람들이다.      

  

  우리가 탐방하면서 알게 된 것들, 대화하면서 느꼈던 소회들, 마음에 왔다 간 생각들에 대한 것들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일부분이나마 붙들어 기록해 보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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