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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환 Oct 22. 2023

외딴섬

표류하다

'Dive' Artwork by ziuuu

난 인디펜던트라는 외딴섬에 살고 있다. 사회와 떨어져 고립된 곳. 메인스트림이라 불리는 음악 세계의 중심부와 접점이 없는 곳. 1년 내내 관객 없이 일인극이 펼쳐지는 곳. 이곳에 살고 있는 나를 세상은 ‘인디 뮤지션’이라 부른다. 장르로서의 ‘인디’가 아닌 소속사 혹은 어떤 퍼블리싱 회사와도 계약되어 있지 않은 독립 음악가인 난, 11년째 이 작은 섬에서 홀로 생존게임을 벌이고 있다.


인기나 좀 끌고 싶어 시작한 음악은 자연스레 뼈와 근육, 장기나 혈액처럼 나를 구성하는 하나의 물질이 되어갔다. 세상은 꿈꾸는 자들로 가득했고 그들은 안쪽에 보석을 하나씩 박아놓은 듯 은은한 빛을 뿜었다. 눈부신 세계에 마음을 빼앗긴 난, 몽상가들의 언어와 제스처를 일종의 계시처럼 여기며 성장했다. 선망하던 영웅들처럼 될 거라, 이 길이 내 운명이라 믿으며.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바다는 이리 와서 자유를 만끽하라고 내게 손짓했다. 그 신호가 내게만 주어진 특별한 초대장 같았다. 음표가 새겨진 깃발을 펄럭이고 신나게 노를 저으며 그 온화한 손길에 몸을 던지던 그때는 알지 못했다. 보석은커녕 흔한 자갈 따위도 내 안엔 없다는 걸. 그들 모두가 뛰어난 천재성과 노력, 시대라는 배경이 만난 기적과 같은 존재라는 걸. 내가 곧잘 따라 했던 건 그저 껍데기에 불과했다는, 그동안 보았던 모든 것이 스스로 만든 착시 현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쯤 바다는 시치미를 떼듯 표정을 바꿨다. 차갑고 잔인한 생존의 영역이 된 그곳에서 날 기다리는 건 형벌뿐이었다. 분수도 모르고 뛰어든 자에게, 불가능에 가까운 확률에 시간을 탕진한 자에게 내려진 형벌. 찢어진 돛을 붙잡고 안간힘을 쓰며 버텨 보았지만, 꿈이라는 조각배는 33호 초대형 태풍 ‘현실’ 앞에 맥없이 부서졌다. 그렇게 난 이 외딴섬이 표류하게 되었다.




서른셋. 친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바일 청첩장을 보내왔고 술자리에서 오고 가는 말들은 외계의 소리처럼 내 귀의 주파수와 맞지 않았다. 부동산, 주식, 재테크 같은 단어들은 멜로디, 리듬, 하모니처럼 무용한 단어보다 힘이 셌고 어릴 적 내내 힘주어 말했던 ‘음악’이란 두 음절은 ‘돈’이라는 한 음절 앞에 창피한 듯 고개를 들지 못했다. 한때 자랑이자 자부심이었던 음악은 시간이 흐르자 초라한 명함이 되어 있었다. 누구나 어른이 되면 사회라는 링 위에 올라야 하는데 내겐 직장, 사회적 지위라는 글러브나 마우스피스 따위의 기본적인 장비도 없었다. 맨몸으로 얻어맞으며 주먹 한 번 제대로 뻗지 못하는 샌드백. 펀치는 사방에서 날아왔다. “야, 너 언제까지 그러고 살 거야? 다들 결혼하는데 너도 빨리해야지 인마.” “애 키우려면 돈이 얼마나 드는 줄 아냐. 정신 차리고 일단 뭐라도 좀 해봐.” 음악은 ‘뭐’도 아니었다. 부아가 나서 죽을 지경이었지만 축의금 낼 돈도 없던 난 가만히 입을 닫고 있어야 했다. 흰 타월을 던지며 패배를 인정하기엔 자존심이 상했고 꿈을 지키기엔 나이가 많았다. 그때껏 애써 만든 작은 세계가 부식되고 허물어져 가는 모습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만약 한 가지가 있다면 그들에게서 조용히 자취를 감추는 것뿐이었다. 

