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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환 Oct 22. 2023

맹꽁이 합창단

맹꽁맹꽁

며칠 동안 내린 비는 도무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길고 긴 장마. 몇 켤레 안 되는 운동화가 다 젖어버려 하는 수 없이 신발장 구석에 자리한 먼지 묻은 오래된 운동화를 꺼내 신었다. 버리지 않고 놔뒀던, 공간만 차지했던 물건이 가끔 이렇게 나와 제 역할을 해낼 땐 기특하다. 대게 이런 물건들은 맘 편히 쓸 수 있어 좋다.

비 오는 날 슬리퍼를 신지 않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오래 걷기 불편하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미끄럽기 때문, 가장 큰 이유는 지렁이 때문이다. 비 오는 날 걸을 때 유독 힘든 부분인데, 뭔가 물컹한 것을 밟은 것 같은 느낌이 들면 순간 다리가 후들거리고 온몸에 힘이 쭉 빠진다. 어릴 적엔 길을 걷다 지렁이를 마주치기만 해도 다리가 풀려버리곤 했다. 그 무서운 녀석이 사방에 깔려있는데 맨발을 내놓고 다닌다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분명 사람의 혼을 쏙 빼놓고 힘을 쭉 빼놓는 기운이 있는 생명체다. 그 기운이 나에겐 더 크게 작용하는 게 아닐까 싶다. 천적처럼. 온 신경을 곤두세워 나뭇가지인지 지렁이인지 확인하며 걷는 비 오는 밤의 산책은 피로도가 엄청나다. 거기다 온갖 종류의 곤충은 또 왜 그리 무서운지. 하여튼 여름은 나에게 이래저래 참 힘든 계절이다. 어쩌다 벌레나 파충류에 대한 이야기가 오갈 때면 좀 징그럽긴 해도 생태계에 다 필요한 소중한 생명들이라고 감싸주는 척하지만, 뒤에 꼭 붙이는 말이 있다. ‘제발 내 반경 10미터 안에는 접근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공원의 절반쯤 걸었을 때 멀리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가까워질수록 입체적이고 웅장해지는 소리에 발끝부터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근처에 다다라 풀숲을 보니 맹꽁이 서식지라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 몇 해 전 야외 오케스트라 공연을 관람한 적이 있었는데 체감상 비교도 안 될 만큼 압도적인 사운드였다. 어림잡아 수백 마리는 돼 보이는 맹꽁이들은 며칠 동안 내린 비에 기분이 아주 좋은 듯했고 유일한 관객이었던 난, 잠시 그들의 공연을 감상하기로 했다. 무서워서 몸이 굳은 건 아니다. 예의상 잠시 감상한 것뿐이다.     

오랜만에 머리가 울릴 정도의 큰 소리를 들으니, 금세 정신이 혼미해졌다. 합창단의 포위를 겨우 빠져나왔을 때 습지 바깥쪽에 슬며시 모습을 드러낸 맹꽁이 한 마리가 보였다. 크기가 생각보다 작아 놀랐다. 뭐야 꽤 귀엽잖아. 우는 모습이 궁금해 쭈그려 앉아 한동안 녀석을 관찰했지만, 좀처럼 우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았다. 당황한 표정으로 방향 감각을 상실한 듯 두리번거리는 녀석.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길을 헤매는 모습이 누구와 무척 닮아 보였다.




20대 중반. 친구의 권유로 시작한 밴드 생활은 배낭여행 같았다. 열악하지만 자유로웠고, 서툴지만 설렜다. 동갑내기 친구 3명이 모인 탓에 자주 다투긴 했지만, 적어도 서로에게 명령하거나 눈치 보는 일 따윈 없었다. 평일의 홍대 클럽 공연은 늘 관객이 많아야 다섯 명 내외였고 그마저 다음 순서를 기다리는 팀이기 다반사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어느 때보다 살아있음을 강렬히 느낄 수 있었다. 좁은 무대는 막상 올라서면 거대한 갤러리의 벽면을 가득 채운 캔버스처럼 고요하고 무거운 공기로 우릴 짓눌렀지만 우린 서로에게 의지하며 소리를 통해 섞인 우리만의 색채로 여백을 채워나갔다. 어느 날은 뻔한 일상이었고, 어느 날은 밑바닥 현실이었고, 간혹 어떤 날은 마법 같은 눈부심이었다. 그런 날 들이 한 겹씩 포개져 몇 년의 시간이 흘렀고, 퀴퀴한 곰팡내 가득한 지하 클럽에 뿌리내린 어린나무는 경험과 노력을 자양분 삼아 가지를 뻗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 가녀린 가지 끝에 행운이라는 햇살이 슬며시 온화한 얼굴을 드러냈다.

대형기획사와 대기업이 함께 주최한 프로젝트에서 운 좋게 우승해 버린 건 덥고 습한 여름의 어느 날이었다. 그날 우린 옥탑방에 모여 비 오는 날의 맹꽁이들처럼 포효했다. 그리고 그해 겨울, 우승 혜택으로 오랜 시간 꿈꿨던 첫 앨범을 발매하고 세상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그렇게 2장의 앨범을 더 발매한 뒤, 난 나의 전부이자 유일했던 둥지를 떠났다. 그리고 그때의 나는 날개를 펴지 못한 채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그때 그곳을 나온 건 모든 것에 결국 ‘나’라는 존재가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우리’의 것이라 여겼던 한 곡 한 곡 속에 언제부턴가 나는 무언가를 완성하기 위해 필요한 하나의 부품에 지나지 않아,라는 어두운 생각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저 그들이 만든 곡을 연주할 뿐, 거기엔 내 생각도, 감정도, 이야기도, 그 무엇도 깃들어 있지 않은 것 같았다. 난 언제든 대체할 수 있는 부품일 뿐이라는, 내가 만든 거짓된 사실은 날 견딜 수 없는 고독으로 몰아갔다. 그렇게 나 스스로 만든 고독의 그림자는 내 귀를 막더니 두 눈마저 감게 했다. 끝내 친구들의 진심을 듣지 못했던 난, 무리를 나와 울지 못하는 맹꽁이가 되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그 모든 일이 나의 어두운 면이 만든 허상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맹꽁이 서식지와 멀어질수록 소리는 차츰 옅어져 갔다. 합창단의 우렁찬 합창은 어느새 도시의 소음에 삼켜졌고, 난 길 잃은 작은 맹꽁이를 떠올렸다. 손바닥 위에 올려 무리가 있는 곳에 데려다주었다면, 그곳에서 녀석은 힘차게 울었을까? 아니면 본능처럼 다시 무리를 빠져나왔을까? 녀석은 두 발이 굳고 작은 신음조차 나오지 않을 만큼 큰 두려움에 사로잡힌 듯 보였다. 그건 어쩌면 혼자라고 느껴서가 아닐까. 내가 그랬듯이.

발아래 지렁이를 피해 함께 걸을 누군가를, 깊은 밤 함께 울어줄 누군가를 그리고, 그리워하며 걸었던 밤의 산책. 오래된 신발처럼 비에 젖길 두려워하지 않고 누군가에게 용기 있게 다가가는 내가 되길 바라며, 꼭 그런 날이 오길 바라며 또 하루의 걸음을 채운 그날. 난 다행히 지렁이를 한 번도 밟지 않았다.

수변공원 맹꽁이 서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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