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정환 Oct 22. 2023

평균은 배꼽 ‘도’

도레미파솔라시 도

뉴스와 인생의 공통점은 밝은 소식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슬프고 그늘진 이야기뿐이다. 간혹 상상을 뛰어넘는 상식 밖의 일을 접할 때면 황당함에 웃음이 나오긴 한다. 마치 누가 더 창의적인지 대결하는 것 같은 일들. 이러다간 머지않아 한강에서 바다악어가 나올 판이다. 내게 들려오는 소식도 마찬가지다. 기다리는 연락은 오지 않는다. 불쾌한 광고의 무덤이 되어버린 메일함을 보며 화가 치밀다가, 몇 번이고 차단해도 모기처럼 끈질기게 쫓아다니는 스팸 전화에 어질어질해진다. 그날도 화창한 뉴스는 없었고 밝은 소식은 없었다. 메일함을 정리하고 오래간만에 인터넷 기사들을 둘러봤다. 백화점 명품관 오픈런, 외국계 프랜차이즈 식당 오픈 행사에 새벽부터 줄 선 사람들, ㅇㅇㅇ 자동차 예약 첫날 신기록 달성. 전혀 해당 사항 없는 기사들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야, 잘 먹고 잘사는 사람 정말 많구나. 하기야 SNS만 봐도 그렇지. 호텔 뷔페, 오마카세, 파인 레스토랑... 잘 먹고 잘사는 사람이 많은 게 아니라 잘 먹고 잘사는 사람밖에 없는 것 같은 대한민국. 다들 행복하고 풍요로운데 난 왜 이 모양일까. 도대체 평균은 어디일까. 다시 몰려오는 자기 비하를 싸 갈기러 들른 공원 화장실에서 아름다운 피아노곡이 흘러나왔다. 쇼팽이 수수께끼의 힌트를 건넸다.




‘가온도’는 피아노 가운데에 앉았을 때 배꼽 위치에 있는 ‘도’ 건반이라 ‘배꼽도’라고도 부른다. 88개로 이루어진 건반의 가운데 위치한 음. 어쩌면 피아노의 세계 안에서 배꼽도는 평균을 의미하는지도 모르겠다. 노래를 부르다 보면 자연스레 자신의 음역을 알게 되는데 피아노 건반 위에서는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 편하다. 뚱땅거리며 손으로 짚어 가다 보면 ‘내 음역대가 이 정도구나, 여기가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높은음이구나’하고 나의 소리 영역이 실체를 드러낸다. 문제는 그다음부터다. 노래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이 가수는 음역대가 정말 넓구나, 이렇게 높은음을 참 편하게 부르는구나’하며 나의 음역대와 비교하게 되는 것. 실제로는 소리가 아닌 범위의 차이일 뿐인데 이것을 절대적 가창의 지표로 받아들이고는 음악을 벗어난 수학의 함정에 빠지는 것이다. 음역을 아파트 평수처럼, 고음을 자동차의 등급처럼 여기듯 말이다. 더 넓은 집, 더 좋은 차, 더 비싼 옷. 더 넓은 음역, 더 높은음, 더 큰 성량. 타인의 음역과 나의 음역을 비교하며 만들어진 열등감은 내가 가진 좋은 소리를 희미하게 만든다. 나 또한 그런 이유로 작곡 단계에서 음역을 너무 높게 설정해 버려 망친 노래들이 있다. 내가 가진 좋은 소리로 정성껏 불렀다면 나름 괜찮았을 곡이 이런 자격지심 때문에 휴지통에 많이 버려졌다.

물론 풍부한 성량, 넓은 음역은 가창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많은 가수가 끝없는 노력으로 이를 발전시키고 정교함을 더해간다. 전달력이 좋아지고 감동의 폭이 커진다. 그렇다면 노력이 동반되지 않은, 자신의 음역을 벗어난 노래는 어떨까. 단순하다. 음 이탈 현상이 생긴다. 뒤집어지고 갈라지고 엉망진창이 된다. 이런 경우 많은 사람이 ‘난 노래를 못 하나 봐’하는 좌절에 빠지는데,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 누구나 자신만의 목소리, 즉 ‘좋은 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노래방 문화가 발달한 우리나라에서 종종 쓰이는 말이 있다. ‘원키’. 노래의 원래 키라는 이 말은 보통 “높고 어려운 노래 도전!”하며 선포할 때 종종 쓰인다. 그렇다면 ‘원키’로 부르면 무조건 잘하는 노래일까. ‘잘하는 노래’란 ‘듣기 좋은 노래’와 뜻이 같지 않을까. 음악은 데시벨과 음높이를 측정해 순위를 나누는 스포츠가 아니니까.


자신의 음역과 맞지 않는 곡을 무리해서 부르다 ‘음 이탈’하게 되는 것처럼 인생도 욕심부리다 보면 ‘삑사리’가 나기 마련이다. 비교와 경쟁, 타인의 시선 때문에 내가 가진 좋은 소리를, 내 삶에 행복한 순간들을 휴지통에 버리고 있는 건 아닌지, ‘배꼽도’의 위치를 너무 높게 설정한 나머지 스스로 불행에 빠지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본다. 누구에게나 ‘나에게 맞는 노래’ 하나쯤은 있을 텐데. 아직 찾지 못했거나, 제대로 듣지 못했을 뿐.     

위대한 보컬리스트들의 노래를 들으며 한적한 공원을 걷다 보니 전에는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가창력 뒤에 숨은 노력, 기술보다 앞서있는 진심. 노력하지 않고 부족한 재능과 환경만 탓한 건 아닌지, 내가 가진 소중한 소리를 하찮게 여긴 건 아닌지 머쓱해졌다. 언젠가 나만의 좋은 목소리로 노래하는 그날이 오길, 그런 인생이 되길 바라며 산책을 마치던 그때,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노래가 너무 좋아서 쪽지 보내봤어요. 목소리 정말 좋으세요.” 헛웃음이 나왔다. 뉴스도 인생도 아주 아주 가끔, 좋은 소식이 있긴 하다. 그날은 내게 한강에서 흰수염고래가 나온 날이었다.


이전 12화 다정한 트라우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