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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 키드니 Mar 24. 2024

내과의사 워킹맘 바쁘지만 내가 집밥 하는 이유

바쁘지만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집밥이다. 아무리 바빠도 매일 하루 한 번은 집밥을 먹는다.  


나는 의사가 된 지 15년이 된 내과 전문의 봉직의사다. 아이 한 명을 키우는 워킹맘이기도 하다. 병원으로 출근하면 가운을 입고 청진기를 두른다. 집으로 돌아오면 앞치마를 매고 프라이팬을 잡는다. 의사라는 업으로 환자를 보는 것, 그리고 주부로 살림을 꾸리며 가족의 건강을 기원하는 것 모두 내가 최우선으로 하는 삶의 가치들이다.


건강한 잔소리의 중심


매일 의사와 주부의 역할을 넘나 들며 살고 있다. 의사와 주부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손을 자주 씻고, 주요 처치를 할 때에는 장갑을 착용한다. 가장 큰 공통점은 '잔소리가 많다'는 것이다. 물론 다 잘 되라고 하는 건강한 잔소리들이다. 병원에서 했던 잔소리를 집에 가서 하기도 한다. 나는 만성 질환을 보는 내과 의사로 주로 먹는 것에 대한 잔소리가 많다. 나의 환자들은 먹는 것 때문에 아팠고, 고생을 했다. 그래서 진료실에서 잘 먹는 것을 강조한다. 가족들에게 하는 잔소리도 마찬가지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건강한 음식을 먹었으면 좋겠다. 가운을 입고, 앞치마를 두르고 어떤 음식을 먹는지 확인하고 단속한다. 피해야 하는 음식을 설명하고, 건강에 좋은 음식이 있으면 권하기도 한다. 병원과 집을 오가며 하는 나의 건강한 잔소리의 중심에는 먹는 것, 집밥이 있다.


내가 집밥을 하는 5가지 이유

1. 나를 생각해 주는 건 나  

I am what I eat. 내가 먹는 것이 나를 만든다. 의학의 (할) 아버지 히포크라테스가 한 말이다. 히포크라테스 선서에는 나오지 않는 이 말이 의사와 환자를 연결해 주는 중요한 문장이라 생각한다. 잘 먹지 않고는 건강하기 바랄 수 없다. 건강을 얻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히포크라테스가 말했던 것처럼 매일 건강한 음식으로 나를 채우면 된다. 집밥은 그 자체로 건강하다. 집밥에는 첨가제나 방부제가 없다. 내 입맛에 맞게 조금은 심심하게, 조금은 덜 달게 건강하게 먹을 수 있다. 같은 음식이라도 더 신선하고 좋은 재료를 사용할 수 있다. 위생 관리도 철저하게 키게 된다. 닭을 튀기더라도 비싼 올리브 오일로 뿌린다. 브로콜리도 꼼꼼하게 세척한다. 나만큼 나와 내 가족의 건강을 생각해 주는 사람은 없다. 집밥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2. 오로지 칼날에 집중하는 시간

집밥은 내게 휴식 시간이다. 신생아 육아 시절, 나는 남편이 퇴근해서 오기만을 기다렸다. 주방으로 달려가 요리를 하기 위해서였다. 요리에 대한 애정보다는 육아를 멈추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주방에서 서서 어깨라도 펼 수 있었고, 국의 간을 맞추느라 잠시라도 아이 걱정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아이가 다 커버린 요즘도 마찬가지다. 마음이 복잡하고 힘들 때면 주방으로 간다. 특히 육아에 오답만 찍고 있을 때, 고민이 많을 때 그렇다. 손에 잡히는 대로 무엇이라도 다듬는다. 양배추 채를 썰거나 당근을 손질하며 잠시 근심을 내려놓는다. 칼날이 양배추에 집중하는 시간만큼 온갖 잡념이 사라진다. 이 시간을 위해 나는 도마에 칼 올리기를 망설이지 않는다.  


3. 집밥 하며 터득한 의외의 기술

나는 완벽주의자로 실패와 시도를 망설이는 순간이 많았다. 집밥을 통해 ‘그럼 뭐 어때’ 정신을 배웠다. 집밥 한번, 망해도 괜찮다. 다시 또 하면 된다. 실패한 음식도, 새로운 시도 역시 모두 의미가 있었다. 여기에는 가족의 응원한 큰 몫을 했다. 실패한 음식도 군소리 없이 먹어준 가족들이 있기에 가능했다. 시도와 실패를 반복할수록 요리 실력은 늘어간다. 재미있겠다, 맛있겠다. 망설이지 않고 일단 해보는 것. 내가 집밥을 하며 인생에서 배운 큰 가치 중 하나다.


4. 2대째 워킹맘의 문화

친정 엄마는 워킹맘이었다. 일하는 엄마 밑에서 자라 함께 보내지 못했던 시간들이 많았다. 엄마와의 추억은 집밥으로 채워졌다. 없는 살림과 부족한 시간에도 엄마는 부지런히 집밥을 만들었다. 소풍날 아침이면 아련히 들려오던 도마질 소리, 냉장고 칸칸이 들어 있던 밑반찬들, 한 번씩 만들어 주었던 유행하는 음식들 - 돈가스, 스파게티, 피자, 그리고 국적을 넘나들며 만들었던 엄마표 음식들 - 김치 김밥, 김치 파스타, 카스테라 경단은 아직도 있지 못한다. 나는 2대째 워킹맘으로 엄마로부터 받은 문화를 딸에게도 물려주려 한다. 함께 만들어 먹었던 김밥, 간장 계란밥, 월남쌈이 나의 빈자리를 메워주길 바란다.


5. 말하지 않아도 되는 집밥

나는 애정 표현에 서툴고 무뚝뚝한 편이다. 이런 내 성격을 대신해 집밥으로 나의 온기를 전한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집밥에 담는다. 가족의 건강을 바라며 조금 더 건강한 하루를 보내기를 기원한다. 집밥은 내가 가족에게 사랑을 전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건강한 잔소리가 그저 잔소리로 끝나지 않기 위해

잔소리가 그저 말 뿐이라면 소음에 불과하다. 내가 내 삶을 보여주려는 이유는 누군가의 변화를 바라기 때문이다.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병원에는 환자의 기록을 온전히 알 수 있는 차트가 있다면, 우리 집에도 집밥 역사와 기록이 있다. 완벽하지 않고 때로 대충 때우기도 하지만 건강에 진심인 내과 의사의 식탁이 도움이 되길 바라며 <의사의 식탁> 연재를 시작해 본다.


https://www.youtube.com/shorts/hlby0c2SWuA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관심과 응원이 저를 계속 글쓰게 합니다. 오늘도 건강한 하루 보내세요. 


※ 작가 소개 : 닥터 키드니

내과 전문의 & 워킹맘이다. SNS에서 내과 의사의 건강한 잔소리 채널을 운영하며 건강에 대해 잔소리한다. 저서로는 에세이 <봉직 의사>가 있다.


<블로그>   https://blog.naver.com/doctorkidney

<유튜브> https://www.youtube.com/channel/UCOZtZEv_llHWQ0jLpmhVV5Q

<인스타그램> @doctorkidney

https://www.instagram.com/doctorkid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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