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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환 Oct 22. 2023

화산폭발

그제야 음악이 간절해졌다

악몽 같은 현실을 마주한 건 2019년 2월, 겨울의 끝 무렵이었다. 심장이 두 뺨으로 자리를 옮긴 듯 얼굴이 쿵쿵대고 피부가 따끔거려 잠을 들락거리던 새벽. 거울 앞엔 끔찍한 장면이 기다리고 있었다. 얼굴을 덮은 불그스름한 열꽃 위로 구릿빛 진물이 촛농처럼 흘러내리는 모습. 눈을 감았다 뜨기를 몇 번이고 반복하며 확인했지만 꿈이 아니었다. 처참한 광경에 목소리는 말을 빼앗긴 듯 정체불명의 신음만을 흘려보냈고 귓가엔 삐 하는 노이즈가 서스테인 페달을 밟은 것처럼 길게 들려왔다. 공황 상태에 빠진 난, 주저앉아 생각했다. 요즘 컨디션이 안 좋아서 피부가 뒤집어진 걸 거야, 며칠 쉬면 괜찮아질 거야. 낙관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날 내가 본 것은 전조현상일 뿐이었다.


증세는 빠르게 악화되었다. 두통의 강도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이명의 데시벨은 한계치를 돌파해 연신 빨간 피크를 띄워댔다. 모니터의 미세한 열도 견디지 못하게 된 얼굴은 작업하는 내내 주먹으로 얻어맞은 듯 욱신거렸고 노래를 부르면 입가에 염증이 터져 누런 농이 흘러나왔다. 피아노를 치려 고개를 살짝만 숙여도 피가 쏠려 현기증이 일었다. 별수 없이 모든 일을 중단하고 치료에 몰두했다. 이른바 성지라고 불리는 피부과 전문 의원, 한의원, 대학병원을 찾아다니며 처방받은 약을 꾸준히 먹고 가이드라인을 철저하게 따랐다. 하지만 상황은 나빠져만 갔다. 염증이 터지고 흉 지고 다시 터지는 악순환은 계속되었고 급기야 탈모마저 진행됐다. 그렇게 불과 두 달 남짓한 시간 동안, 내 모습은 흉측한 괴물처럼 변해버렸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서 의사는 내 얼굴을 보더니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증상이 심각하네요, 약은 꾸준히 드셨죠? 그러고는 ‘주사’라는 병명을 언급하며 이런저런 설명을 이어갔다. 듣고 싶지 않았다. 이름이 바뀌고 정보가 늘어난들,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을 테니까. 붉은 얼굴, 터지는 물집, 흘러내리는 주황빛 고름. 내 앞에 존재하는 건 분화하는 화산이었다. 눈을 가리는 것이 최선의 처방이었다.



   

사그라질 줄 모르는 고통으로 인해 불행의 농도는 짙어졌고 안쪽엔 시뻘건 분노가 마그마처럼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난 비겁한 눈으로 터질 것 같은 분노를 표출할 대상을 물색했다. 그러고는 의식의 투망에 걸린 이름들을 모조리 과녁에 적어놓고 화살을 쏴댔다. 하나만 걸려 봐라, 하는 식으로. 통증이 심해지는 밤이면 활시위를 더 세게 당기며 비난의 수위를 높였고 과녁은 금세 더러운 원망으로 쌓여갔다. 내 탓이 아니길 바랐다. 그러나 화살이 꽂힌 곳은 결국 내 이름이었다. 그건 그저 자해였다. 피부를 갉아먹은 병은 정신마저 파먹으며 생채기투성이가 된 마음을 절망이란 바이러스에 감염시켰고 이내 말은 빛이나 희망을 어떻게 발음하는지 잊은 듯 어둡고 폭력적인 단어들만 뱉어댔다. 견디다 못해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어 연락처를 뒤적거리면 휴대전화 액정 뒤편에서 환청이 들려왔다. 좋아하는 거 하고 살면서 뭐가 힘들다고 난리냐?, 응석 좀 그만 부려, 그 정도는 다 참고 살아, 같은 말들. 힘듦에도 등급이 있으니 9등급 따위는 닥치라며 내 입을 막던 손들. 외로웠다. 그제야 음악이 간절해졌다.

 

음악가로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새로운 인생을 준비할 나이였고 그건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이었다. 다른 일을 하고 싶기도 했다. 허구한 날 제대로 벌어먹지도 못하는 거지 같은 생활이 지겨웠다. 그런데 막상 음악을 할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자 온갖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나태했던 시간에 대한 후회,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자책,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무대에 서고 싶다는 미련. 할 만큼 했다, 하고 쿨하게 돌아설 것 같았던 라스트 신은 예상과 달리 구질구질했다. 난 매달리고 있었다. 아니 매달리고 싶었다.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그럴수록 화산은 폭발지수를 올리며 날 무릎 꿇렸다. 한낱 인간 따위가 자연의 거대한 힘을 막을 수 있겠냐며. 네 음악은 완전히 끝났다며. 억울했다. 하고 싶은 게 많았다. 작은 클럽에서의 단독공연, 나의 정수를 담은 첫 정규앨범 같은 것들. 조금만 더 걸어가면 닿을 것 같았던 꿈들. 진물과 섞여 길게 흘러내리는 눈물이 긴 노래의 끝을 알리는 마침줄처럼 보였다. 추한 가면 밑에 가라앉은 하얀 과거로 돌아가고 싶었다. 미래를 팔아서라도.


