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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환 Oct 22. 2023

여기 1인분 추가요!

배 터지게 먹자

어딜 가나 1인분 타령인 세상. 음식의 양을 재는 단위가 언제부턴 인지 사람의 가치를 계량하는 용어가 되었다. 자꾸만 스스로 묻게 만든다. 난 몇 인분 하는 사람일까. 기준이 뭐가 됐던 한 그릇을 채우지 못하고 있는 건 분명하다는 생각에 몹시 서글펐던 그날, 일찌감치 운동화 끈을 고쳐 매고 집을 나섰다. 왠지 공기도 0.5인분 만큼만 들이마셔야 할 것 같았다.




솔로 뮤지션으로 시작한 첫 해. 9곡을 발매했고, 아주 시원하게 말아먹었다. 실용 음악학원, 문화센터, 방과 후 수업 강사로 일하며 모았던 600만 원을 투자해 음원 수익 6,000원을 벌었다. 반응도 최악이었다. 칭찬도 비난도 없는, 말 그대로 무반응. 이 정도면 세상이 작정하고 날 속이고 있는 걸지도 몰라 영화 <트루먼 쇼>처럼, 하고 생각할 정도였다. 뭐 실력도 부족했고 홍보도 미흡했으니 당연하다. 이런 결과는 인디 뮤지션에겐 흔한 일이다. 어찌 첫술에 배부르랴. 하지만 애써 긍정 회로를 가동해도 마음에 생긴 생채기는 쉽게 아물지 않았다. ‘1인분도 못 하는 쓸모없는 인간.’ 그때부터 그 말이 내 안에서 끝없이 메아리쳤다.

앨범이 망하자, 창작 의욕이 깨끗이 사라졌다. 차라리 그 돈을 기부했다면 좋은 일이라도 할 수 있었을 텐데. 누구에게, 어떤 것도 주지 못하는 쓸데없는 소리를 만들 바엔. 아니면 인형 뽑기가 나았을 수도. 적어도 거기엔 희로애락이 있으니까. 역경을 딛고 음악으로 세상을 빛낸 뮤지션들을 가슴에 품고 산 나였지만, 중요한 건 꺾여버린 마음. 죄송합니다만 전 빌리 조엘도, 반 고흐도 아닙니다. 시련이 잘못 배달 온 것 같아요. 포기하면 편하다. 그래서 포기했다. 안쪽에 시커먼 싱크홀을 남긴 채.


2년 가까이 이도 저도 아닌 삶을 질질 끌고 가던 2018년 초여름.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안녕하세요. OOO 방송국인데요. 저희 프로그램에 참여하실 생각 있으신가요?” 음악 분야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모아 이른바 ‘창작 대결’을 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처음 선보이는 방송이라 아직 인지도가 부족해 참가자를 모으는 듯했다. ‘나가봤자 어차피 들러리나 하겠지 뭐.’ 이미 자신감은 맨틀을 뚫고 지구의 내핵까지 떨어진 상태였고, 보여줄 만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1차 오디션 날짜도 여행 시기와 정확히 겹쳤다. 저금통의 동전까지 박박 긁어모은 돈으로 친구들과 유럽 여행을 다녀온 뒤, 시크하게 음악을 그만둘 참이었다. 타이밍도 컨디션도 최악인 상황. 다행히 머리는 차갑게 적정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섭외가 아니라 권유라고. 알잖아? 그냥 그림 만들어 주는 거야. 병풍이라고. 나 같은 거, 세상은 안중에도 없어.’ 근데 왜일까. 두 발은 지하 작업실로 내려가고 있었고, 난 동굴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갔다. 출입 금지 푯말을 내걸고. 쇄골을 기점으로 몸이 두 개로 나눠진 듯했다. 위는 차가운데 아래는 덥다. 차가운 이성을 밀어내고 아래쪽이 이겼다. 손은 비행기 표를 취소하더니 바쁘게 움직였다. 폴더를 열어 확인하고 또 다른 폴더를 열어 확인하고.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나고 하나의 파일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런 게 있었나? 앨범이 망하고 곡을 쓰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쓰지 못했다. 무서웠고 무의미했다. 쓰레기를 만드는 것 같았다. 그 시기에 썼던 한 곡. 그건 처음으로 날 위해 썼던 노래였다.

나태하고 방탕한 시간을 보내던 겨울. 새벽공기가 기분 좋게 시큰한 날이었다. 올려다본 남색 하늘 한 조각에 하얀 점들이 총총거렸다. 저기 유재하도 있고, 존 레넌도 있네. 김광석도, 커트 코베인도. 순간 난 어디쯤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저 멀리 희미하게 반짝이는 별? 어림도 없지. 아마 우주 쓰레기가 아닐까? 자기 비하에 마음이 아파졌다. 나도 누군가를 위해 마음을 담았는데, 좋은 소리를 들려주려고 애썼는데, 쓰레기라니. 문득 하나의 이미지가 스쳐 갔다. 형편없이 낡고 녹슨 여기저기 떨어져 나간 볼품없는 금속 덩어리. 하릴없이 지구를 맴도는 가엾은 기계. 어두운 우주를 소리 없이 가로지르는 인공위성. 분명 나와 닮았다. 하늘을 올려다봐도 보이지 않는 것도, 빛나고 반짝이지 않는 것도. 다음날, 프로젝트를 켰다. 제목은 ‘위성’이었다.     

