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을 위한 에너지 정리
나도 괜시리 무기력해질 때가 있다.
내 패턴을 가만히 살펴보면,
가슴 졸이며 몰두했거나
지나치게 생각이 많았던 때가 있었다.
마치 백그라운드에서 프로그램이
계속 돌아가는 컴퓨터처럼
에너지를 쓰고 있었다는 사실에 무지했었다.
정리 일을 하며 만난 이들도 그랬다.
타인을 돌보며 사랑을 주는 사람들 또한
자신이 힘들다는 것을 인지 못한다는
사실에 놀라곤 한다.
그들은 결코 게으른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누구보다 다정한 사람들이었다.
눈앞에 일들을 처리하느라,
특별한 이슈가 있었음에도 그들은 금세 잊고 있었다.
내가 질문을 하면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백이면 백,
자신이 힘든 걸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장례식장에 다녀왔고, 장거리 운전을 했고
딸이 아파서 간호를 해야했다는 사실들.
나는 한번 더 깊게 묻는다.
얼마나 멀었는지, 마음이 어땠는지.
“아…”
그제서야 자신이 무리했음을 인정한다.
평소 아무렇지 않게 했던 일들이 갑자기 버거워질 때,
흔히 자책의 굴레로 빠진다.
자신이 무능력해서, 인내심이 약해서,
엄마로서 자격이 없다며 스스로를 작게 만든다.
가족들에게 불쑥 화를 내는 자신이
괴롭다는 이도 있었다.
사실 가족들을 세심히 케어하느라
이미 자신의 에너지를 아낌없이 소진한 상태였다.
다정함의 끝에서 에너지가 바닥나자,
자신도 모르게 화가 났던 것이었다.
자신이 피곤했음을 알아차린 뒤로는
갑자기 화를 내는 언니를 보며 ‘언니도 피곤하구나.’
라고 이해하게 되었다며 자신의 변화를 뿌듯해했다.
나에게 먼저 다정해지니,
놀랍게도 그 다정함은
다시 가족들에게로 번져갔다.
나는 상태를 알아채기 위해 이 질문을 자주 꺼내 든다.
“평소 같으면 이게 화낼 일인가?”
이렇게 ‘평소’라는 잣대가 생기자
보이지 않는 에너지를 알아차리는데 훨씬 쉬웠다.
에너지 분배에 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우리의 에너지는 뇌, 소화, 면역에서 대부분을 쓰고,
겨우 30% 정도로 일상 활동을 한다고 한다.
그런데 그 이상을 쓰면 소화 에너지를 끌어다 쓰고
뇌, 다음으로 면역 에너지까지 소진하며
결국 몸이 아프게 된다고 한다.
우리의 에너지의 총량은 정해져 있다.
그 소중한 에너지를 여기저기서
빌려 쓰고 있었던 셈이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에게
제일 먼저 친절해 지기로 했다.
에너지의 중심에 ‘설렘’이라는 기준을 두고,
의식적으로 선택하는 삶을 살려 한다.
“지금 나는,
어디에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을까.“
하지만 더 중요한 건 다음이다.
바로 우선순위에 대한 감각이다.
“앞으로 이 소중한 에너지를 어디에 쓰고 싶은가.”
내 인생의 운전대를 잡는 순간,
무기력했던 가슴 속에도
설렘의 불꽃은 다시 일렁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는,
더 많은 불꽃을 구경하기 위해
나의 에너지를 쓰기로 결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