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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환 Oct 22. 2023

스트레스 마주하기

자체 생산 금지

수개월 동안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진료실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스트레스받지 마세요’였다. 틀린 소린 아니지만 그게 마음먹는다고 되는 일인지. 로봇에게 명령어를 넣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렇다면 어떤 표현이 적합할까. 스트레스 거절하세요, 거부하세요, 차단하세요? 병이란 게 이토록 무섭다. 신경이 날카롭고 예민해져서 평소 같으면 부드럽게 흘려보낼 말이 고깝게 들린다. 염증 수치가 올라갈수록 사회성이 떨어지는 느낌. 사람이 힘들면 못 먹는 말이 많아지는 것 같다. 걱정이 동정으로, 위로가 무시로 들리고 휙 지나가는 말에도 감정 알레르기 반응이 온다. 그럴 땐 굶는 게 약이다.


거울에 몰골을 비춰 보니 고름과 진물이 잔뜩 엉겨 붙어 있었다. 선크림 따윈 엄두도 내지 말라며 협박하는 피부병. 결국 해가 진 뒤, 첫 산책에 나섰다. 모험을 떠나는 소년 만화의 주인공처럼 활기차게 출발하고 싶었지만 그림이 영 아니었다. 신발끈을 묶으려 고개를 숙이자, 피가 쏠려 얼굴이 벌게졌고 눈에 실핏줄이 터졌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좀비 같았다. 미세한 움직임에도 난리를 치는 망할 놈의 화산. 대체 뭐가 문제일까. 질문에 답하듯 언젠가 자연 다큐에서 봤던 이미지가 하나가 스쳐 갔다. 지하 깊은 곳에 만들어진 마그마방에 마그마가 쌓이고 압력이 높아지면 지표면을 뚫고 분출한다는 뭐 그런 이야기.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가 쌓였길래 이런 대폭발이 일어난 걸까. 대망의 첫걸음을 떼며 지난 스트레스를 곱씹어 보았다.




독립 음악은 가내수공업이다. 창작, 실연, 생산, 홍보. A부터 Z까지 웬만한 건 다 해야 한다. 나의 경우 싱어송라이터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문제는 제대로 하는 게 한 가지도 없다는 것. 그러면서 눈은 또 높다는 것. 능력 밖의 것을 탐하면 생이 고달파지기 마련인데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A급 스튜디오, 고급 장비, 값비싼 프로그램. 난 내 형편엔 맞지 않는 것들에 집착했다. 역시 회사 없는 애들 음악은 퀄리티가 구려, 하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서였다. 제작비가 얼마 들어갔든 몇 명의 인원이 투입됐든 사람들이 듣는 건 그저 하나의 음악일 뿐이니까. 나 또한 외적인 요소를 감안해서 듣지 않으니까. 화려한 비주얼, 세련된 스타일링으로 무장한  뮤직비디오 같은 건 없어도 음악의 품질만큼은 뒤처지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왠지 독립 음악가의 자존심처럼 여겨졌다. 지금 생각하면 혼자 꼴값을 떤 것이다. 장르와 목적이 전혀 다른 음악을 놓고 섀도복싱 하다 쓰러지는 꼴이라니. 허구한 날 포장지만 고르던 나는 뒤늦게 알아차린 듯 속으로 말했다. ‘아! 맞다, 선물!’

