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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환 Oct 22. 2023

동행

바다가 내게 왔다

G로부터 한 통의 메시지를 받은 건 대책 없이 푹푹 찌던 여름이 막 지나갔을 때였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연재하신 노래가 너무 좋아서 쪽지 보내봐요. 목소리 정말 좋으세요. 파이팅!” 메시지 기능이 있구나. 신기해하며 아이디를 눌러 타고 들어가자, G가 나와 마찬가지로 플랫폼에서 주최한 공모에 선정된 연재작가임을 알 수 있었다. 찬찬히 작품들을 감상한 뒤 답장을 보냈다. “감사합니다. 그림이 따듯하고 예쁘네요. 글귀도 좋고요. 그쪽도 파이팅.” 그러고는 쪽지 창을 열어 한참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노래가 좋아서, 목소리가 좋으세요.’ 뭐지. 구독자를 늘리려는 수작인가. 와서 ‘좋아요’ 좀 누르라는 건가. 영업인가. 복붙인가. 아니면 혹시 진심인가. 그 의도가 몹시 궁금해져 작품들을 다시 훑어봤다. 세밀하게 들여다보니 작품 뒤에 숨겨진 사람이 어렴풋이 보였다. 알 수 있었다. 나와 같은 외딴섬에 사는 외톨이라는 걸. 그 메시지가 진심을 담아 바다에 흘려보낸 유리병이라는 걸.

모종의 동질감에 이끌려 시시껄렁한 대화를 이어가던 어느 날 G가 물었다. “음악 하는 분들은 보통 밤에 작업하죠?”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그럼요’라고 했으리라. 나는 “아니요. 전 해가 지면 걸으러 나가요. 밤엔 걷습니다.”라고 답했다. 걷는다. 그래, 난 걷는 사람이다. 왠지 음악보다 산책이 본업처럼 느껴졌다. 앨범을 준비하는 것도, 공연을 하는 것도 아니니까. 그러고는 엉겁결에 다음 메시지를 전송했다. “괜찮으시면 통화하실래요?” 다행히 답은 “좋아요”였다.

첫 통화에 수집한 정보는 우리가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대한민국 지도를 대각선으로 주욱 그어야 하는 약 500km의 거리. 그다음은 비슷한 연령대라는 것 정도.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G가 사는 곳이 한적한 시골의 바닷가라는 것이었다. 때때로 그곳을 상상할 때면 현실이 잠시 누그러지는 것 같았다. 도시의 빛에 방해받지 않아 별이 더 반짝이는, 도로의 소음이 일상의 평온을 잡아먹지 않는 곳. 조금만 걸어가면 끝없는 바다가 펼쳐진 그런 곳. 사방이 방음재로 둘러싸인 한 평 남짓한 지하 연습실에서 떠올려 본 바닷마을의 풍경은 가위로 오려 벽에 걸어두고 싶을 만큼 아늑했다. 나처럼 오염된 마음을 품고 사는 사람이 없는, 느린 왈츠처럼 너그러운 마음을 가진 이들이 살 것 같은 곳. 그 후 몇 번의 통화가 이어지고 산책은 자연스레 우리가 목소리로 만나는 시간이 되었다. 관심사와 공통점 따위의 대화가 힘을 잃어갈 때쯤 자기 이야기 시간이 찾아왔다.


