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춤추는 게 그냥 좋았다. 초등학생 때, tv에 나오는 가수들의 춤을 따라하면서, 가수들 뒤에서 춤추는 백댄서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춤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은 꿈도 꾸지 않았다. 공부하고 판검사가 되서 이 집안을 살려야 한다는 엄중한 엄마 말씀이 늘 선포되었기 때문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수련회든, 체육대회든, 소풍이든 장기자랑 시간마다 그렇게도 춤을 추어대던 나를 보면서 엄마는 정말 모르셨을까? 아니면 외면하고 싶으셨던 걸까? 아니면 딸의 관심사를 민감하게 알아차리고 북돋아줄 정도의 섬세한 눈도, 정신적 여유도 당시 없으셨던 것인지도 몰랐다. 경제적으로 무능한 아빠와 사는 엄마의 팍팍한 삶 속에서 나는 엄마의 한줄기 희망이었을테니까.
춤을 좋아한다고, 하고 싶다는 마음을 엄마에게 제대로 표현한 적이 없다. 처음에는 무조건 엄마가 시키는대로 학생은 공부를 해야 하는 어떤 존재이기 때문에 그랬고, 나중에는 우리 집이 실제로 매우 가난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춤이란 것은 이 형편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공부외에 내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춤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올라올 때마다 삼키고 달래고, 억눌렀다. '공부해야 돼. 공부해야 돼...' 스스로 주문을 외우면서. 그렇게 나는 십대의 학창시절을 보냈다.
스무 살이 되어서도 춤에 대한 미련과 불꽃은 온전히 꺼지지 않았다. 아무리 모르는 척 안보려고 해도 눈엣가시처럼 늘 그곳에 있었다. 잠시 덮어 놓았을 뿐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어떤 숙제처럼 나를 따라다녔다. 나의 어떤 존재적 순간마다 춤은 어김없이 나의 깊은 아래에서 올라와 등장했다.
이상하게도 춤을 생각할 때마다 내 존재 깊은 어딘가가 항상 쿵쾅대었고, 뜨겁게 진동하는 것이었다.
수천번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또 물어보았다. 골머리를 앓으며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았다.
'정말 할까? 하지만 이미 너무 늦어버렸는 걸... 무용은 원래 다들 어려서부터 시작하니까. 나는 스무살도 넘었고 배울 돈도 없으니까. 내가 정말 무용을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래도, 진짜 평생 이렇게는 도저히 이렇게 참고 누르며 못 살것 같았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하고 싶은 것은 하고 살아야 될 것 같았다.
안 그러면 평생을 두고 후회할 것 같으니까.
그래, 하자.
못 배워서 속에서 한 맺힌 무용.
그렇게 나는 부모님 몰래 무용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