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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 Dec 16. 2020

그날, 엄마의 말들

엄마의 숲




엄마의 숲



예람아

엄마가 그날

네 옆에 서서 울고 있었던 것은

아직 엄마 안에

숲이 없었기 때문이야



예람아

엄마가 그날

너를 두고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한없이 어둠 아래를 걸었던 것은

아직 엄마 안에

하늘이 없었기 때문이야



예래야

엄마가 그날

네 옆에 서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던 것은

엄마 안에 어느새

새잎이 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야



예래야

엄마가 그날

너를 두고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었던 것은

엄마 안에도

하늘이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야



작고 메마른

엄마의 마음에

엄마의 엄마가 심어둔 씨앗이 자라

푸른 새잎을 피웠기 때문이야



작고 어둡던

엄마의 마음에

언니가 담아 둔

파란 하늘이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야









첫째 예람이, 둘째 예래. 참 예쁘지요?

이렇게 고운 제 딸들은 태어나서 한 달이 지나서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첫째는 예정일 보다 열흘 늦게 태어났는데요. 엄마 뱃속에서 태변을 먹는 바람에 긴 치료가 필요했어요. 둘째는 임신 34주 차에 이른둥이로 태어나, 심장에 난 구멍을 막는 수술을 해야 했습니다. 그 한 달이라는 시간이 어찌나 길던지요. 아이의 상태에 따라 하루에도 몇 번씩 천국과 지옥을 오가던 날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이, 그 한 달을 대하는 저의 마음이 서로 다른 모양을 하고 있었어요. 첫째의 한 달과 둘째의 한 달을 견디는 저의 마음이요.


아이를 만나러 병원으로 가고, 보고 싶던 아이를 만나고, 다시 아이를 남겨 두고 혼자 집으로 돌아올 때의 마음. 같은 상황 안에 있었지만, 그 상황을 대하는 저의 마음이 달라져 있음을, 둘째의 한 달을 겪으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그 마음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첫째는 태변흡인 증후군, 둘째는 동맥관 개존증심방중격 결손증이었어요. 제 글이 이 병으로 치료 중인 아이의 부모님들께 마음의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지금은 무지 건강한 요 녀석들의 이야기



1. 처음 한 달

그날, 엄마의 말들


니큐(신생아 집중치료실)에서 아이를 보고 나오는데, 참고 있던 눈물이 쏟아집니다. 병원 아래층에서 기다리고 계신 줄 알았던 시어머니께서 문 앞에서 기다리고 계셨어요. 며느리가 걱정이 되어 올라오신 것이지요. 애써 태연한척하고 있었건만, 그만 들키고 말았습니다.


마음을 크게 먹어야지...

엄마는 마음을 크게 먹어야 한다.


저의 등을 토닥이며 어머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들릴 듯 말 듯 한 나직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아... 내가 지금 울고 있을 때가 아니구나. 나는 엄마구나.' 하고요. 어머님의 그 한 마디 안에는  아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모든 것을 받아들이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담겨 있었습니다. 아이를 지켜내겠다는 한 엄마의 의연함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친정 엄마. 우리 엄마.

계속되는 치료에도 아이의  상태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무거운 시간들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저도 회복이 많이 더뎠고요. 몸과 마음이 지쳐가던 중에 태반 검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염증이 심했다고 하더라고요. 아이가 아픈 것이 모두 저의 잘못 같아서 버티고 있던 마음들이 한꺼번에 와르르 무너져 내립니다. 울고 있는 딸.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두렵기만 한 딸. 그 옆에서 애써 눈물을 참고 있는 엄마.


엄마는 태산도 짊어지고 가는 사람이야...
엄마가 얼마나 강한데!


작아진 딸을 끌어안으며, 애써 목소리를 높여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엄마는 강한 사람이라고. 자식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 엄마라고요. 작고 여린 엄마 안에서 어떻게 그런 말들이 만들어진 건지. 나를 키우면서 얼마나 많은 마음들이 쌓이고 쌓여 그렇게 단단한 마음을 만들어온 건지, 그 마음의 깊이를 아직도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태풍이 막 지나간 자리에 그렇게 엄마의 말들이 남아, 저를 붙들고 있었습니다.

