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닥터 키드니 Apr 14. 2024

샐러드에 꽃을 심었다

시절 인연을 위하여

우리 집으로 출근한 친정 엄마는 오랜만에 만나는 할머니들과의 만남에 한껏 들떠 있었다. 그 동네를 떠난 지도 2년이 넘어가는데, 엄마는 여전히 왕래하며 인연을 이어간다. 봄 꽃구경에 배를 채울 동네 샐러드 맛집을 물어본다.


- 다들 먹을 싸 온다는데, OOO 역 앞에 있는 샐러드 집, 문 열었으려나? 할머니들하고 나눠 먹게.

- 엄마, 샐러드 정도는 내가 만들어 줄 수도 있는데. 내가 만들게.


엄마 모습에 내가 겹쳐 보인다. 나도 엄마처럼 시절 인연 만나는 것을 즐긴다.


시절 인연

시절 인연에는 그 시절의 내가 있다. 초등학교 시절 나는 2년마다 전학을 다녔다. 이사를 가서도 엄마는 한 번씩 나를 데리고 이전 동네를 방문하곤 했다. 헤어진 친구들과 재회하던 장면은 여전히 내 마음속에 선연하게 남아있다. 현실에서 나는 마음을 나누는 친구 하나 없는 전학생이었다. 하지만 시간을 조금만 돌리면 나는 전학생이 아니었다. 나에게도 우정을 다졌던 친구가 있었던 재학생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옛 친구들과 놀이터를 뛰어다니며 뻥 뚫린 마음이 채워졌다.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시절 인연들은 낯선 인연들과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시절 인연 만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중학교, 의과 대학, 인턴과 전공의를 거쳐가며 새로운 시절 인연들을 만들었다. 시절 인연과의 만남은 순식간에 나를 그 시절로 데려간다. 나는 부단히 도 성실했지만 삽질도 잘했다. 얼굴을 차가워 보이지만 울기도 잘했다. 철두철미 했지만 허술한 면모도 많았다. 그들은 나의 다양한 모습을 알고 있다. 시절 인연들은 그 시절의 나, 쌓아온 세월만큼 다양한 자아를 가지고 있는 나를 기억해 주는 나의 또 다른 분신들이다.


어떤 시절 인연들은 힘이 세다. 그때 그 시절 인연을 현재까지 끌고 온다. 남편과의 인연이 그렇다. 전공의 시절 소개팅에서 만난 그였다. 시절 인연으로 끝날 수 있었는데, 우리는 그 시절 인연을 평생 인연으로 이끌고 왔다. 우리가 함께 만들었다.  


더 이상의 시절 인연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이 엄마가 되어 시절 인연들이 늘었다. 아이 친구 엄마들이다. 누군가는 그 시절 인연은 그저 스쳐갈 뿐이라고 애쓰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모른 척할 수가 없다.


나의 인연들은 모두 시절인연에서 시작했고, 지금의 나는 그동안 만났던 모든 이들의 합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 시절 인연에는 아이의 어린 시절 인연도 함께 있다. 아이의 시절 인연은 첫 번째 동갑내기 친구가 되었고, 세상에 둘도 없는 단짝 친구로 새겨졌다.


족보에도 없는 이모들이 생겼다. 그들은 더위를 피해 함께 찾아갔던 도넛 집, 겨울철 동동 얼은 발을 굴려가며 뛰어다니던 놀이터, 키즈 카페에서 공주 옷을 입고 뛰어놀던 나의 아이를 기억해 준다. 우리는 서로 아이의 성장을 함께 간직한다.


아이로부터 파생된 시절 인연은 멈추지 않고 확장되어 갔다. 친정 엄마에게도 시절 인연이 생겼다. 출근을 하는 나 대신 아이의 낮을 맡아주었기 때문이다. 깡깡이 할머니로 통하면서 친정 엄마는 자신의 위치를 다졌다. 손주, 손녀를 봐주던 할머니들과 시절 인연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외할머니가 되어 만들어진 친정 엄마의 시절 인연들은 우리 가족 전부를 기억해 준다.


시절 인연들은 무료할뻔했던 우리에게 들어와 삶을 풍성하게 해 주었다. 덕분에 지루할 틈 없는 시간이었다.

 

나는 친정 엄마의 시절 인연을 위해 작은 샐러드 도시락을 만들었다. 그 시절 인연들이 고마워서, 시절 인연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시절 인연들에게 나의 다정함을 담았다. 봄을 맞아 샐러드에 꽃을 심었다.   


당근 라페 만들기


준비 재료

당근 1개

소금 조금

올리브 오일 레몬즙 화이트 발사믹 식초


당근을 감자칼로 깍아 소금을 뿌린다
올리브 오일 3큰술 레몬즙 1큰술
화이트 발사믹 1큰술 홀그레인 머스터드 1큰술
유자청 0.5큰술 잘. 버무린다

1. 당근은 감자칼로 깎는다.

2. 당금에 소금을 뿌려 숨을 죽인다.

3. 올리브오일 3큰술, 레몬즙 1큰술, 화이트 발사믹 식초 1큰술, 홀그레인 머스터드 1큰술, 유자청 0.5큰술을 넣어준다.

4. 당근 꽃은 젓가락으로 돌돌 말아서 연출한다.



병원에서 일하고 있는데 친정 엄마로부터 문자가 왔다. 할머니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풀밭에 앉아 그때 그 시절을 이야기하며, 현재의 인연을 이어가는 모습이 그려진다. 내년 만남에도 꽃을 심어 드려야겠다.


https://youtube.com/shorts/r9YqmyJhduA?si=-W8YN0aMZmq26NBC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관심과 응원이 저를 계속 글쓰게 합니다. 오늘도 건강한 하루 보내세요. 


※ 작가 소개 : 닥터 키드니

내과 전문의 & 워킹맘이다. SNS에서 내과 의사의 건강한 잔소리 채널을 운영하며 건강에 대해 잔소리한다. 저서로는 에세이 <봉직 의사>가 있다. 


<블로그>   https://blog.naver.com/doctorkidney

<유튜브> https://www.youtube.com/channel/UCOZtZEv_llHWQ0jLpmhVV5Q

<인스타그램> @doctorkidney

https://www.instagram.com/doctorkidney


이전 03화 일주일에 한 번 김장 대신 하는 이것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