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말씀하신 것보다 개 상태가 훨씬 별론 데요? 아무리 특가라도 그렇지 이걸 어떻게 팔아요?”
“아 얘가 나오면서 모견이 뒤통수를 좀 할퀴었는데, 얼굴도 이 정도면 나쁘지 않고, 샵에서 일단 싸게 분양해 보시다가 안 되면 저희가 AS 해드릴게요. 천성적인 건 아니라 약욕 샴푸 좀 하고 그러면 땜빵은 금방 나을 거예요.”
그리고는 갑자기 내 머리를 걱정해주던 인간이 나를 큰 손으로 쥐어 들어 올렸다.
“놔! 난 엄마에게 갈 거야! 놓으란 말이야!”
힘껏 발버둥을 치고 소리를 질러 보았지만 그럴수록 그 사람은 나를 더욱 꽉 쥐며 말했다.
“이 새끼 엄청 발버둥 쳐대네.”
“툭!”
나는 엄마의 비명을 뒤로하고 컴컴한 종이박스 안으로 던져졌다. 박스 바닥은 엄마의 변을 머리 위로 맞던 그곳처럼 차갑고 덜컹덜컹 무서운 소리가 났다. 퀴퀴한 냄새는 아니지만 알 수 없는 박스의 누린내가 코를 찔렀다. 내 머리가 아프진 않을까 걱정해주던 착한 사람이었는데, 왜 갑자기 나를 엄마랑 떼어놓는 거지?
엄마에게 나는 똥이라도 좋으니 엄마 옆에 있고 싶었다. 이미 떠나버린 형, 누나들이 없어도 엄마 젖을 먹고 싶었다. 난 엄마 젖도 많이 먹지 못했단 말이야. 보이진 않지만 옆에 있는 다른 친구들도 나처럼 무서운지 모두 깨갱깨갱 울고 있었다. 형과 누나도 이렇게 다른 곳으로 떠나간 걸까? 난생처음 토가 나오고 힘이 빠져 무서울 기운조차 떨어져 갈 그때, 상자의 흔들림이 멈추기 시작했다. 엄마와 살던 곳에 있던 큰 개소리와 같은 모터 소리도 드디어 멈추었다.
“오늘 총 열다섯 마리 들여왔어요. 프리미엄 다섯 마리 일반 아홉 마리, 특가 한 마리.”
“아무리 특가라도 그렇지 땜통이 대가리를 다 덮었는데 팔 수 있겠어? 넌 여기서 일한 지가 얼만데 아직도 개장수한테 속고 다니냐?
“안되면 AS 해준대요. 특가 미끼 한두 마리는 둬야죠. 어디다 둘까요?”
“에라이, 실속 없는 놈. 일단 씻겨야 되니까 세척실에 모아둬.”
뚫린 구멍 틈으로 보이는 밖엔 엄마는 없었다. 하지만 엄마와 있던 곳 보다 훨씬 깨끗해 보이는 곳에 나와 같은 아기 개들이 칸칸이 들어차 있었다. 여기저기 문을 긁는 친구, 잠에 들어있는 친구들이 수십 마리가 모여 있었다. 그 친구들이 있는 곳을 지나쳐 다시 나는 다른 친구들과 함께 바닥에 놓여졌다. 그래도 무서운 모터 소리도 추운 바람도 불지 않아 한결 나았다.
“툭! 툭툭! 툭”
갑자기 상자를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동그란 상자 틈새로 나와는 다른 하얗고 예쁜 친구가 나를 보며 생긋 웃으며 물었다.
“너는 이름이 뭐야?”
“나는 그냥 ‘개’야. 너는 이름도 있니?”
“나는 별이야. 너 머리는 왜 그래?”
“엄마를 찾다가 이렇게 되었어.”
별이와 인사를 나누는 찰나 별이의 상자가 밖으로 옮겨졌다. 별이는 얼굴도 예쁘고 이름도 예쁘구나. 그것보다 개에게 이름이 있다니. 내 이름은 똥이라고 소개를 할 걸 그랬나? 새삼 별이가 부러웠다. 별이는 어떤 곳에서 왔기에 예쁜 이름도 있는 걸까? ‘그냥 개’, ‘똥’인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던 찰나 누군가가 나를 박스에서 쥐어 올렸다. 그리고는 따뜻한 물로 나를 씻기 시작했다. 흐르는 물이 너무 무서워 소리를 질러보았지만 그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옆엔 다른 새끼 개가 나와 같이 배가 뒤집혀 씻겨지고 있었다.
“아 냄새! 얘는 똥 밭에 구르다 왔나 왜 이렇게 똥 범벅이냐? 그냥 살아있는 똥이네. 똥!”
“그 똥보다도 머리에 땜통은 뭐냐?”
“몰라 농장에서 사고 쳤나 보지 뭐.”
“걔 뚝배기 땜통은 꼭 누가 후려갈겨놓은 것 같다 야. 이제부터 얜 뚝배기라 불러야겠다. 아 그리고 걔 약욕 샴푸로 씻겨라 땜통에 털 생기게”
“뚝배기 이놈은 나자마자 원형탈모네.”
신난다. 갑자기 나에게 이름이 생겼다. 나는 뚝배기다. 더 이상 나는 ‘그냥 개’, ‘똥’이 아니다. 하지만 이름이 생긴 기쁨도 잠시 더 이상 내 몸에서 엄마의 변 내가 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엄마의 젖 냄새보다 더 많이 맡은 엄마의 똥 냄새는 엄마를 기억할 수 있는 유일한 냄샌데, 이제 어떻게 엄마를 찾아가야 할지 막막했다.
“자 뚝배기! 들어가!”
나를 씻겨준 사람은 불이 켜져 있는 따뜻한 찬장 맨 끄트머리 즈음에 나를 집어넣었다. 변 내도 나지 않고 물도 있고 무엇보다 밥이 있었다. 엄마 젖도 제대로 먹지 못했던 나는 허겁지겁 눈 앞의 밥을 먹어 치우고 나서야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어! 별이다!’
반대편 찬장에서는 이미 깨끗이 씻은 별이가 잠을 청하고 있었다.
“별아! 여기야 별아!”
하지만 너무 멀어서인지 별이는 나를 보지 못했다.
찬장을 꽉 메운 새끼 개들은 모두 잠을 자고 있었다. 어느 칸엔가 형과 누나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열심히 찬장을 둘러보았지만, 형과 누나는 보이지 않았다. 그날 밤 처음으로 엄마가 없는 곳에서 잠을 청하게 되었다. 분명 따뜻한데도 엄마의 품이 더욱 그리웠다. 하지만 끔찍했던 엄마의 마지막 모습에 눈을 꾹 감고 잠을 청했다. 하지만 이내 슬슬 몸이 간지럽기 시작했다. 분명 따갑긴 해도 물로 깨끗이 씻었는데 왜 이렇게 온몸이 간지러운 걸까? 몸을 긁자 몸에선 하얀 가루가 떨어져 나왔다.
다른 칸에선 이런 상황이 낯설지 않은지 잠이든 큰 개들과 나처럼 낯설어 밤잠을 설치며 짖어대는 강아지들의 소리가 뒤섞였다. 하지만 역시 가장 서글픈 건 ‘엄마의 똥’이 아닌 ‘뚝배기’가 되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