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 무슨 일을 하세요?

by 장용범

“아빠는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해?”

대학 4학년의 딸아이가 물은 적이 있다. 도대체 회사에서 하는 일이 뭔지 궁금한가 보다. 순간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처음 일을 배울 때와는 달리 지금 일의 대부분은 어떤 사안에 대하여 검토하고 결정하는 일로 채워져 있다. 누군가 나의 일을 옆에서 지켜본다면 출근해서 결재 서류에 이름 쓰고 몇 마디 말로 지시하는 것만 보일 것 같다. 딸 아이에게 농담삼아 그냥 이름 쓰는 일을 한다고 했더니 “그런 일이면 나도 할 수 있겠다”라고 한다. 그렇게 내가 하는 일을 단순하게 바라보니 아침 일찍 출근해서 이름만 쓰다가 오는 것 같아 픽 웃음이 난다.


조직의 구성은 보통 피라미드 구조로 되어 있다. 주요 의사결정은 윗단계에서 이루어지고 아래에서는 보통 실무적인 일로 채워진다. 그래서인지 조직의 아래 계층 구성원들은 승진이라는 절차를 통해 위로 진입하려고 애쓰는데 직접 어떤 일을 하는 단계에서 이름만 쓰면 되는 일을 하기 위함일 거다. 그런데 계층의 위로 갈수록 그것도 힘이 드는지 이름도 잘 안쓰려 한다. 결재 서류에 이름을 쓸까 말까 고민하는 시간이 점점 길어진다. 때로는 혼자 이름쓰기 부담스러우면 위원회 같은 것을 만들어 여럿이 이름을 쓰도록 한다. 스스로를 One of Them으로 만드는 좋은 방법이다. 그래서 계층이 엄격한 공무원 조직 같은 경우에는 위원회가 그렇게 많은가 보다.


대체 일이란 무엇일까. 물리학에서 말하는 일의 정의는 ‘힘이 가해진 방향으로 움직인 물체의 거리’라고 한다. W=F*s (W: 일, F: 힘, s: 힘의 방향으로 이동한 거리) 로 표시 하는데 이 공식에다 나의 일을 설명하기엔 뭔가 좀 아쉽다. 내가 출근해서 어떤 물체를 움직여 이동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물리학으로 나의 일을 설명하기는 어렵겠다 했는데 물리학의 다른 관점인 ‘일-에너지 이론’에서는 일을 달리 정의하고 있었다. 여기에서는 “일은 힘의 작용에 의해 변화된 에너지의 총합”이라고 한다. 이 정의는 어느 정도 나의 일을 설명 할 수 있을 것도 같다. 회사에서 그 부서는 힘이 있다 없다라는 말들을 하는 걸 보면 조직내에서도 부서별 에너지의 차이는 있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내가 일을 많이 한다는 것은 내가 맡은 부서의 에너지가 이전보다 커지는 것을 의미한다. 에너지는 하나일 때 보다 둘일 때 더 커지므로 조직의 외견상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고 일거리가 많아지면 에너지가 커지는 건가 싶다. 그러고 보니 조직 피라미드 계층의 위로 갈 수록 아래 인원도 늘어나므로 에너지가 더 커지는 것으로도 설명될 수 있겠다. 경영의 효율화를 이야기 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조직내 파워게임에서는 그렇다는 얘기다.


다음에 딸아이가 아빠는 회사에서 어떤 일을 하냐고 물어올 때는 이렇게 답해야 겠다. “응, 아빠는 회사에서 맡은 부서의 에너지를 이전보다 더 키우는 일을 하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냐면 하는 일거리와 일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는 걸 보면 알 수 있지”라고. 그렇지 않고 매일 이름쓰는 일을 한다기엔 좀 이상한 것 같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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