이른 아침 오디션장에 도착했다. 가슴에 이름표를 달고 순서를 기다렸다. 준비한 곡을 연습하는 사람, 긴장을 풀기 위해 스트레칭을 하는 사람, 음악을 들으며 명상하는 사람. 각자의 루틴으로 필살기를 꺼낼 준비를 한다.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 곧 수많은 간절함이 부딪힌다. 누군가는 패잔병이 되어 고개를 떨군 채 돌아가 언제 올지 모를 기회를 기다려야 하고, 누군가는 한 단계 위로 올라간다. 익숙한 풍경이었다. 밴드 시절부터 홀로서기까지 소위 잘 나간다는 오디션 프로는 쓱 한 바퀴 돌아봤으니까. 한 사람씩 호명될 때마다 대기실의 공기가 무거워진다. 아드레날린이 뭉근하게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마음은 좀처럼 달아오르지 않았다. ‘난 쓸모없는 사람이고, 내 음악은 우주 쓰레기다.’ 극복하지 못한 패배감이 모공을 통해 흘러나와 온몸을 덮고 있었다. 손발이 차가워지더니 점점 한기가 퍼졌다. 나만 동떨어져 있는 느낌이었다. 열정의 삼바 축제에 초대장 없이 참석한 에스키모처럼.

내 차례가 왔다. 텅 빈 백스테이지가 차갑고 어두운 깊고 긴 터널처럼 느껴졌다. 침묵 속에 탈락이라는 예언이 웅크리고 있었다. ‘마음 구석구석에 찌꺼기같이 남은 미련과 희망을 없애 버리기 좋은 기회야. 그거면 됐어.’ 마무리라도 멋지게 하고 싶었다. 적어도 끝은 구질구질하지 말자. 저 조명은 날 위한 게 아니니까.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도 모른 채, 마지막 코드를 누르고 피아노 서스테인 페달에서 발을 뗐다. 그제야 중력이 느껴졌다. 뒤도 안 보고 쏜살같이 빠져나가려는 그때, 사회자가 날 낚아챘다. “어디 가세요? 합격이에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심사위원석을 보니 합격 불이 들어와 있었다. 그리곤 심사평이 시작됐다. 따듯하고 환한 말들이었다. 울지 않으려 애썼다.

촬영을 마친 후 새벽 1시가 넘어서 겨우 택시를 잡았다. 긴장이 풀리니 피로가 몰려왔다. 시트에 몸을 파묻고 창밖을 보는데, 갑자기 뜨거운 눈물이 쏟아졌다. 한 가지 생각이 스쳐 갔다.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다면, 나를 좀 더 믿었다면, 그랬다면 좀 더 좋은 무대를 만들 수 있었을 텐데.’ 후회가 밀려왔다. 하지만 감상에 빠질 때가 아니었다. 다음 미션을 수행해야 한다. 이제 겨우 1인분의 몫을 해내는 사람이 되었다. 아무짝에 쓸모없는 인간으로 돌아갈 순 없다. 불안함에 점령당한 내 손엔 채찍이 들려있었다. ‘이겨야 해! 네 몫을 하라고! 여긴 전쟁터야!’

잇따라 행운이 따르며 최종 5인까지 들게 됐다. 안타깝게도 매우 저조한 시청률로 방송은 막을 내렸고, 전리품은 없었다. 채찍질로 찢어지고 패인 자국만 상패처럼 마음에 남았다. ‘이 정도면 1인분을 한 걸까.’ 한 사람의 가치, 한 사람의 몫. 그 채우고 싶었던 그릇은 끝내 채워지지 않았다. 내 불행과 고통을 자양분 삼아 계속해서 커지기만 할 뿐. 즐거움, 기쁨, 행복 같은 것들은 거부하며.




그때를 회상하며 여기저기 걷다 보니 목이 말라왔다. 가까운 커피숍에 들어가 아이스티를 주문했다. “삼천 원입니다.” “아, 그럼 한 잔 더 주시겠어요?” 양손에 시원한 음료를 들고 벤치에 앉아 벌컥벌컥 들이켰다. 역시 뭐든 달아야 한다. 피가 돌며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두 잔 째 마시려는데 뜬금없이 청승맞게 눈물이 고였다. ‘이것도 누가 들어줘서 마실 수 있는 건데. 6천 원, 내 첫 음원 수익.’ 최저 시급도 안 되는 돈이지만 나에겐 소중한 숫자. 아무도 없지 않다는 증거. 생각해 보니 내 삶의 궤도 안에도 분명 값지고 감사한 것들이 존재했다. 순수한 기쁨, 환희의 순간, 따듯한 관심과 인정. 그리고 좋은 사람들. 그것들은 반짝이고 있었다. 별보다 더. 안쪽의 구멍이 메워지고 큰 덩이가 정상궤도에 안착한 느낌이 들었다. 2잔째 컵을 마저 비우고 연료를 공급하듯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3인분만큼.

   

다들 세상이 말하는 1인분이라는 그릇을 채우기 급급한 나머지 행복의 1인분을 채우는 쪽은 늘 더딘 것 같아 슬프다.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쓴맛, 단맛, 배 터지도록 먹어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남에게 폐 끼치는 것도 아닌데. 내 밥그릇의 양은 내가 정하는 것. 남들이 정한 계량컵 따위 팬케이크나 만들 때 쓰라지 뭐. 소중한 내 삶, 그 1인분을 책임지는 만큼 행복의 1인분도 꼭 맛보길. 인생도 즐기면 0칼로리. 마음껏, 배부르게.

“이모! 여기 1인분 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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