엄마라는 존재는 얼마나 큰 것일까요?
그 안에 깃든 마음은 또 얼마나 크고 강한 것일까요.


다행히, 큰 아이는 태어나서 한 달이 될 무렵 무사히 치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담당 의사 선생님께서 나중에 하신 말씀으로는, 상황이 많이 안 좋았는데도 불구하고, 아기가 정말 잘 이겨내 주었다고 하시더라고요.(태변으로 폐 전체가 오염돼 있었어요.)


아기는 강합니다.
아기를 믿고

아기에게 좋은 에너지를 주세요!


아기는 엄마의 마음을 멀리서도 느낄 수 있다고 해요. 우연일지도 모르지만, 제가 힘든 마음들을 내려놓고, 희망을 가지기 시작한 날부터 아이의 상태가 좋아졌어요. 부디, 울지 않길 바랍니다.

 


퇴원 준비, 수유 연습 :)



2. 다시, 한 달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다.


둘째는 괜찮겠지... 했는데, 아. 저는 정말 출산 체질이 아닌가 봅니다. 예정일을 한 달 반 남겨둔 34주 차에 양수가 터지는 바람에, 응급수술로 둘째가 태어났어요. 태어나서 며칠은 괜찮았는데, 갑자기 아기 심장에서 잡음이 들린다고 좀 더 지켜보자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또 혼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다시 시작된 한 달의 기다림. 이른둥이에게 흔히 있는 동맥관 개존증이라는 심장병이었어요. 엄마 뱃속에서는 열려있던 심장의 구멍이 태어나면서 자연스럽게 닫혀야 하는데, 이른둥이들은 그 문이 계속 열려있는 경우가 많다고 해요. 약물을 쓰면 대부분 닫히지만, 저희 둘째는 약물로도 안 닫힐 만큼 구멍이 커서, 결국 수술이 결정되었습니다.


수술받고, 바로 좋아졌어요!


첫째의 한 달을 통해 제가 깨달은 것은 '운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였어요. 그래서 한 달 동안 울지 않았습니다. 집에서 왕복 3시간이 걸리는 병원으로 씩씩하게 매일 아이를 보러 다녔어요. 아, 수술이 결정되었다는 말을 들은 그날 딱 하루만 울었네요. 인큐베이터 안에서 힘없이 축 처져 있는 아이를 보니 그냥 눈물이 쏟아집니다. 하지만, 그날의 눈물은 달랐어요. 첫째 때 흘린 눈물이 절망과 두려움과 미안함이라면 둘째 아이 앞에서 흘린 눈물은 희망과 감사함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버텨줘서 고맙다.

수술해서 건강해질 수 있다니 고맙다.
큰 수술이 아니라 정말 다행이다.



첫째 아이 때보다 더 힘든 상황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마음은 평온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난 거냐고, 나는 못한다고, 무섭다고 울고불고 난리를 쳐도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 힘만 빠진다는 것. 상황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편이 힘의 분배에 있어서 효율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아이 보러 다니려면 힘이 필요해요!) 그리고 '엄마의 말들'  '첫째 아이의 그 한 달' 이 내 안에서 단단한 마음을 만들고 있었으니까요.


지금도 니큐 앞에는 치료실 문이 열리기만을 애타게 기다리는 엄마 아빠들이 계시겠지요. 그리고 그곳 어딘가에는 두려움과 미안함에 눈물짓고 있는 분들도 계시겠지요. 이 글이 그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고 있을 분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아픈 아이들이 하루 빨리 가족이 기다리는 따뜻한 집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마음을 다해 빌어 봅니다.


감사함과 희망이 그곳에 있기를 바랍니다.




두 아이 모두 지금은 아주 건강해요.
둘째 예래는 아직 심장에 작은 구멍들이 남아있어서
추적 관찰 중인데요, 커가면서 서서히 닫히길 바라고 있어요.:)

엄마, 우리가 언제 아팠어?/ 그러게나 말이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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