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이 사랑에 빠질 확률은 흔히들 기적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일과 사랑에 빠질 확률은 얼마나 될까?
안타깝게도 수치적으로 계산을 할 만큼 뛰어난 수학능력을 가지지 못한 나는 그 확률을 계산하지는 못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연인이 사랑에 빠질 만큼이나 일과 사랑에 빠질 확률은 극도로 낮다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즐겁게 공부하고 전공을 하더라도, 그것이 생계수단이 되는 순간 그리고 현실 속 제도와 비벼지는 순간 달콤하던 나의 일은 어느새 맵고, 짜고, 쓴 맛으로 변해 버린다.
지금부터 이야기할 6년간의 내가 사랑했던 일에 대한 이야기는 우연을 가장한 기적처럼 나에게 다가왔다.
2014년 대학 졸업 후 변변찮은 직업 없이 자대 행정조교를 하며 지내던 시절, 우연히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한국에 오셨다. 국빈 방한이자 전국을 다닐 만큼 큰 행사였기에 가톨릭 홍보부는 빠르게 통역 봉사자를 모집하기 시작했다.
15살 세례를 받자마자 냉담*에 들어갔다 갓 몇 주 전 다시 성당을 다시 나가고 있었던 나는 무슨 자신감에서였는지 통역봉사에 지원해 봉사자가 되었다.
*냉담: 쉽게 말해 '나일론'신자로 세례만 받아두고 성당은 전혀 나가지 않는 신자다.
그때 바로 6년 동안 하게 되었던 일 '공보·국정홍보·외신홍보'를 처음 알게 되었다. (언론 쪽을 준비하시는 분께는 정말 죄송하지만 저런 일이 존재한다는 것조차, 문체부에서 저런 일을 한다는 것조차 몰랐다. 다만 (냉담을 깨고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주제에) '외신홍보'팀에 배정되어 교황님 그림자도 한 번 구경할 수 없이 프레스센터에서 일주일 동안 기자들만 상대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도 실망스러웠다.
애써 실망감을 감추고, 그렇게 일주일의 봉사를 마친 후 해당팀 전문관님이 우리에게 얘기했다. "센터 데스크에 인턴이 필요하다."라고. 하루에 4~5시간 근무, 월급 20만 원. 한창 취업을 해서 용돈을 안겨드려도 모자랄 나이 스물여섯에 나는 인턴을 하겠다고 덤볐다. 그나마 100만 원이라도 받던 조교자리를 박차고서 말이다.
하지만 센터에서의 인턴 생활은 꽤나 재미있었다. 아직까지 내 소중한 동생이 되어준 친구를 만났고, 기자들과 그토록 원하던 외국어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일을 하는 환경이 좋았다.
그렇게 4개월의 인턴기간 도중 해당 팀의 갑작스러운 공석이 생기면서 우연히 그 자리에 지원할 기회가 생겼다. 열심히 시험을 준비하고 정말 최선을 다해 면접을 치르고 드디어 정식으로 내 일을 갖게 되었다.
인턴 때부터 말할 필요도 없이 하루하루의 출근은 너무도 재밌었고, '세상에 이런 일이?!'있구나 라며 가끔 찾아오는 작은 산들바람에는 흔들림도 없이 즐거운 톱니바퀴가 되었다.
신이 내려주신 우연을 가장한 운명 같은 일과 나는 사랑에 빠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