동료 음악가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내 입에서 꿈이라는 단어가 툭 튀어나올 때면 그것이 마치 수백만 년 전에 멸종한 우스꽝스러운 이름을 가진 파충류라도 되는 듯 비웃더니, 자신보다 덜 진화한 영장류를 보듯 깔보며 말했다. “진심? 위로? 웃기고 앉아 있네. 야, 돈 잘 버는 놈이 선배고 일류야. 언제까지 꿈 타령이야?” 속으로 손가락 욕을 연신 퍼부었지만 반박할 수 없었다. 나 같은 인디펜던트에게 돈이란 악기, 작업실, 앨범처럼 음악과 무관하지 않은, 오히려 음악을 하기 위해 가장 필수적인 요소였으니까. 내 컴퓨터가 스케치 파일의 공동묘지가 된 것도 앨범 제작 비용 때문이니까. 헷갈리기 시작했다. 내가 쫓던 것이 무엇인지. 속물이라 부르던 이들과 내가 무엇이 다른지. 내 안에 무언가 있긴 한 건지. 그렇게 누군가를 미워할 수도, 원망할 수도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난, 나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음악이 내 삶을 구원해 줄 거라던 믿음은 한순간에 증발했다. 그 빈자리를 메꾼 건 콘크리트처럼 쏟아진 나를 향한 의심이었고 그것은 점차 확신으로 굳어갔다. 딱딱하고 메마른 마음은 어떤 선율도 만들어내지 못한 채 쩍쩍 갈라지며 균열을 만들었다. 그 틈 사이로 피하고 싶던 진실이 침입해 말을 걸어왔다. 사회든 음악 세계든 어디에도 너의 영토는 한 뼘조차 허락되지 않을 거라고. 음악이란 재능 있는 자들의 파티고 너 같은 건 입구에서 컷이라고. 외면했던 사실은 자의식을 삼키며 거침없이 몸집을 불려 나가더니 마침내 괴물이 되어 관자놀이를 찌르는 이명과 함께 정신을 갈가리 찢어댔다. ‘관심이나 받고 싶은 속물 주제에, 밥벌이도 못 하는 낙오자 주제에, 예술가인 척 구는 거. 역겨워.’ 칼로 찌르는 듯한 말에 마음이 비명을 질러댔지만, 그 소리는 자책과 자학이 만든 소음에 힘없이 잡아먹힐 뿐이었다. 그늘진 얼굴. 어두운 표정. 거울 속 내 모습은 볼품없었다. 그때 조각난 기억 하나가 스쳐 갔다. 함께 공연하자는 그의 제안에 친구들과 먼 길을 갔던 그날. 천안의 한 클럽. 비슷한 처지였음에도 불만이나 불안이 묻어 있지 않았던 그의 얼굴. 공연 내내 대자연의 가호라도 받은 듯 싱싱한 기운을 뿜어내던 모습. 공연을 마치고 환한 얼굴로 인사를 건네던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벚꽃으로 물들이더니 스스로 만개했다. 난 투항하듯 혼자 중얼거렸다. ‘음악은 나처럼 가짜 빛이 아니라 그이처럼 진짜 빛을 품은 사람이 하는 거야.’


작업실은 사막처럼 메마르고 황폐해져 갔다. 하얗고 검은 88개의 건반은 52개의 무기력과 36개의 열패감으로 채워진 것처럼 어떤 코드를 눌러도 지저분한 불협화음만 만들었다. 음표들은 쓸모없는 기호처럼 오선지에서 이탈했고 느슨해진 간격 사이엔 보상심리라는 이물질이 잔뜩 끼었다. 섣부른 도전이 만든 예견된 실패가 독촉장처럼 쌓여갈 때마다 나는 냉혹한 고문관처럼 나를 향해 더 강한 채찍질을 가했다. ‘네가 선택한 길 아냐? 누가 억지로 떠밀었냐고! 좋아하는 것도 제대로 못 하면서 대체 뭘 하겠다는 거야? 여기서 도망치면 넌 평생 패배자로, 싸구려로, 쓰레기로 살다 비참하게 죽을 거야!’ 그렇게 달콤한 상상으로 뒤척이던 기쁨의 밤은 자기혐오로 가득 찬 불면의 밤이 되었고, 난 어둠 속에 갇혀 버렸다. 그때껏 내 곁에 남아 있던 사람들이 크레바스에 빠진 내게 손을 뻗어줬지만 그들의 진심은 자격지심이란 필터에 걸러져 내게 닿지 못했다. 끈질기게 버티던 열정의 불씨를 꺼트린 건 세상도, 사람도, 음악도 아니었다. 내가 나를 증오하게 되자, 내 안의 불이 꺼졌다. 그 스위치를 누른 건 나였다.


후회, 자책, 우울, 비관. 폐수처럼 쏟아지는 감정들에 섬은 오염되고 있었다.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했다. 인디라는 이름 지긋지긋하다고. 남들 앞엔 개성과 스타일처럼 멋진 의미로 서 있으면서 내 앞에만 상품성 없는 하찮은 인간이란 푯말을 들고 서 있는 단어. 탈출을 계획했지만 내 시도는 얼마 지나지 않아 좌절되었다. 바다가 없었다. 섬을 둘러싸고 있는 건 어둑한 안개뿐이었다. 세상이 알지 못하는 이름을 가진 뮤지션인 나에게 고유의 좌표 따윈 없었고 나침반은 방향을 잃은 듯 뱅뱅 돌기만 했다. 게다가 다른 세상으로 나아갈 배를 만들기 위해선 자격증, 경력, 학력이란 값비싼 재료가 필요했다. 내가 기댈 땅이라곤 작고 초라한, 그 섬뿐이었다. 그렇게 절망에 빠져있던 어느 날. 섬에 거대한 화산이 폭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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