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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환 Oct 22. 2023

다정한 트라우마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주말의 공원엔 이따금 작은 콘서트가 열린다. 예고 없이 펼쳐지는 일상의 소소한 공연. 장비를 세팅하고 악기를 조율하는 사이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면 간단한 사운드 체크와 리허설이 이어진다. 음악가의 미간에 주름이 잔뜩 잡히면 그것이 큐 사인.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다. 통기타 동호회, 색소폰 연주자, 아카펠라 그룹. 걸음을 멈춰 세우는 다채로운 거리 공연은 무표정한 공원을 살아 꿈틀거리게 한다. 단조로운 산책에 찾아오는 반가운 이벤트. 여름의 마지막 주말이었던 그날도 어디선가 규칙적인 음들이 동심원처럼 번져왔다.


소리의 궤적을 추적해 다다른 곳은 가로등 빛이 닿지 않는 암실처럼 깜깜한, 공원 가장자리에 놓인 벤치였다. 검푸른 블라인드 뒤로 희미하게 보이는 형체가 사람보다는 유령의 실루엣에 가깝게 여겨졌다. 빛이 그어놓은 기다란 선 안쪽의 밝은 곳엔 관객이, 선 너머의 어두운 곳엔 가수가 존재하는 이색적인 풍경. 분위기를 보니 이제 막 첫 곡을 마친 듯했다. 눈치껏 박수를 6번 반 치고 다음 곡을 기다리는데 어둠 속에서 낮은 음성이 뚝뚝 끊기며 들려왔다. “제… 가… 기… 긴장을…… 좀… 마… 많이… 해서……" 촘촘하게 늘어선 가로등 불빛을 피해 굳이 어두컴컴한 곳에 자리 잡은 이유를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말투. 다가올 민망함과 약간의 무서움에 서둘러 자리를 뜨려던 그때, 첫음절이 흘러나왔다. 너무 섣불리 판단한 걸까. 증발한 기대감을 비웃는 듯한 정교하게 세공된 그의 목소리에 무릎이 툭 꺾였다. 그대로 길바닥에 자리를 잡았다.

넋을 놓은 채 두 곡을 연달아 들은 뒤 주변을 살펴보니 아까보다 세 배 가까이 늘어난 관객들이 가로등 불빛이 비치는 영역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저마다 다른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모두의 얼굴에 비슷한 모양의 만족감, 행복감, 평온함 같은 것이 깃들어 있는 게 보였다. 갑자기 견딜 수 없이 가슴이 간질간질했다. 부러웠다. 아니, 갖고 싶었다. 다감한 눈으로 경청하는 사람들을, 적절한 순간마다 나오는 탄성을, 교감이 배태된 포근한 공기를. 그것들은 내가 한 번도 가지지 못한 것들이었다. 허약한 마음이 씩씩거리며 질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지된 화면 속 발생한 오류처럼 벌떡 일어나 재빨리 그곳을 빠져나왔다. 얼굴이 베이스 드럼을 밟듯이 쿵쿵거렸다.




내 인생이 절기 시작한 건 서른. 싱어송라이터를 시작하면서부터다. 스물아홉까지 손에 쥐고 있던 스틱을 내려놓고 마이크를 잡았을 때는 삶이 이토록 망가질 거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때는 뭔가 잘될 것 같은 느낌이 있었고 계획도 구체적이었다. 느낌, 계획. 보통 이런 단어가 나오면 망한다. 삶의 클리셰라고나 할까. 꾸준히 음악을 해왔고 음치도 아닌데 뭐가 문제겠어? 모자란 실력은 자신감으로 커버하면 될 터! 이런 썩어빠진 생각은 결국 커다란 화를 불러왔다. 거인 같았던 자존감은 얼마 지나지 않아 도토리처럼 작아졌다. 노래에 대한 트라우마. 그건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는, 발버둥 칠수록 더 깊이 가라앉는 늪이었다.     

