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이 그리움이 될 때
깊이 묻어둔 서랍 속에서
색 바랜 수첩을 꺼내어
쓰다가 지우고를 반복한
그 시절 사랑의 시를 읊으며
그대를 회상합니다
어찌할 수 없고
알 수 없는 무언가에
우리는 끌어당겨졌고
어찌할 방법조차 찾지 못한
우주의 무언가에 의해
우리는 멀어졌습니다
종이와 종이 사이 골짜기에
켜켜이 쌓여있는 고뇌와 번뇌의 조각들을
자그마한 회색 쓰레기통에 비우고
검게 그을린 글자들의 무덤을 바라보며
쓰디쓴 미소로 묵념을 올립니다
언젠가 어디선가
빛처럼 살아갈 그대여
그대가 편안하다면 저도 잘 있겠습니다
편지 쓰는 걸 좋아한다.
한 글자 한 글자 눌러 담으며 나의 생각을 쓰고 지우고 반복하며 말을 정제할 수 있기 때문에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종종 편지를 쓴다. 물론 카카오톡, 디엠 등으로도 나의 마음을 전달할 수 있지만, 꾹꾹 담은 내 마음을 툭툭 눌러쓴 가벼운 텍스트로 전달하는 것은 별로라고 생각하기에 나는 편지를 선호한다.
그리고 편지를 쓸 때면 수첩 하나를 꺼낸다.
그 수첩에는 나의 바다가 있고, 나의 저녁이 있고, 나의 우울이 있다.
수첩은 나의 세계의 방증이다. 그 수첩에 나는 편지에 적을 말들을 정리한다. 볼펜은 지울 수 없기에 펜코 샤프로 편지 초본을 쓰고 지우고를 반복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위로, 최고의 사랑 이야기를 적는다.
마침표가 찍히면 종이와 종이 사이에는 지우개 가루들이 모이지만, 그대로 둔다.
그것 또한 나의 흔적이므로
가끔 인생을 아니, 인생이라고 하니 너무 과장되어 보이니 하루하루라고 하자. 하루하루를 살다 보면 내가 밟아온 흔적을 바라보거나 지우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 다시금 수첩을 꺼내 바라본다.
먼지와도 같은 그 흔적들의 조각을 쓰레기통에 비우며 잠시 눈을 감는다.
나를 떠나간 사람, 내가 떠나온 사람, 나를 스쳐간 사람, 내가 스쳐간 사람 모두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고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수첩에 적혀있던 순간만큼은 빛처럼 밝게 빛나던 사람들이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어쩌면 지금도 스스로를 빛내며 다른 이들의 얼굴에 빛을 비춰주고 있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