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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툇마루 Oct 14. 2021

거리두는 시간을 갖자

홈스쿨 하는 엄마의 불안

친구와 여행을 다녀오면서 일상과 가족으로부터 3일간 벗어나 있게 되었다. 아이의 검정고시로 곁에서 나름 애썼던 나에게 주는 선물이기도 했고, 자유로운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되기도 했다.

자연 속에서 지낸 3일간의 시간은 말할 수 없는 행복감으로 꽉 채워졌지만, 문득문득 감정의 균형을 깨뜨리는 알 수 없는 무거움이 있었다. 조용히 머물렀지만 무시되지 않는 감정이었다. 여행 중에는 그 감정의 이름을 알지 못했고, 일상으로 돌아와 서서히 그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첫 번째 감정은, 남편을 향한 것이었다.

내가 자리를 비운 동안, 남편은 아이와 처음으로 차박을 시도하기도 했고, 개봉한 영화를 보기도 했다. 내가 있을 때는 하지 못했던 일탈-라면과 기름진 음식들로 끼니 이어가기-을 일삼으며 지내기도 하고.

이미 알고 있던 계획이었고, 그 정도의 일탈은 충분히 예상되었던 것이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막상 나는 그 흐름이 싫었던 것이다. 남편도 아이와 하루쯤은 평범한 일상을 보내면서 일상에서의 자잘한 부딪힘이나 고단함을 느끼길 바랐던 것이었다.

여행을 다녀온 후 내가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될 줄이라고는 나 자신조차도 전혀 예상을 하지 못했으니 남편은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남편에게 정리되지 않은 감정을 쏟아놓으면서 그 무거움의 정체를 조금씩 알아가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그 무거움의 일부에 불과했다.  


두 번째 감정은, 불안에서 시작된 나 자신을 향한 실망이었다.

여행에서 일상으로 돌아온 다음 날, 나의 두 번째 감정을 아직 알아채지 못한 상태에서 아이를 바라보는데, 문득 깨달아지는 순간이 있었다. '아, 불안이었구나'.

     

아이의 검정고시 이후 2주 간의 휴식시간을 갖고 다시 홈스쿨 모드로 돌아오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 아이의 미래에 대해 미세하게 불안해지기 시작했는 것을 알았다. 아이에게도 남편에게도 전혀 없는 불안이 내게만.

내년 계획에 대한 것은 구체화되고 있어서 괜찮다고 생각했다. (아직 입학한 건 아니지만 “꿈틀리 인생학교”를 계획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앞으로 다시 쓸 기회가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1년 정도만 내다보며 가는 것이 우리의 홈스쿨의 성격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괜찮지가 않았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1년 후에 아이가 고등학교 진학을 선택하면 지금부터 좀 더 공부를 하고 있어야 하는 건 아닐까', '다시 검정고시를 선택한다면 이 금쪽같은 시간을 이렇게 보내도 되는 걸까' 등등... 추측을 해보면, 꿈틀리 인생학교를 다녀온 이후에 아이가 ‘열일곱 살’이라는 자각이 들면서 불안해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이 불안으로 인해서 오랜만에 만난 그 반가운 자연을 누리지 못하고, 나의 안테나는 엉뚱한 방향을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가 저렇게 아빠랑 3일 내내 놀기만 하고 있어도 되는 걸까’ 하는 전에 없던 걱정이 들어왔고, 나의 이런 마음은 함께 여행한 친구에게도 느껴질 만큼이었다.      


첫 번째 감정은 여행에서 돌아온 직후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는데, 두 번째 감정은 일주일이 지난 지금도 나를 힘들게 한다. 스스로에게 기대하던 ‘홈스쿨 하는 엄마’에 대한 실망감이랄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감정이라고 가볍게 받아들이면 좋았을텐데 그러질 못했다.


돌아보면, 불안은 아이가 이미 잘하고 있는 것까지도 보지 못하게 만들었고, 못하고 있는 부분만 부풀려 보게 하면서 나를 괴롭히고 아이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간 나의 이러한 감정적인 변화에 대해 아이와 솔직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는 엄마의 화난 모습이 좀 자주 보이긴 했지만 괜찮았다고 말해주었다. 다행히.


몰랐던 나의 감정을 알게 되면서 아직 온전히 편해지진 않았지만, '불안을 씻어내려는 의지'만으로도 아이를 바라보는 내 마음은 달라져있음이 느껴진다. 오는 것도 가는 것도 예측불허인 불안이라는 감정에 대한 경험을 하고 있다. 이제는 더 이상 아이의 미래에 대한 불안이 없을 것이라고 믿지 않지만, 이런 때일수록 아이를 믿고 나도 믿어줘야겠지.


일상에서 벗어나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기. 가족 간의 거리두기. 

예상하지 못한 여행이 되었지만, 이또한 떨어져 있음으로 들여다볼 수 있었던 것이다. 떠난 나는 나대로, 집에 남아있던 남편과 아이는 그들대로 필요한 시간이 되었으리라.

홈스쿨을 하는 동안 거리두는 시간을 좀더 자주 가져야 할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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