증상이 본격적으로 나타난 건 친구의 결혼식이었다. 주머니 사정이 여의찮던 차에 마침 축가 의뢰가 왔고, 선뜻 받아들였다. 결혼식 당일. 목 상태는 최상이었다. 사회자의 소개 멘트와 함께 의기양양 앞으로 걸어 나가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 주마!’ 하며 힘을 잔뜩 주고 첫 음을 뱉은 순간. 팔에 마비가 왔다. 왼쪽 어깨부터 손가락 끝까지 딱딱하게 굳어 움직이지 않는 몸뚱이에 당황해 등이 식은땀으로 흠뻑 젖었다. 노래가 끝날 때까지 마비는 풀리지 않았고 자리로 돌아갈 때 현기증으로 휘청였다. 식이 끝난 후 식사 테이블에 너머로 지나가는 말이 들렸다. “아까 축가 부르던 사람 너무 긴장한 거 아냐?”, “그러게. 이런 거 처음인가 보지 뭐.” 삼분의 일만큼의 어색한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숙인 채 꾸역꾸역 음식을 목구멍으로 밀어 넣고 있는데 신랑이 된 친구가 다가와 고맙다는 말을 건넸다. 멍청한 표정으로 인사한 뒤 서둘러 예식장을 빠져나간 그날 밤, 급체로 응급실 신세를 졌다. 그게 시작이었다.

