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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뚝배기 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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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스타시아 Dec 28. 2020

3. 뚝배기

저녁의 허기짐에 눈을 떴다. 여전히 어젯밤 밥이 담긴 곳은 비어 있고 물만 가득했다. 물로 허겁지겁 배를 채우고 이내 소변을 봤다. 소변을 보고 나니 내가 누울 자리가 더욱 좁아졌다. 몸을 웅크리고 얼마쯤 다시 잠을 청했을까? 따뜻한 햇살을 대신해 내가 누워있는 장에 하얀 불이 켜졌다. 그리고는 이내 내 밥이 담겼다. 


“김 매니저! 얘가 뚝배기야?”


“응.”


“너 어쩌려고 이걸 돈 주고 사 왔어? 점장님이 뭐라고 안 하셔? 앞으로 그 농장은 거래 끊어야겠다. 얘 파는 돈만큼이나 먹이고 씻기는 돈이 더 들겠어. 이런 걸 사가는 호구가 어디 있겠냐?”


“안 그래도 한 소리 들었어. 어쨌든 안 팔리면 AS를 해주든, 도로 가져가든 한댔으니 일단은 팔아야지. 그렇다고 멀쩡한 놈을 특가 분양하긴 아깝잖아.”


나를 씻겨준 사람과 밥을 가져다준 사람은 한참을 내 앞에 서서 실랑이를 하다 다음 밥그릇을 들고 별이에게로 갔다.

“아이고 예뻐라. 얘는 가정 분양?”


“전문 캔넬.”


“뚝배기랑 때깔부터 다르네.”


저 멀리 별이는 창 앞으로 이름만큼이나 예쁜 ‘프리미엄’이라는 별이 달려있었다. 별이는 나처럼 ‘그냥 개’는 아니었나 보다. 별이도 엄마랑 금방 떨어지느라 슬펐겠지? 별이도 엄마한테 버림받았을까? 


“띠리링”


그 순간 일제히 새끼 강아지들은 일어나서 꼬리를 흔들며 반기기 시작했다. 저 사람들은 누구기에 저렇게 반갑게 반겨주는 걸까? 혹시 우리를 엄마에게 데려다 줄 사람인 걸까?


뚝배기는 신기한 눈으로 꼬리를 흔들며 온갖 애정을 쏟아내는 강아지들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오직 뚝배기와 같이 들어온 강아지들만 뚝배기처럼 어리둥절하게 새로 들어온 사람들을 쳐다볼 뿐이었다. 나에게 밥을 주던 사람은 밥 주기를 멈추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어서 오세요. 어떤 종으로 찾으세요?”


“흰색에 털이 많이 안 빠지는 종이 었으면 좋겠는데…….”


“털 빠짐이 고민이시면 푸들이나 말티즈를 추천드려요. 털 길이도 적당하면서 빠짐이 적어서 꾸준히 나가는 종 중에 하나죠. 저희 안 그래도 어제 예쁜 혈통 좋은 친구로 토이푸들이 한 마리 들어왔는데 보시겠어요?”


“저희는 포메라니안이나 스피츠가 예뻐서 생각해보고 왔는데 털 빠짐이 심할까요?”


“포메라니안이나 스피츠는 털이랑 한 몸이다 생각하고 키우셔야죠. 푸들도 보시면 마음 바뀌실 거예요. 요즘 중형견이 인기이긴 해도 토이 푸들은 꾸준히 잘 나가는 견종이라 한 번 보세요 어제 들어온 친구예요.”


그 사람들은 별이에게로 향했다. 밥을 주던 사람은 끊임없이 그 곁을 맴돌며 별이 칭찬을 했다. 


“이 친구는 전문 캔넬에서 태어난 친구고 가격대는 있어도 연계 병원, 미용 서비스도 제공해드려요.”


“그래도 삼백 만원은 좀 비싼데…….”