친구들 사이에서 ‘흰둥이’라고 불리던 나는 별명 그대로 하얀 아이였다. 처음 보는 사람마다 만져봐도 되냐며 호기심을 보일 만큼 깨끗했던 피부는 나의 캐릭터이자 자랑이었고, 내가 가진 유일한 재능이었다. 음악을 시작했던 열일곱. 그때 난 두 가지 충격적인 사실과 마주했는데 하나는 내가 음악의 여신 뮤즈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사람들이 내 연주보다 피부에 더 관심이 많다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철저하게 관리했다. 16년을. 라면은 1년에 2번만 먹었고, 뾰루지가 올라온다 싶으면 일주일 내내 초식동물처럼 채소만 씹어댔다. 한겨울에도 자동차 히터는 절대 틀지 않았고, 틈만 나면 하마처럼 물을 마셔댔다. 그건 나름의 생존 본능이었다. 음악 세계의 가장자리에라도 서려면 뭐든 동원해야 했다. 그토록 아끼고 가꿨던,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나의 조각은 찢기고 훼손되어 부끄러운 얼룩이 되어있었다. 불에 달군 납덩이처럼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엔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낙인이 찍혀있었고, 목소리는 우울이란 한 가지 음밖에 내지 못한 채 온기를 잃어갔다. 외로움, 비관, 현실 부정, 자기혐오란 환장의 4중주가 펼치는 환멸의 앙상블도 어느덧 최종 악장만이 남아있었다. 음침하고 슬픈 마이너 코드의 장송곡이 불길한 예감과 함께 귓속으로 훅 밀려들어왔다. 마지막 선택만이 이 시궁창에서 벗어날 치트 키처럼 여겨졌다. 살기 싫었다.


탈선한 정신이 다다른 곳은 암흑물질로 가득한 잿빛 정거장이었다. 곧이어 냉소에 찬 음흉한 목소리가 출입국심사를 하듯 말했다. 재능은 밑바닥, 나이도 많고, 얼굴까지 엉망이고. 희망이란 티끌도 없네요. 게다가 당신 지갑엔 돈도, 이 바닥에서 가장 가치 있는 화폐인 인맥도, 하다못해 운을 시험할 동전조차 없군요. 완벽합니다. 통과! 한 걸음 한 걸음. 세상과의 접촉면이 사라지던 그때, 멀리서 가늘고 희미한 비명이 들려왔다. 가청 범위 내에 간신히 닿은 그 소리는 모스부호처럼 툭툭 끊기며 간절한 호소를 이어갔고 난 그 신호를 해독하려 애썼다. 메시지는 분명하고 간절했다. ‘건너지 마. 제발.’ 갑자기 안쪽에서 솟구치는 뜨거운 눈물과 함께 지난날들이 글리산도로 미끄러지듯 발등에 떨어졌다. 기억의 잔여물 속엔 못마땅한 얼굴로 나를 학대하는 내가 있었다. 그리고 아프다고, 그만하라고 애원하는 또 다른 내가 있었다. 둘은 많이 울고 있었다. 비로소 사건의 첫 번째 실마리를 찾은 나는 눈을 감고 생각했다. 혼탁한 무의식의 바다에서 내가 손을 뻗어 건져내야 했던 건 가라앉은 돈스코이호의 가짜 황금이 아니라 부유하는 쓰레기였다고. 인기, 명예, 물질 따위에 눈이 멀어 나를 오염시키는 열등감, 패배감, 굴욕감 같은 나쁜 감정들은 방치했다고. 나의 지구를 파괴한 건 결국 나였다고.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다음 날 아침. 나는 신발 상자 속에 빼곡히 들어찬 약과 연고들을 꺼내 종량제 봉투에 쑤셔 넣었다. 약이 줄어들수록 불안이 커졌지만, 지난밤의 일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나는 스스로를 타이르듯 작게 소리 내어 말했다. 병원이야 언제든 다시 갈 수 있어. 지금 치료해야 하는 건 마음이야. 마음이 먼저야. 쓰레기봉투를 내다 버린 뒤 온라인 쇼핑몰에서 가벼운 운동화를 주문했다. 그건 처음으로 나 자신에게 내린 처방이었다. 그리고 끝을 알 수 없는 험난한 여정의 시작이었다. 화산은 쉬지 않고 불을 뿜으며 폭발하고 있었다. 난 거울을 노려보며 다짐했다. 한 걸음 한 걸음. 저 뜨거운 불길 속으로 들어가겠다고. 마음이 외치는 비명과 절규에 귀 기울이겠다고. 미안해, 라며 진심을 담아 만든 답가를 꼭 들려주겠다고.

그렇게, 걷기로 했다. 내 안의 소리를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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