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주연 Aug 20. 2021

지극히 사적인 다큐

밝게  즐겁게  건강하게

"얘들아 빨리 일어나라. 밖에 보니까 애들이 학교 가고 있다. 오늘이 개학날인 가봐!"

어제 수영장에서 신나게 놀아서인지 두 아이는 아직도 자고 있었다.

사실 나도 오늘이 개학날인 줄 몰랐다.

이 일은 두 아이가 초등학교 다닐 때 있었던 일이다.


나는 두 아이를 키울 때  한 번도 '공부해라'라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놀러 가자"
"운동 가자"

"먹자"

이러한 말들만 한 것 같다.

두 아이가 어느 정도 컸을 때 말했다.

" 우리 집 가훈은 엄마가 정했다. 밝게!  즐겁게!  건강하게! 란다."

내가 살아보니 마음이 편안하고 몸만 건강하면  무엇을 하든지 간에 행복을 느낄 수 있어서였다.


우리 가족은 모두 놀러 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낚시를 좋아하는 아빠를 따라 두 아이는 어릴 때부터 제주도, 가거도, 거문도, 흑산도 등 많이 다녔다. 방학이 되면 놀러 다니기 바빠서 숙제는 하지 못했다. 숙제가 하기 싫어서 끙끙거리는 아이 대신 내가 왼손으로 글을 쓰면서 대신해주기도 했다.

아들과 딸은 연년생이다.

오빠는 그렇게 노는 중에도 방학숙제를 스스로 했는데 동생은 손도 대지 않고 놀기만 했다.

개학일이 코앞에 다가오면 그때서야 숙제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숙제가 있다는 것은 아네' 하면서 속으로 웃었다.

"걱정하지 마라. 엄마가 금방 해줄게"

나는 왼손으로 비뚤비뚤하게 글을 쓰면서 빠르게 해치웠다.

문제는 그동안 밀린 일기였다.

그러나 그것도 문제없었다.

총명한 아들이 써 놓은 일기장을 보고 베끼면 되었다.

이렇게 살아가니 우리는 항상 밝게 즐겁게 살아갈 수 있었다. 많이 뛰어노니 건강은 자연히 따라와 주었다.

두 아이가 중, 고등학생이 되니 스스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것이 다르고, 능력이 다르고, 세상에 직업은 수없이 많은데 스스로 뭔가를 찾아서 할 때까지 옆에서 지켜보자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그 당시 유행했던 방목을 지향했던 것이다.

지금은 어엿한 직장인이 된 두 아이와  지금도 웃으면서 밝게, 즐겁게, 건강하게를 외치곤 한다.


나는 어려서부터 미래를 위해서 참고, 인내하고, 노력하는 가치관을 주입시키는 교육을 받아왔다.

그래서 참고 인내하는 것을 최고의 미덕으로 알았다. 그러나 내가 그것을 감내하고 있다는 것은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인생은 나 스스로의 가치관과 생각으로 살아가야 후회가 덜하고 어느 정도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드라마 중에 가장 보기 싫어하는 장면이 있다.

"내 인생은 어쩌라고... 내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되었는데..." 하는 대사가 나오는 장면이다.

조금도 감정이입이 되지 않고 짜증만 난다. 채널을 바로 돌려버린다.

그래서 나는 가치관을 새롭게 만들기로 했다.

가늘고 길게!

단순하고 쉽게!

대충대충!

지금 현재!

그리고 밝게, 즐겁게, 건강하게였다.


복잡하고 어려운 세상사는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뛰어난 사람에게 맡기고 나는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큰 성공에서 보람을 느끼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내가 아는 만큼 내가 원하는 만큼 이루고 행복해하기로 했다.

내 그릇은 작기 때문에 행복이 빨리 담긴다.

내가 원하는 것도 소박하기 때문에 즐거움도 자주 경험한다.

밝게, 즐겁게, 건강하게를 외치다 보니 뇌가 훈련이 되어서인지 스트레스받는 일이 별로 없다.


이제 나이, 학벌, 재력, 외모 등 아무것도 상관없이 어릴 때의 동무를 만나면 무조건 반가운 나이가 되었다.

누구를 찾아 나설 힘이 없어서 그 누군가를  목을 빼고 기다리는 나이가 되기 전에  회사 출근보다는 친구 만나는 것을 최우선으로 두고 살아야겠다.

동무들이 그립다.

코로나야 빨리 사라져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