  

본격적으로 곡을 쓰기 시작하자 비로소 상황 파악이 되었다. 한가하게 포장지나 고를 때가 아니었다. 홍대 인디 밴드로 활동하던 시절. 한 팀이 공연 도중 했던 멘트가 떠올랐다. “저희가 족발을 무진장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족발집을 차렸어요. 근데 알고 보니까 거기가 족발 골목이었던 거예요. 원조, 프랜차이즈, 맛집, 퓨전, 별의별 족발이 다 있는데 궁금해서 먹어보니 하나같이 다 개성 있고 맛있더라고요. 그래서 생각했죠. ‘아, 장사 망했구나.’ 근데 이렇게 찾아와 주시고 저희가 만든 족발 맛있게 드시는 걸 보니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럼, 다음 곡 들려드릴게요.” 뭔 시답잖은 소리야. 그땐 그렇게 생각했다. 막상 내가 차려보니 알겠더라. 다른 가게 족발 먹어볼 필요도 없다. 아오, 더럽게 맛대가리 없네. 퉤퉤. 내 음악이 그랬다. 그때부터 이른바 지옥의 맛 평가가 시작됐다.


난 평가지를 꺼내놓고 조목조목 따져가며 점수를 매겼다. 잘생긴 뮤지션을 기준으로 내 외모를, 뛰어난 보컬리스트를 기준으로 내 노래 실력을, 업계 최고의 프로듀서를 기준으로 내 창작물을. 점수는 당연히 빵점이었다. 난 성층권을 넘어 우주로 날아가 버린, 별이라 불리는 음악가들과 나를 비교하고 있었다. 저렇게 불러야지! 이 정도밖에 못 만드냐! 하며 취객처럼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내 귀에 했던 말을 하고 또 했다. 마치 내가 나의 안티인 것처럼. 그럴수록 나와 내 음악이 부끄럽게 여겨졌고 자존감과 자신감은 떨어지다 못해 땅을 뚫고 지하 팔백 미터까지 내려갔다. (마그마방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게 그때쯤이지 않을까 싶다) 비교질은 갈수록 심해졌고 작업실엔 온갖 욕설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어둡고 메스꺼운 감정들이 안쪽에 창궐하는 동안 나는 스스로에게 아무런 백신도 공급하지 않았다. 수고했다고, 애썼다고, 등 한번 토닥여 주는 게 뭐가 그리 어려웠는지. 더 잘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었다고 애써 포장하기엔 난 열심히 하지 않았다. 그저 그들처럼 대중에게 사랑받고 동료들에게 인정받고 싶었을 뿐이다. 아무도 떠밀지 않은 비교와 평가의 늪에서 혼자 끙끙대며 보냈던 시간. 나는 받지 말라는 스트레스를 도리어 만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저 그들이 가진 능력을 부러워하는 정도로 끝났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스트레스를 떠올리니 스트레스가 몰려왔다. 잠시 쉬려고 벤치에 앉았는데 잔디밭에서 한 커플이 깔깔대며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문득 고대어처럼 먼 옛날에 썼던 것 같은 단어 하나가 떠올랐다. 사랑. 비교와 평가를 스킵하는 마법 같은 힘을 지닌, 낭만이 사라진 시대에도 멸종당하지 않은 그 단어. 나도 처음엔 음악을 사랑했었다. 누구처럼 되고 싶어서, 누구보다 유명해지고 싶어서가 아니라 내 마음을 위로해 주고 가슴을 뜨겁게 해주는 것이 음악이었기에. 부족해도 내 뜻대로 되지 않아도 하루하루가 설레고 즐거웠다. 이제 막 사귀기 시작한 연인처럼 작은 것에도 웃음이 나고 마주하러 갈 생각에 마음이 구름처럼 둥둥 떠다니곤 했다. 근데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내 사랑은 왜 변한 걸까.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화장실에 들러 거울을 보았다. 몸을 써서 그런지 도깨비처럼 빨개진 얼굴 사이 찐득한 고름이 왕창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런 내가 누군가와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랑받을 수 있을까. 하나를 잃었을 뿐인데 전부를 잃은 듯한 기분. 주눅 든 마음은 입을 꾹 닫고 있었다. 난 무거운 발걸음을 마저 옮기며 다짐했다. 언젠가 나아진다면, 그땐 연인에게 주는 선물처럼 사랑이 넘치는 곡을 써야지. 스트레스가 아닌 낭만을 만드는 음악가가 돼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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