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자두는 우울해하고
드디어 이사를 했습니다. 해결될 것 같지 않던 집문제가 해결되어 이사를 가니 마음은 편한데...
이 아이들... 그간 나만 믿고 나를 보며 살아온 이 아이들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고민을 하고 또 하고... 했지만 결국 이사를 해야 했고 떠나는 날까지 이 아이들에게 밥을 주며 일일이 말을
붙여 봤습니다. 떠남을, 이별을... 이 아이들이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건 말건...
순전히 내 사정 때문에... 내 상황으로 이 아이들을 버리고 떠나면서 하는 변명 같은 말들을 말입니다.
그게 무슨 소용이 있으랴만...
이사 며칠 전부터 '자두'는 밤이면 낑낑대며 뭔가 불만을 호소했고 그래서 실내에 들여놓기도 했고 문을 열어 놓으니 '턱시도'도 따라 들어오고, '호피'도 따라 들어오곤 했습니다. '호피'는 실내에 들어와서는 '자두'와
장난도 치고 '자두'는 '호피'만 있으면 활기를 보입니다. 그런 애를 떼어 놓고 왔습니다.
이사 하루 전...
이사 하루 전까지 비가 왔습니다. 성묘들은 어디론가 각자들의 집(?) 있어 비를 피하고 있을 텐데 어린 새끼들은 현관 앞에 마련해 준 나무상자에서 살고 있는 애들이라 이럴 때 비를 피할 수 있고 겨울의 모진추위에도
조금은 보호를 받을 텐데... 이제 그 마저 없애야 합니다. 현관을 열자 아이들이 들어왔습니다.
이게 마지막 날입니다.
이사 당일...
그리고 다음날 아침 일찍 애들 밥을 챙겨주자 각자들 와서 밥을 먹고 돌아갈 애들은 가고 이곳이 집인 새끼고양이들과 몇몇 성묘가 남아 데크에서 볕을 쪼이다가 이른 아침 오신 이삿짐센터 직원들이 오자 다들 사라졌습니다. 낮선 사람들이 여럿이 왔다갔다 하자 새끼 고양이들도 다들 어디론가 영영 떠났는지 몸을 숨겼는지
안보입니다. 그리고 나는 이삿짐을 챙겨 자두를 데리고 집을 떠났습니다.
그렇게 애들을 두고 나는 떠났습니다.
이사 다음날....
그리고 다음날 오후 저녁 무렵 가보니 데크에 새끼들만 모여 있더군요....
이 아이들은 여기가 집이니 떠날 수가 없는 거죠... 남아 있던 사료를 챙겨주었습니다. 하루를 굶고 있던 애들이라 그런지 게걸스럽게 먹더군요... 그러자 어디 있었는지 성묘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떠난 줄 알았던 애들이 근처 어딘가 있다가 내 소리가 나자 모여든 것 같습니다. 이 애들에게도 남은 사료를 탈탈 털어 주니 마음이 더 짠합니다. '턱시도'는 보이지 않습니다. '호피'가 왔고 '삼순이'가 왔고 '블랙이 2호'가 왔고 '치즈 1호'가 왔습니다. '호피'는 역시 '자두' 우리에서 아마도 '자두'가 없는 게 신기한지 연신 왔다 갔다 하며 부산합니다. 이 집에 이사 올 분들은 내일 온다고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남아 있던 밥그릇과 고양이 집 마저 다 철거하고 왔습니다. 새로 올 분에게 사정이야기를 했습니다. 하지만 고양이 챙기는 것까지 부탁드릴 수 없었습니다. 그분도 그럴 자신은 없다고 하시고요... 이제 새끼고양이들은 잠도 한 데서 자야 합니다.
이사 이틀째...
그간 자두가 살던 집도 철거해야 해서 이사 이틀째 되는 날 다시 갔더니 역시 새끼고양이들만 남아있다 나를 보더니 또 모여듭니다. 그러나 이땐 사료도 없었는데 마침 오는 길 통닭 한 마리를(철거업체 직원주려 산 음료수와 닭이었습니다만 이 업체 직원은 사정이 생겨 다음날 오겠다고 합니다) 살을 발라내 주었더니 새끼들이 주자마자 난리가 났습니다. 또 하루를 굶었던 애들이었기에 애들은 허겁지겁 먹습니다. 이때 또 성묘들이
나타났습니다. 역시 '턱시도'는 없습니다. 이 애는 이제 여길 영영 떠난 것 같습니다. 가장 먼저 와서 가장
오랫동안 우리 집에서 살던 애인데... 다행입니다. 이렇게 힘들겠지만 다른 곳으로 떠나 영역을 찾아야 하겠지요. 그리고 역시 '호피'가 왔고 '삼순이'가 왔고 또 '블랙이 2호'가 왔습니다. 닭 한 마리를 이 애들에게 다 주었습니다. 새끼들과 이 애들이 게걸스럽게 먹어대니 닭 1마리는 금방 없어졌습니다.
저도 물론 한 조각 먹었습니다. 사실 동물들에겐 간이 든 음식은 좋지 않다지만 애들은 쓰레기를 뒤져 사람이 먹던 음식물도 먹고 살아가는 처지라 이렇게 살을 발라내 준 닭고기 몇 점이 이 애들에겐 또 언제 먹을지 모르는 한 끼였던 것이니 말이죠.
이사 3일째...
철거업체에서 와서 철거를 한다기에 다시 갔습니다. 또 새끼들만 있습니다. 아... 이번엔 이 애들에게 줄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내가 와서 조금이라도 먹을 걸 챙겨주면 이 아이들이 새로운 곳에 가서
먹이 활동 하는 걸, 여길 떠나는 걸 지체시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안쓰럽지만 그랬습니다. 그런데 나를 보자 모여든 새끼들... 그리고 또 '호피'가 나타났습니다. 아마도 '호피'는 아직도 이 주변 어딘가에 있는모양입니다. 그런데 '호피'는 어제 버리고 간 쓰레기 봉지에 있던 닭뼈를 찾아내 먹고 있습니다. 너무 가슴이 아팠지만 일단 '호피'를 쓰레기봉투에서 멀어지게 하고 쓰레기봉투를 잘 묶어
처리장에 버리고 왔습니다. 이제 이 애들은 이렇게 살아갈 것입니다. 사람이 남긴 음식쓰레기를 뒤져 먹어야
하고 그래서 사람들에게 비호감이 되고... 하루의 대부분을 먹이를 찾아다니는 그런 날들로 살아가야 하는
거죠 그런데 쓰레기봉투를 버리고 와서 '호피'에게 다가가자 거리를 멀리하고 가까이 오지 않습니다.
이 애도 내게 정 떼기를 하는 걸까요? 불러도 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 그래야지... 그래야지... 안타깝고 가슴 아프지만 그래야 하지...
아... 저 새끼들도 그래야 할 텐데... 저 애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 갈 데가 없는 애들이니 말입니다.
우리 가족들도 새끼들은 데려 와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해서 새끼들에게 다가가니 이 애들은 아직 손을 타지 않아 도망갑니다. 가까이 와서 먹을 걸 주면 먹긴 하지만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포획틀이 있다면 이 애들은 잡아 케이지에 담아 갈 텐데... 하며 안타까운 생각만 하다 왔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가고...
이렇게 연속 3일을 예전집에서 애들을 보고 왔습니다. 가슴만 아프게 말입니다. 하지만 다시는 가지 말자...
그렇게 아픈 결정을 하고왔습니다. 그런데도 자꾸만 새끼들이 밟히고 호피가 눈에 밟힙니다.
그런데다 자두는 또 다시 우울해 하고 기력이 없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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