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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환 Oct 22. 2023

승리의 V

나를 이기다

피부병과 사투를 벌이는 사이 통장의 잔고가 바닥났다. 숨만 쉬어도 증발하는 돈. 내가 뱉는 이산화탄소에 누군가 몰래 세금을 매기고 걷어가는 게 분명하다. 앞으로 몇 달을 버틸 수 있을까. 암울한 미래를 계산하려 메모장에 적은 초라한 숫자는 ‘당장 다음 달에 짐 빼!’ 하며 깐깐한 주인아주머니처럼 역정을 놓았다. 이놈의 독립영화는 늘 예산 문제에 시달린다. 상영은커녕 한 컷 찍는 것도 버겁다. 일단 급한 불부터 끄고 보잔 생각에 아르바이트와 공모전 사이트를 기웃거리다 발견한 관광지 활성화를 위한 공연 프로젝트. 선정 소식에 뛸 듯이 기뻐하며 속으로 만세를 외쳤지만 기쁨도 잠시. 걱정과 함께 불길한 예감이 밀려왔다. ‘이런 상태로 사람들 앞에서 노래할 수 있을까. 이게 맞는 걸까.’ 생존과 책임 사이에서 저울질한 끝에 결론을 내렸다. 불안이야 내 삶의 기본값 아닌가. 하루만 버티면 음악 수명을 한 달 연장할 수 있다고. 뭐 별일 있겠어? 그때까진 몰랐다. 그 예감이 정확히 들어맞을 거라는 걸. 인생 최대의 험난한 무대가 기다리고 있다는 걸.




D-day. 첫 번째 공연은 경기도 포천에 위치한 복합 문화예술시설에서 열렸다. 일찌감치 도착해 관계자의 안내를 받아 귀엽게 생긴 노란 카트를 타고 10분 남짓 언덕을 오르자, 야외무대가 덩그러니 모습을 드러냈다. 간단한 리허설을 마친 뒤 곡 순서와 러닝타임 점검하던 중, 내 앞 순서이자 공연의 오프닝을 맡은 팀이 도착했다. 피아노, 베이스, 보컬로 구성된 팝 재즈 트리오. 이른바 ‘베테랑’의 기운을 뿜뿜 뿜어대며 무대에 오른 그들의 리허설이 시작되자 마법처럼 객석이 하나둘 채워지기 시작했다. 몸 푸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절정의 고수라는 걸. 잠시 후 그들 뒤에 공연해야 한다는 사실에 다리가 후들거렸다. 3인조가 만들어내는 거대한 앙상블. 그 소리는 과거를 소환하고는 내게 말했다. ‘친구들 없는 넌 아무것도 아냐.’ 길 잃은 맹꽁이처럼 움츠러든 내 정신을 트라우마가 뱀처럼 휘감았다.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얼굴이 쿵쿵거렸다. 아직 무대에 오르기도 전이었다. 난 속으로 중얼거렸다. ‘집에 가고 싶다.’