“그렇게 느끼실 수도 있겠지만, 프리미엄인 아가인 만큼 저희가 특별히 관리를 해드려요. 꺼내서 한 번 보여드릴게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조금 뒤 서빙 카트에 예쁘게 앉은 별이가 나왔다. 별이는 나에게 어디에 있었냐며 드디어 눈인사를 건넸다.


“어우 얘 귀여운 것 좀 봐, 자기야. 그럼 얘로 데려갈게요.”


“이쪽으로 오셔서 계약서 작성하시고, 저희가 씻겨서 데리고 가실 수 있게끔 미리 준비해두고 내일 데리고 가시는 게 좋으실듯한데 방문 예약은 몇 시로 도와드릴까요?”


별이는 카트 위에서 잔뜩 예쁨을 받고 다시 케이지로 들어갔다. 내가 어디 있는지 발견한 별이는 그때부터 내내 나와 눈을 맞추었다. ‘저녁 맛있게 먹어. 잘 자.’ 엄마와 함께 하고 싶었던 소소한 대화와 사소한 눈빛을 별이와 함께 하는 것은 너무나도 행복했다. 

‘엄마는 잘 있을까? 또 다른 똥을 낳았을까? 엄마. 나는 이제 똥이 아니라 뚝배기가 되었어요. 엄마 말처럼 엄마 가까이에 다가갈 수도 없어요. 하지만 엄마는 늘 보고 싶어요.’


그렇게 쓸쓸한 울음에 별이는 나에게 울지 말라 안절부절 하지 못한 채 장을 서성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오랜만에 받은 별이의 따스한 눈빛도 차가운 외로움을 달래주지 못한 채 밤을 지새우고 다음 날이 되었다. 이곳은 따뜻하지만 엄마와 살던 집처럼 햇볕이 들지 않아 사람들이 불을 켜는 순간이 다음날임을 어렴풋이 짐작케 한다.


그렇게 파란 불이 밝아오고 분주히 밥그릇이 채워진다. 배 밑의 축축하던 오줌 패드가 갈아지면 한결 기분이 좋다. 다만 채워진 밥그릇의 밥은 너무나도 적고 몇 입 먹어보지도 못한 채 어느새 밥그릇은 비워져 있다.


허기가 가신 뒤에야 어제의 슬픔에 답하지 못했던 별이의 눈빛에 뒤늦은 대답을 하려 별이를 쳐다보았지만 별이는 깊이 잠에 들어있었다.


“띠링”


그때 어제 왔던 사람들이 다시 찾아왔다.


“저희 솜이 찾으러 왔어요.”


다행이다. 어제 별이를 만나고 갔던 사람들은 ‘솜이’를 찾는다.


“네, 곧 씻어서 데리고 나올게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엇! 그 순간 장에서 별이가 꺼내졌다. 별이는 손을 벗어나려 아등바등하며 처음 우리가 씻겨졌던 방으로 사라졌다. 그동안 솜이를 데리러 온 사람들은 이곳저곳을 돌며 다른 강아지들을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내 앞에 서서 나를 가로막은 유리창을 톡톡 치며 말했다.

“으힉. 자기야 이것 좀 봐. 얘 머리 다쳤나 봐. 이렇게 하자가 있는 애들도 분양을 하나 봐.”


“그래서 저가 분양이라잖아. 그나저나 진짜 못생겼다.”


‘나는 뚝배기니깐. 당연한 거야.’라고 애써 위안을 해보았지만, 어젯밤 엄마의 그리움 위에 쌓인 상처의 말은 더 이상 사람들조차 믿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렇게 그들에게 등을 돌리고 누워있던 찰나 별이가 나왔다.


“이름을 벌써 솜이로 지으신 거예요?”


“네, 볼수록 목화솜처럼 예뻐서요.”


별이는 이제 솜이가 되었다. 그리고 곧 별이는 ‘슬프지 마.’라는 눈빛을 보내고 캔넬 속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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