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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 키드니 Mar 31. 2024

1분 1초가 아까운 워킹맘 아침 먹을 수 있는 이유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시험 준비를 더 할 수 있었을 텐데.


나는 불안도가 높은 사람이다. 불안은 자꾸만 나를 미래로 데려갔다. 미래에 대한 걱정을 미리 사서 하는 것이다.  특히 큰 일을 앞두고 불안은 극에 달했다. 중간, 기말고사, 모의고사 시험, 여러 사람들 앞에서 발표 따위였다. 왠지 시험을 망할 것 같고, 발표를 그릇칠 것 같았다. 현실에 발이 묶인 덕분에 불안한 마음은 나를 미리 준비하는 아이로 만들어 주었다. 미래를 생각하면 불안했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기 시작하면 불안은 조금은 누그러들었다.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아침 준비를 더 할 수 있었을 텐데.


아침 시간은 늘 빠듯하고 부족하다. 나는 종종 모범생으로 살아왔던 과거를 떠올린다. 살면서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미리 준비하지 않고는 방법이 없었다. 남들보다 명석하지 않은 나는 늘 남들보다 먼저 준비해야 했다. 그러나 누구나 시험 당일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시험날 아침시간, 친구들은 시험지를 받기 직전까지 교과서를 손에서 놓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교과서를 꺼내지 않았다. 대신 손바닥 만한 요약본을 훑었다. 시험에 나올 법 한 것들만 담은 핵심 엑기스였다. 누구나 부족한 시간, 누구나 열심히 공부했지만 내가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나만의 요약집, 그것을 정리한 과거의 나 덕분이었다. 시험 당일, 시간이 부족할 나를 위해 미리 만들어 두었던 요약집이, 과거의 내가 나를 각종 시험에서 나를 돋보이게 했다. 내가 공부를 잘할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내게는 밥 먹는 일 또한 그러하다. 누구나 아침 시간은 빠듯하다. 1분 1초가 아까운 워킹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침을 먹을 수 있는 일은 과거의 나 덕분이었다. 조금은 시간적 여유가 있는 일요일 저녁, 나는 잎채소를 다듬고 당근, 양배추를 채 썬다. 브로콜리는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쪄놓는다. 유리통에 담아 냉장고에 보관한다. 주말을 제외한 일주일 동안 먹을 분량이다. 아침이면 미리 준비해 놓은 잎채소, 채 썰어 놓은 당근과 양배추, 데쳐놓은 브로콜리를 담는다. 시간적 여유가 많았던 주말의 내가 시간이 빠듯한 출근길 아침의 나를 도왔다. 나의 아침을 건강하게 만들었다.  


시험 당일 모범생에게 요약집이 있다면, 출근길 아침 워킹맘에게 밀프렙이 있다


밀프렙은 meal-prep 미리 준비하는 식사를 말한다. 미래의 부족하다고 예상되는 시간을 비교적 시간이 여유로울 때 땡겨쓰는 거다. 식사 메뉴를 고민하는 시간도 단축되고 규칙적으로 식사를 할 수 있게 된다. 식재료를 낭비하지 않게 되고 식비도 줄여준다.


식사를 미리 준비하는 밀프렙은 시험을 앞둔 수험생에게 필요한 핵심 요약집 같은 거다. 내가 만약 머리가 아주 좋은 학생이었다면 요약집 같은 건 필요 없었을지도 모른다. 과거에 봤던 것까지 모두 기억할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방금 전에 눈으로 봤던 것만 확신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내게는 요약집이 필수였다. 그 요약집으로 나의 시험 공부는 완성이 되었다.


워킹맘이 된 이후 출근길 아침도 마찬가지다. 아침 출근 시간에는 빨리 빨리가 입에 절로 붙는다. 밀프렙은 아침 출근시간에는 시험 직전에 볼 수 있는 요약집이다. 주말에 미리 준비해 놓은 식재료를 담기만 하면 아침 식사 준비 끝이다. 그렇게 아침 식사는 완성이 된다.


밀프렙은 게으름과 부지런함의 중간 값

 

내가 만약 매우 부지런한 사람이었다면, 매일 아침마다 야채를 다듬고 식사를 준비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로 부지런하지는 못하다. 밀프렙은 부지런한 사람들이 부리는 최대한의 게으름이자, 게으른 사람이 하는 최대한의 성실함이다. 무엇보다 아무리 부지런하다 해도 아침에는 도통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다. 시험당일 아침에는 누구나 ‘조금 더 시간이 있었더라면’ 고 외치는 것처럼 말이다.