그로부터 몇 달 후, 온라인 공연에 참여했다. 피아노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무대를 준비했고, 그날 역시 컨디션은 최상이었다. ‘욕심부리지 말자. 지난번엔 의욕이 너무 과해서 그랬던 거야.’ 깊게 심호흡하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잠시 후 공연이 시작되고 첫 코드를 누르는데, 갑자기 왼쪽 다리가 요동쳤다. 경운기에 올라탄 것처럼 미친 듯이 떨리는 다리. 정확히 표현하면 왼쪽 다리만 열정의 벨리 댄스를 추는 것 같았다. 서스테인 페달을 밟는 오른쪽 다리가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깨달은 건 곡이 거의 끝날 때쯤일 것이다. 아찔한 상황은 그다음에도 계속해서 발생했다. 어떤 날은 혀가 굳어 발음이 안 되고, 어떤 날은 다리가 마비되고, 어떤 날은 얼굴에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신체에 아무런 이상이 느껴지지 않은 날이 있긴 했다. 드디어 극복한 건가? 야호! 하며 한껏 들떠있던 그 순간, 삑사리가 났다. 제대로 났다. 노래만 부르면 벌어지는 대환장 파티.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나는 보컬 트레이너로 일하는 선배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선배의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그거 심리적인 거야, 병원 가봐.” 작업실로 돌아가 선배가 추천해 준 병원을 검색했다. 어딘지 불쾌한 기분이 꿈틀거렸다. ‘잠깐, 이게 병이라고? 말도 안 돼. 그냥 실수야, 실수. 가벼운 해프닝이라고.’ 두려웠다. 내가 겪은 일들이 단어로, 그것도 무서운 병명으로 내 앞에 실체를 드러내는 것이. 그렇게 되면 난 환자가 될 것이고 그 빌어먹을 정신적 어쩌고 저쩌고 하는 이름이 그림자처럼 언제까지고 나를 따라다닐 터였다. 실수라는 변명 뒤에 안전하게 숨고 싶었다. 안쪽에서 부글부글 끓는 소리가 들려왔다. ‘뭔 대단한 공연 한다고 호들갑이야? 정신과? 웃기고 앉아있네. 올림픽 체조 경기장에서 콘서트라도 하냐? 노래해서 버는 돈보다 병원비가 더 나가겠다. 오버 좀 하지 마!’ 수긍할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그렇게 트라우마는 내 안의 겁을 먹어 치우며 소리 없이 증식했다. 그리고 끝내 날 집어삼켰다. 어느 날, 작업실에서 데모 녹음을 하려고 마이크 앞에 섰을 때, 온몸이 굳고 식은땀이 쏟아졌다. 어지러움에 비틀거리다 결국 쓰러져 버렸다.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공원을 빠져나갈 때쯤, 전등처럼 환한 보름달 가까이 밤을 가로지르는 비행기 한 대가 보였다. 트라우마에 관해 찾아보던 시기에 읽게 된 글 하나가 떠올랐다. 심한 난기류를 만나 비행공포증이 생긴 사람의 이야기였는데, 잦은 해외 출장으로 삶이 너무나도 고통스럽다는 내용이었다. 어쩌면 나도 우연히 난기류를 만나 그때부터 마이크가 공포의 대상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정말 단순한 우연일까? 한걸음에 하나씩, 퍼즐을 맞추듯 트라우마의 실체를 꺼내 보았다. 한참을 걷자, 찬기를 품은 기억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막 노래를 시작했을 때 겪었던 일들이 생생히 떠올랐다. 살갗을 베는 듯한 서늘한 시선과 딱딱하게 굳은 표정. 그것들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던 시간. 어느 날 갑자기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었다. 제때 치료하지 못해 곪아버린 병. 트라우마가 부상당한 마음의 상흔이라는 사실을 그때야 비로소 마주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동경하는 뮤지션 목록에 또 하나의 이름을 새기며 귓가에 남아있는 소리의 볼륨을 올려보았다. 잔뜩 긴장한 채 말을 더듬으며 다음 곡을 소개하던, 첫 음을 뱉은 순간 그곳의 모든 사람을 매료시키던 목소리. 얼마나 많이 준비했을까. 얼마나 열심히 연습했을까. 난기류를 극복하는 매 순간들이 얼마나 고됐을까. 언젠가 트라우마라는 견고한 벽을 넘어 많은 사람 앞에서 그와 같이 멋지게 노래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던 그때, 아니나 다를까 두통과 함께 손톱으로 칠판을 긁는 듯한 기분 나쁜 소음이 훅 밀려 들어왔다. ‘이 흉측한 얼굴로, 그따위 실력으로 세상에 나가겠다고? 너 같은 거 음악 안 해도 세상에 아무 지장 없어. 자원 낭비다!’ 가던 길을 멈추고 서둘러 발길을 돌렸다. 다시 찾아간 그곳은 이미 공연이 끝난 후였고 조금 전보다 짙어진 농도의 어둠이 고여있었다. 그가 있던 자리에 슬며시 앉아 눈치를 살피고 조심스럽게 흥얼거리자 팔이 굳고 다리가 떨리고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는 끔찍한 악몽이 되살아났다. 착각인지 현실인지 분간되지 않는, 꿈처럼 몽롱한 감각. 벗어나고 싶은 마음을 한발 나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겨우 이겼다. 숨을 힘껏 들이마시고 눈을 감은 뒤 상처 난 마음을 점자처럼 만지기 시작했다. 당혹감에 뿌예졌던 머릿속. 실수, 실패, 실망의 잔상들. 찢기고 부서져 폐허가 되어버린 마음. 그렇게 폐허 속을 한참 뒤지다 보니 잔해 속에 무언가가 보였다. 경험. 나를, 내 소리를 조율했던 귀중한 시간. 지난한 과정을 통해 얻은 경험이란 무형의 자산은 단지 수업료가 좀 비쌌을 뿐, 결코 헛된 시도가 아니었다고 내게 말하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내가 가진 트라우마가 다정하게 느껴졌다. 게으른 내게 조금 더 분발하라고, 부족한 내게 조금 더 집중하라고 말해주는 나만의 보컬 트레이너. 유령의 실루엣보다도 존재감 없는, 무색무취의 음악가인 내게 꽤나 근사한 서사를 만들어 준 나만의 디렉터. 함께 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다음엔 어떤 창의적인 고난을 줄지 슬쩍 궁금해지기까지 했다.     

환각이 서서히 걷어지자 이내 신선한 밤공기가 온몸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정신의 밑바닥에 가라앉은 두려움이 환한 두근거림으로 바뀌고 다시 세상에 나가고 싶다는 열망이 솟구쳤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그날, 어디가 될지 모르는 그곳의 거리를 재보던 그때 내 안에서 하얀 유령이 미간을 잔뜩 좁힌 채 말을 걸어왔다.

'리허설 끝났어. 이제 곧 공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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