공연 안내방송이 끝나자, 곧바로 첫 곡이 시작됐다. 탄탄한 실력과 노련한 무대매너를 갖춘 그들의 공연은 환호와 박수가 아깝지 않은 ‘명품’이었다. 관객들과 기분 좋은 랠리를 주고받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질투와 감탄의 마음이 동시에 일었다. 한 곡 한 곡 이어갈수록 분위기는 점점 고조됐고, 우중충한 날씨에도 주말을 즐기러 나온 사람들 얼굴엔 맑은 가을 하늘이 피어났다. 객석은 순식간에 가득 찼고 마지막 곡이 끝나자, 그 뜨거운 분위기를 배턴터치 할 시간이 오고 말았다. 만족해하는 미소 위로 기대에 찬 눈빛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담담히 인사를 건넨 뒤, 첫 곡을 시작했다. 순간 공기의 흐름이 바뀌더니 무대에 한기가 돌았다. 첫 음을 땔 때부터 내 목소리는 뒷걸음치며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관객들의 표정은 순식간에 굳었고, 그 모습에 온몸을 얻어맞은 듯 가슴이 쪼그라들었다. 아무 소용없었다. 잃어버렸던 나를 찾고 다시 세상에 나아가려고 몸부림쳤던 날들. 이 빌어먹을 외딴섬에서 탈출하기 위해, 얼굴에 흐르는 진물과 역겨운 두통을 이고 걸었던 시간 모두. 노래가 한 곡 끝날 때마다 불 꺼진 쇼윈도를 보듯 관객들은 하나둘 자리를 떠났고, 조난신호처럼 간절하게 외친 소리는 힘없이 허공을 맴돌다 반송되었다. 음악은 만국 공통어라지만 나의 언어는 통용되지 않았다. 어색하고 견고한 침묵이 비난과 야유로 번역되어 들려왔다. 내가 서 있는 무대가, 마치 날 조롱하기 위해 만든 설치물처럼 느껴졌다. 기껏해야 3분 남짓한 노래가 30분 넘게 얼차려를 받는 듯 힘겨웠지만 무엇보다 날 괴롭게 만든 건, 관객들도 그 순간을 견뎌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마지막 곡을 소개하려 객석을 둘러보니 오십 명 가까웠던 관객이 두 명으로 줄어있었다. 참담한 광경에 의기소침해진 나는 반음 플랫된 목소리로 나지막이 마지막 멘트를 건넸다. “뒤에 멋진 공연이 준비되어 있으니 끝까지 봐주세요. 감사합니다.” 내 이름을 말하는 것도 잊었다. 부끄러워 말하기 싫었는지도 모른다. 실패는 고통처럼 익숙해지지 않아 매번 새롭게 아프다. 겨우 마지막 곡을 부르고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가려는 그때, 한 아이가 쭈뼛거리며 말을 걸어왔다. “아저씨, 사진 찍어도 돼요?” 얼빠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소심하게 v자를 만들어 아이와 셀카 두 장을 찍었다. ‘무대에 섰다는 것만으로, 이 아이에게 난 뮤지션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나를 향한 원망이 소용돌이쳤다. 뛰듯 걸어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내 유일한 자랑거리인 튼튼한 두 다리는 로우킥 열 방은 맞은 것처럼 무릎이 툭툭 꺾였다. 긴장이 풀린 탓인지 피로가 쏟아졌다. 정신도 체력도 목도 최악인 상태. 안타깝게도 하나의 공연이 더 남아 있었다.


이동하는 차 안은 자기혐오의 말과 온갖 비속어, 하품의 CO2로 들끓었다. 무슨 핑계를 대야 하지. 이동 중에 사고가 나서 못 가게 되었다고 할까. 갑자기 배가 아파서? 그건 말이 안 돼. 학창 시절 조퇴 사유도 이것보단 그렇듯 하다고. 별별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어놨지만, 난 운전대를 잡은 어른이었다. 책임이든, 어떠한 형벌이든 오롯이 내 몫이었다. 빨간 신호 앞에 차들이 멈춰 서자 일제히 브레이크 등에 불이 들어왔다. 내가 있는 곳이 지나간 실패와 다가올 좌절 사이에 놓인 붉은 지붕을 덮어쓴 간이역 같았다. 도착 10분 전을 알리는 내비게이션의 안내 음성이 마치 돈을 걸고 생존게임을 벌이는 한 영화의 내레이션처럼 들려왔다. 쉽지 않은 미션이 기다리고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현장에 도착하니 네댓 명의 성악가들이 공연을 펼치고 있었다. 우아한 드레스를 차려입고 클래식 테마, 고전 영화 OST 등의 레퍼토리를 선보이는 그들의 목소리에선 품위가 배어났다. 애틋하고 감미롭다가도 한순간 천둥처럼 쩌렁쩌렁 뻗어 나가는 놀라운 목소리에 청중들은 뜨거운 박수로 화답했다. 고개를 떨궜다. 내가 준비한 무대가 서글프도록 창피하게 여겨졌다. 공연을 마치고 내려오는 그들에게 하인처럼 조아리듯 인사를 하곤 무대에 올랐다. 아, 아, 거리며 마이크 테스트를 하는데 느낌이 싸했다. 이게 지금 나오는 건가? 조금 전 폭풍 같은 소리에 얻어맞아서인지 내성적으로 변한 마이크는 내 소리에 반응하지 않고 있었다. 음향팀에서 볼륨을 올리자 삐! 하며 날카로운 하울링이 공기를 찢듯 비명을 쳤고, 관객들은 잔뜩 인상을 쓰며 귀를 막았다. 난 뭘 해도 안 되는 놈이구나.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서 사운드 체크를 이어가던 중 박물관의 폐관 시간 안내방송이 나왔다. 약속한 듯 자리에서 일어난 사람들이 밀물처럼 빠져나갔다. 차라리 잘 됐어. 아무도 보지 않는 편이 나아. 이딴 무대. 허약한 마음으로 쓸쓸한 풍경을 바라보는데 스텝 한 분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안내방송 끝날 때까지 내려와서 좀 쉬시죠. 마지막 순서라 시간 넉넉합니다.” 하긴. 내 몰골을 굳이 볼 필요도 없다. 이미 반쯤 질려있는 얼굴이겠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따듯한 배려의 말을 건넨 그에게 정중히 거절을 표하고 자리를 지켰다. 폐관 안내방송, 멀어져 가는 사람들, 저물어가는 태양. 문득 하나의 생각이 스쳤다. 이토록 나에게 어울리는 무대가 또 있을까. 한숨을 내쉬며 시선을 멀리 던지자 금빛 노을 위로 오리떼가 커다란 V자를 만들며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것의 의미를 쫓는 학자처럼, 그것과 교신하려는 샤먼처럼 멍하니 바라보자, 오리들은 금세 꿀벌무리처럼 작아지더니 조그만 화살표를 남기고는 어디론가 흩어졌다. 다른 길은 없으니 직진하라고 알려주는 표지판 같았다.