나에게는 밀프렙이 게으름과 부지런함의 중간값이자 시험 요약집 같은 치트키다.


 밀프렙 일요일 저녁, 나는 핵심 엑기스만을 모은 요약집을 만들어 둔다.  


잎채소

두 가지 이상의 녹색 채소를 구성한다. 양상추나 로메인 상추, 케일, 어린잎 채소를 주로 사용한다. 모든 잎채소는 지저분한 잎은 정리하고 흐르는 물에 씻어둔다. 양상추는 겉잎과 심지를 제거한다. 갈색으로 변한 부분을 떼어준다. 먹기 좋은 크기로 손으로 뜯어 정리한다.   


로메인 상추는 한 잎 한 잎 떼어 낸 후 손가락 2마디 정도로 썰어둔다. 어린잎 채소는 흐르는 물에 살살 흔들어 세척하고 이물질을 제거해 둔다. 채소는 물기 제거가 관건이다. 최대한 물기를 제거한다. 손질된 채소는 유리 보관 용기를 사용하고 키친타월을 이용하여 덮어둔다.


브로콜리

십자화과 채소는 하나인 브로콜리는 꼭 미리 준비해 두는 편이다. 자주 먹기 위해서다.  브로콜리는 10대 슈퍼 푸드로 알려져 있을 정도로 영양학적으로 우수하다. 브로콜리는 데치는 것보다 증기로 찌는 것이 영양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다. 주로 먹는 꽃송이뿐 아니라 줄기도 먹는다. 겉껍질을 깎고, 길쭉하게 썰어둔다. 익힌 브로콜리는 찬물 샤워를 해주고, 물기를 제거한다. 유리 보관용기에 넣어준다. 브로콜리는 오래 보관하기 어려우므로 3~4일 이내에 소진한다.

당근

우리 집 샐러드에서 당근은 비주얼 담당이다. 당근은 껍질을 손질 후 채 썰어 둔다. 마르지 않게 키친타월에 물을 적힌 후 보관한다. 당근을 올리브오일, 홀그레인 머스터드, 발사믹 식초로 절여 당근 라페로 만들면 보관이 용이하고 샐러드에 드레싱 대신 올릴 수 있어서 좋다.  


양배추

양배추도 당근과 마찬가지로 같은 식으로 라페를 만든다. 오래 보관할 수 있고 샐러드 위에 뿌려 드레싱 대신 먹는다.


당근 라페 양배추 라페

병아리 콩

콩은 손이 많이 가는 편이다. 6시간 이상 물에 불리고 삶아야 한다. 나는 병이라 콩을 날 잡고 삶는다. 한 달에 1~2회 정도 대량으로 삶아 둔다. 일주일씩 먹을 만큼 용기에 담아 냉동 보관한다. 한통씩 꺼내 일주일 이내로 먹는다.

여기에 방울토마토를 기본으로 하고, 제철 과일과 채소를 추가로 손질해 둔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공평하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특히 더 부족한 시간이 있다. 수험생의 시험 당일 아침, 출근을 앞둔 워킹맘의 아침이 그러하다. 그들은 분초를 다툰다. 순간 가속도가 필요한 시점이다. 촉박한 그 시간을 위해 비교적 여유가 있는 시간을 당겨 쓴다. 핵심 요약집과 밀프렙을 만들어 둔다. 과거 모범생으로 살았던 나와 현재 워킹맘으로 살고 있는 내가 시간을 다루는 방법이다.


https://youtube.com/shorts/Ch2tBCXxGyk?si=mUWoYgdFXbR5mpox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관심과 응원이 저를 계속 글쓰게 합니다. 오늘도 건강한 하루 보내세요. 


※ 작가 소개 : 닥터 키드니

내과 전문의 & 워킹맘이다. SNS에서 내과 의사의 건강한 잔소리 채널을 운영하며 건강에 대해 잔소리한다. 저서로는 에세이 <봉직 의사>가 있다.


<블로그>   https://blog.naver.com/doctorkidney

<유튜브> https://www.youtube.com/channel/UCOZtZEv_llHWQ0jLpmhVV5Q

<인스타그램> @doctorkid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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