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에서 만난 우연한 인연들에 대하여
비내리는 타이베이 101타워에서 혼자 놀고 있는데, 이 기억을 남기는 것이 좋을 거 같아 지나가는 분들께 사진을 부탁드렸다. ‘請問一下,請幫我拍照片,可以嗎?(실례합니다. 혹시 사진 찍어주실 수 있나요?) 물으니 한국어가 들려서 너무 반갑게 '한국분이세요?' 하고 서로 물었다. 친구와 함께 여행을 오신 두 분도 그 날이 대만의 첫 여행 일정이었다고 하셨다. 에어드롭으로 보내줄테니 맘껏 포즈를 취하라고 하시곤 두 분의 핸드폰으로 사진을 많이 남겨주셨다. 심지어 나에게 여기서도 찍어 보셨냐며 친히 포토스팟까지 데리고 가서 사진도 찍어주셨다. 하필 쇼핑백에 들어 있는게 아무것도 없어서 너무 감사하다고 몇 번을 인사했다. 엘리베이터에 내려가는 순간에도 마주쳐서 수줍게 인사를 건넸다.
그렇게 헤어질 줄 알았는데, 그 다음날 예스지 투어를 떠난 마지막 일정인 지우펀에서 투어 모임 장소로 돌아가던 길목에 다시 한 번 마주친 것이다. 이 때 난 맥주 한 잔을 해서 살짝 알딸딸한 상태였는데, 너무 반가운 마음에 '어머어머!! 안녕하세요!!' 라며 호들갑을 떨며 인사를 드렸다. 두 분도 너무 반갑게 날 맞아주시고 사진 찍으셨냐며 또 한 번 사진을 찍어주셨다. 두 분도 간단히 찍어드리고 각자 일정 시간으로 인해 인사를 나누고 다시 한 번 더 헤어졌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공항에서 두 분 중 한 분을 만났다. 내 앞 앞에 계셔서 인사를 드릴까 말까 고민을 하다, 여행의 소중한 순간들과 더불어 인생샷을 남겨주신 분께 빈 손으로 얻을 수는 없어서 빠르게 달려가 그 분께 인사를 건넸다. 실례가 안된다면 한국으로 돌아가서 커피라도 꼭 보내고 싶은데, 번호는 부담스러우니 혹시 인스타그램 아이디라도 알려주실 수 있으시냐고 물었더니, 따로 계정이 없으셔서 아쉽게도 인스타그램 공유는 못했다. 나중에 정말 나중에 이 글을 다시 보시게 되신다면,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 다시 한 번 더 드리고 싶다. 타지에서 만난 두 분은 나에게 반가운 존재였고, 그 순간을 추억하며 우연했던 세 번의 만남까지 떠올리게 해주신다.
남는건 사진이라는 말. 사진을 보면 그 때의 추억이 떠오른다. 대만에서 찍어주신 그 사진들을 바라보면 그 때의 날씨가 떠오르고, 자연스레 두 분이 떠오른다. 대만 여행에서 일어나기 힘든 소중한 추억을 안겨주신 두 분 덕분에 여행이 더욱 풍요로워졌다. 그리고 또 느끼지만 한국사람들은 사진을 정말 잘 찍는다.
첫 날 비가 엄청나게 내려 택시조차 잡히지 않는 상황에서 결국 버스를 환승해 숙소로 돌아가는 방법을 선택했다. 구글맵 하나만 믿어도 좋았지만, 비가 내리는 상황에서 이 길이 맞는지 물어보려고 버스정류장에 계신 한 분께 조심스레 물었다. '請問一下,我想去那邊,那我去那邊,對嗎?( 실례합니다. 저 저 곳으로 가려고 하는데, 혹시 여기로 가면 되는거 맞나요?) 잠시 기다려 보라면서 버스정류장에 있는 노선도를 하나하나 보시더니 나에게 여기로 가는게 맞다고 한번 더 설명해주셨다. 나에게 한국에서 왔냐고, 혼자 왔냐고, 어떻게 중국어를 하게 되었냐고, 한국 드라마 좋아한다고, 대단하다는 스몰톡도 함께 했다.
버스를 기다리며 나눈 작은 스몰톡 사이사이 나의 숙소로 가는 버스가 오는지 안오는지 계속 봐주시고 심지어 버스까지 잡아주셨다(대만 여행을 가면 손을 흔들어 버스를 타야한다. 딱 한 번 손을 흔들지 않았는데 버스가 그냥 슝 지나쳤다) 이거 타면 된다고. 조심히 가라고. 즐거운 여행되라는 말과 함께 헤어지고 그 분도 버스를 타셨다.
비가 내리지 않아 택시가 잡혔더라면, 이런 추억을 남길 수 있었을까? 혹은 그 버스정류장이 아닌 다른 곳에 내렸다면 이런 기억이 남아 있었을까? 그 친절로 인해 무사히 숙소에 도착해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눕는 순간까지 마음이 몽글몽글했다. 너무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친절인 거 같았다. 요즘 세상을 살아가다보니 오지랖이 필요한 순간들이 있기도 하더라. 우리는 언제부터 친절을 오지랖이라고 표현하게 된걸까, 혹은 그 친절을 부담으로 느껴지는 것은 내 마음의 여유가 조금은 부족해서가 아닐까?
호텔 옆 카페에 있던 사장님, 공항에서 나에게 길을 하나하나 알려주신 직원분 등 작은 친절들이 모여 여행은 풍부해졌다. 대만도 사람이 사는 곳이다 보니 어떻게 다 친절한 사람들만 있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대부분은 친절했고 신기하리만큼 질서를 잘 지켰다.
이를테면 지하철을 타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사람이 내리기 전까지 줄을 서있다가 다 내리고 난 후에 타는 모습들이 너무 오랜만에 보는 광경이라 낯설게 느껴졌다. 만원 지하철에서 사람과 부대끼지 않는 경험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에서 지하철을 탈 때 맨날 부대끼고 문 앞에 서있는 사람들때문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내리고 있는데 타는 사람들 때문에 늦게 내릴 때도 다분한데, 너무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게 지켜지고 있는 이 곳의 질서가 날 대만에 반하게 한 이유 중 하나였다.
장애인분들을 대만에서 많이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장애인들이 안 나오는 것이 아니라 못 나오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대만 여행을 하며 도보에 턱이 적다는 것을 느꼈고, 버스가 낮다는 것도 알았다. 한국으로 돌아오고 나서 대만 여행 후기를 찾아보니 나와 같이 느낀 사람들이 많았다. 심지어 식당에 가도, 그냥 도보에 있어도, 버스에서도 지하철에서도 그들은 그들의 일상을 똑같이 살아가고 있었다.
좋은 것은 좋은 것이다. 우리가 아직 좀 부족한게 있다면 하면 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친절을 바라지말고 그냥 당연한 것부터 시작해보면 우리도 친절해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조심스레 가져보는 여행이었다. 여행에서 만난 친절이 나의 삶에 작지만 큰 변화로 다가왔다. 예전의 나였으면 그냥 지나쳤을 것들을 굳이 하는 경우가 생겼다. 우리에겐 굳이가 필요하다. 결국 굳이의 순간들이 모여 우리에게 힘을 주기도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