폐관 안내방송이 끝나자 큐 사인이 떨어졌다. 난 눈을 감고 음정을 조율했다. 나만의 배꼽 도를 기준으로. 내가 낼 수 있는 최선의 소리 내자고 다짐하며. 한 음절 한 음절. 평소의 보폭으로 걷듯 노래를 시작했다. 음표 사이의 공백에 잡념이 침범하지 않게, 두려움이 달라붙지 않게, 눈을 꼭 감고 내 안의 소리에 귀 기울였던 것처럼 내가 뱉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첫 곡이 끝나고 눈을 떴을 때, 놀랍게도 세 명의 관객이 시야에 들어왔다. 뒤이어 박수와 환호가 장난감 폭죽처럼 터졌다. 집 나간 자신감이 생일에 맞춰 돌아온 듯 안쪽이 소란스러웠다. 조금 전까지 한 줌의 이야기도 전하지 못했던 내 음악은 그들의 마음에 스미고 있었다. 문득 내가 찾던 구원이 어쩌면 대단한 게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상했던 만큼 근사하거나 기대했던 것만큼 눈부시진 않았지만, 마음에 들었다. 내가 앞에 놓인 그 장면이. 가슴을 젖히고 큰 소리로 다음 곡을 소개하며 앞으로 한발 걸어 나갔다. 고작 한 발자국인데 그들의 온기가 살에 닿은 듯했다. 순간 ‘저 사람들을 붙잡고 싶다’는 욕심이 일더니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고갈된 체력과 떨어진 집중력. 정신을 보호하는 막이 얇아진 틈을 타 트라우마가 불시의 일격을 가했다. 두 번째 곡의 반주와 함께 안쪽에서 시커먼 그을음이 올라왔다. ‘곧 등을 보이며 멀어져 가는 걸 보게 될 거야. 네가 불쌍해서 잠깐 봐준 거라고. 착각하지 마. 넌 안 돼.’ 오른팔의 감각이 느슨해지고 관자놀이에 찌르는듯한 통증이 솟구치던 그때, 어두워진 안쪽에서 초록빛 형광물질이 번쩍였다. “어이! 이거 내 최애곡이라고! 정신 안 차려?!” 보호받고 있었다. 혼자가 아니라는 위안에 긴장이 풀리자 트라우마는 꼬리를 감추고 맥없이 후퇴했다. 그동안 실패 마일리지를 쌓으며 얻은 경험은 길잡이가 되어 위기의 순간마다 서포트를 해줬고, 그렇게 준비한 트랙 리스트는 하나씩 지워져 갔다. 어느덧 마지막 곡을 앞두었을 때, 내 안에 누군가 들어온 듯 예정에 없던 멘트가 목구멍에서 흘러나왔다. “다들 준비도 많이 하시고 함께 즐길 수 있는 곡 위주로 무대를 꾸몄는데, 저만 이렇게 아무도 모르는 자작곡을 들고 와서 죄송합니다. 심지어 아직 발매조차 안 된 곡도 있어요. 사실 공연으로 돈 버는 것만 머릿속에 가득했던 거 같습니다. 그런데도 봐주신 세 분,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 노력해서 꼭 좋은 음악 세상에 선보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속엣말이 나오자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입을 앙다물고 그들과 눈을 마주쳤다. 괜찮다고, 좋은 노래라고 힘을 주어 말하는 모습을 가슴에 새기며 다짐했다. 이 낮고 좁은 무대가 나의 섬이라고. 화산폭발로 황폐해진 이 섬이 나라고.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나의 음악으로 이곳을 아름다운 화산섬으로 바꿔 보이겠다고. 그리고 떳떳하게 당신들을 초대하겠다고. 모니터 스피커에서 인공위성의 신호음이 들려왔다. 날아오를 시간이었다.