시간이 쌓여 서로가 한결 편해지자, 말이 가벼워졌다. 그게 화근이었다. 나에 관한, 내 음악에 관한 질문이 던져질 때마다 숨길 수 없는 못난 마음이 툭툭 튀어나왔다. 망가진 얼굴, 실패한 앨범, 빈곤한 현실. 침입자를 감지한 마음이 사이렌을 울리며 방어기제를 가동했다. 더는 실망한 상대를 보며 느끼는 우울함에 빠지고 싶지 않았다. “재능도 없고 매력도 없는 3류 뮤지션이지 뭐. 얼굴마저 엉망이 됐고. 난 별 볼 일 없는 인간이야.” 사실을 말한 것뿐인데 막상 입 밖으로 뱉은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더러웠다. 네. 전 고작 이런 사람입니다. 그러니 아무런 기대도 하지 마세요. 기대에 빚지며 사는 것도 이젠 지쳤어요,라는 말을 왜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지. 이제 앞으로 연락해 올 일은 없겠구나, 하며 고개를 떨구던 그때 G가 손전등으로 내 안쪽을 비추듯 말했다. “저기 저건 어때? 내 눈엔 근사해 보이는데.” 이 언덕만 넘으면 바다가 보일 거라고 믿으며 걸었던 사막. 하지만 그때마다 내 앞에 나타난 건 신기루였다. 더 이상 속지 않겠다는 투로 말했다. “저딴 건 아무것도 아니야. 네가 음악을 몰라서 그러나 본데, 저 정도는 누구나 다 갖고 있어. 알겠어?” 날 선 마음이 연신 방망이질을 해댔지만 G는 가소롭다는 듯 태연하게 100마일짜리 직구를 가슴에 퍽퍽 꽂아댔다. “저건 말이야. 특별한 거야. 내가 좋다니까? 네 음악.” 그때마다 난 당황한 나머지 대사를 통째로 잊은 배우처럼 숨만 뱉어댔지만, 속으론 소리를 지르며 깡충깡충 뛰고 있었다. 잠실야구장의 헤드라이트보다 밝은 빛을 뿜는 작은 손전등. 그 빛은 거침없이 뻗어나가더니 그늘진 곳에 도사린 악의와 열등감, 비겁함과 초라함까지 비추기 시작했다. 상처를 제대로 봐야 진료할 수 있다는 듯. 다친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며 비관 섞인 말을 내뱉는 내게 G는 “아, 그 부분은 아직 많은 사람이 몰라서 그럴 뿐이에요. 대기만성이란 말 모르시나요? 뒤늦게 성공한 예술가가 얼마나 많은지 한번 읊어드릴까요?”라던가 “해가 뜨기 전이 가장 어두운 법! ‘곧 밝을 날이 온다’에 제 귤을 걸죠!”라며 유능한 변호사처럼 천진하게 내 안의 희망을 변호했다. 자기혐오로 빚어진 날카로운 파열음을 부드럽게 뭉개버리는 말. 그 마음 처방전은 혼자선 버거워 손대지 못했던 상처를 치료하고 새로운 보호막이 되어줬다. 산책은 새로운 리듬을 발견한 듯 발 박자가 빨라지고 힘이 붙었다. 부족했던 영양분이 채워진 듯 기운이 넘쳤고 공원의 풍경이 싱그러워 보였다. 간혹 지난날에 대한 후회와 자책이 밀려올 때면 G의 말들은 접착력이 강한 야광별처럼 마음에 착! 하고 달라붙어 빛을 뿜었다. 마치 어둠 속에서 나 여기 있어, 하며 총총 반짝이는 야광 스티커처럼.


한 달쯤 뒤, 오래도록 닫혀있던 작업 폴더를 열었다. 미완의 곡들을 하나씩 들춰보며 생각했다. 내 음악이 좌표가 되어 G를 이곳에 데려다줬다고. 물리적 거리를 뛰어넘어 결국 닿았다고. 그러니 하찮지 않다고. 조바심이 일었지만, 이 먼 섬에, 화산폭발로 폐허가 된 땅에 기꺼이 찾아온 첫 번째 손님에게 제대로 된 선물을 주고 싶었다. 트랙을 열어 소리를 찾고 다듬다 보니 하루가 훌쩍 지나갔다. 언제가 마지막이었을까. 이렇게 열중했던 때가. 그날의 스케치 파일을 들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 소리와 공기가 부딪혀 만든 포말을 품은 파도 위로 희망이 일렁였다. ‘오늘 하루는 어땠어?’라는 G의 문자에 ‘나아지고 있어’라고 답하고는 속삭였다. 얼굴이 아니라, 음악이 아니라, 내가 나아지고 있어.


누구도 대신 가 줄 수 없는 길. 혼자 해결하고 감내하고 버텨야 하는 길. 그 외로운 길에 한 손에 손전등을 쥐고 이마에 야광 스티커를 붙인 채 나타난 나만의 유능한 변호사. 이젠 나를 위해서가 아닌, 너를 위해서 걷고 싶다고, 한 발 나아가고 싶다고 생각하던 그때, 화산이 부글부글 대며 ‘이 몰골로? 꿈도 꾸지 마! 넌 또 실패할 거다!’ 하고 위협해 왔다. 그 소리가 또렷하게 들렸지만 왜인지 하찮은 겁박처럼 여겨졌다. 난 거울 속 날 보며 엄격한 지휘자처럼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 여기서부터 리타르단도야. 난 다음 악장으로 넘어갈 거다.’ 얼굴의 욱신거림이, 그 박동이 서서히 옅어지는 게 느껴졌다. 한적하고 아름다운 바닷마을처럼 고요해진 마음. 그 푸른 고요함 위에 하얀 물결이 커다란 오선을 만들었다. 이 위에 다시 마음껏 그려 봐, 하며 내게 손짓하듯. 

그렇게 바다가 내게 왔다. 동행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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