공연을 무사히 마치고 관객들에게 인사를 한 뒤, 잠시 서서 그곳의 풍경을 안에 새겼다. 일과를 마치고 서쪽으로 사라지는 금빛 노을, 춤추듯 떨어지는 낙엽, 물빛처럼 투명한 하늘. 쉽게 잊힐 평범한 화면 속에 훗날 기억될 두근거림을 걸어놓았다. 경쟁에서 살아남고 싸워서 이겼을 때 느끼는 요란한 떨림이 아니라, 내가 나를 안아주어 뜨끈해진, 느리고 조용한 두근거림을. 태양이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슬슬 산책할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어 서둘러 무대를 내려오는데 유명 스포츠 아나운서를 닮은 훤칠한 외모의 음향 감독님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박수를 건네는 모습이 보였다. 귓가에 중계 멘트가 들리는 듯했다. “아, 오늘 경기 말이죠. 전반전엔 0대 2로 끌려가며 힘들었습니다만, 후반전! 멋진 반전을 만들어냅니다! 3대 2로 승리했다는 기분 좋은 소식 전하며 중계를 마칩니다!”


긴 하루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산책에 나섰다. 기운이 쏙 빠져 당장 침대에 드러눕고 싶었지만, 오늘 받은 상처를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언젠가 곪아버린다는 걸 알기에 무거운 몸을 질질 끌고 공원으로 향했다. 막상 도착하니 되려 충전되는 느낌이 들었다. 선선한 가을바람에 말랑말랑해진 가슴 가득 생경한 성취의 공기가 퍼지더니 몸을 가볍게 했다.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하며 오늘 있었던 일을 되뇌었다. 나의 잘못과 다친 마음을 하나씩 꺼내 보려는데 이상하게도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너무 피곤해서일까. 초조한 마음에 속도를 올려보기도, 잠시 벤치에 앉아 쉬기도, 스트레칭을 하기도 하며 여러 방법을 써봤지만, 안쪽은 진공 상태가 되어버린 듯 침묵으로 가득했다. 충분할 리 없었다. 아직 들어야 할 말이, 보듬어야 할 상처가, 씻기지 않은 얼룩이 가득하다. 하지만 마음은 아무런 대답도 들려주지 않았다. 한참을 걸어 발바닥이 시큰하고 종아리가 올라와도 입을 꾹 닫고는 묵비권을 행사했다. 내일 다시 걸으며 생각하자,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갑자기 기억하기 싫은 한 장면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피부병이 가장 심했던 시기의, 어느 날의 기억이. 욱신거리는 얼굴의 통증과 두통에 견딜 수 없어 많이 울었던 날. 그 눈물이 진물과 고름과 섞여 내려와 입술에 닿았던, 그 쓰고 불쾌했던 맛. 난 끝났다며, 애꿎은 컴퓨터를 집어던져버리려다 그 안에 들어있는 노래들이 훼손될까 두려워 이를 악물고 품에 끌어안았던 날. 내 주위에 아무도 없었던 날. 어쩌면 정말 나를 버릴뻔했던 그날.


정답을 찾은 난 미소를 지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제야 내 안에서 낮게 속삭이는 말이 들렸다. 세상을 향해 걸을 때가 왔어. 나처럼 외로운 누군가를, 다친 마음을, 아픈 상처를 안아주는, 그런 음악을 만들 때 가. 알고 있었다. 얼굴도 마음도 다 낫지 않았다는 걸. 하지만 그런 나이기에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을 거라는 새로운 희망의 바람이 불어왔다. 다시 바다로 나간다고 생각하니 두려움이 꿈틀댔지만 얻어터지고 깨져도 난 그곳이 좋았다. 이번 배는 어떤 모습일지, 어떤 항해가 될지 조바심이 일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기본에 충실할 거라는 것. 화려한 장식이나 멋진 문양 따위 없이 작고 튼튼하게 만들 거라는 것. 그래도 깃발은 있어야겠지. 다시 세상에 나갈 배를 만들기 시작하며, 깃발에 커다랗게 V를 그렸다. 승리의 V를.

양주회암사지박물관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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