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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래된 타자기 Dec 25. 2021

로마네스크 예술 화려하게 꽃피다

앙드레 보느리가 들려주는 로마네스크 예술 이야기 53화


로마네스크 예술을 어떻게 분류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19세기 중반부터 싹텄습니다. 역사가이자 고고학자인 아흐시쓰 드 꼬몽(Arcisse de Caumont)은 로마네스크 건축을 지역별 유파들로 분류했습니다. 지리상으로 공간에 따라 건축 양식이 태동한 시기와 전개 양상 또한 서로 다르다는 점에 착안한 것입니다.


로마네스크 건축은 문화적 전통에 따라 서로 다른 양상을 보여왔음은 물론, 특히 건축상의 전통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었습니다. 더불어 한 지역에 속해 있다 할지라도 지역의 중심에 위치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여부에 따라, 또는 각 지역의 필요에 의한 산물이었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양상을 띠었기 때문입니다.

 

<성 베드로의 흉상 조각>. 산 페레 데 로데스(Sant Pere de Rodes)가 보관하고 있다가 현재는 페랄라다(Peralada) 고성 박물관이 소장 전시하고 있습니다.


아흐시쓰 드 꼬몽은 무엇보다도 먼저 로마네스크 예술을 건축물의 구조와 장식적 차원에서 분류를 시도하였습니다. 물론 프랑스에 한정된 것이기는 하지만 각 지역의 유파들에 따른 분류였습니다.


그의 논리에 따르면, 우선 노르망디 북쪽과 브르타뉴가 하나로 묶이고 푸아투와 앙구무아를 하나로 묶을 수가 있습니다. 아끼탠느와 오베르뉴 역시 하나로 묶고 라인 강 유역과 부르고뉴, 프로방스가 또다시 하나로 묶입니다.


이어 드 꼬몽은 으젠느 르훼브르 퐁탈리로부터 장 발레리 라도에 이르기까지 예술 이론가들이 유파(école)라는 개념을 받아들였음에 주목합니다. 비올레 르 뒤크는 그 자신 역시 유파라는 개념을 수용했음을 숨기지 않았죠. 그러나 예술의 기원이나 진화의 연관 관계를 밝히려는 노력과는 동떨어진 것이었습니다.


로마네스크에 대한 모든 논쟁의 초점은 마르셀 뒤흘리아의 표현을 빌자면 “진퇴양난에 빠진 상태에서 프랑스 고고학을 끌어들이는” 일뿐이었습니다. 실상 한 지역의 로마네스크 건축물이라 할지라도 이를 따로 떼어놓고 조사하려는 시도가 없지는 않았습니다. 그 역시 건축물에게서 읽히는 고유한 건축술로만 한정할 때 너무 많은 것을 놓치지는 않을까 우려마저 제기되었죠.


분명한 것은 한 고장에 속해 있는 건축물들에게는 어떤 연관성이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어느 지역이나 대표적인 건축물이 있기 마련인데, 이 건물은 다른 건물들의 모델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그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와 함께 지리상으로 서로 다른 역사적인 전후 사정에 따라, 마찬가지로 정치적 여건에 따라 예술적인 형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 또한 간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역에 따른 결정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예술 창조라는 것은 늘 그렇듯이 항상 열려있으며 무언가를 탐구하려는 정신에 의해 길어 올려지기 때문입니다. 건물을 관찰할 때마다 좀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다 보면, 그 건물만이 지닌 독창성이 내재해 있음을 읽을 수가 있습니다. 고고학자들은 이처럼 완성에 이른 로마네스크 예술만이 지닌 고유한 특징들을 해명해줄 수 있는 원리들을 정립하고자 애쓴 이들이었습니다.


생 트로얀(Saint-Trojan) 교회 뒷부분, 레또(Rétaud), 프랑스.


이들이 제일 먼저 한 일은 건물을 덮고 있는 천장들을 유형별로 분류하는 작업이었습니다. 그리하여 탄생한 개념이 반원형 둥근 천장과 꺾인 둥근 천장, 교차 형 둥근 천장, 원형 천장입니다.


건물에 둥근 천장을 올리기 위해서는 이를 지탱해 줄 수있는 버팀기둥들을 선별해야 하는데, 버팀기둥들은 지붕을 떠받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버팀기둥들 사이 나란히 병렬된 간격들, 즉 기둥들 사이에 들어선 공간들을 형성하게 됩니다. 이 또한 건물 내부 공간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낳았습니다.


버팀기둥들은 버팀벽들과 따로 제작하여 운반해온 기둥들과 아치들로 이루어집니다. 이 건물을 형성하는 주요한 요소들은 서로 간에 긴밀하게 연결되어있죠. 버팀기둥들은 건물을 지탱하는 요소들에 의해 얼마든지 길게 늘어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건물을 얼마나 멋지게 짓느냐하는 문제는 버팀기둥들을 얼마나 줄지어 세워놓느냐에 따라서 또한 버팀기둥들 사이에 생성된 간격들의 분할 정도에 따라서 달라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방식은 카롤링거 왕조시대에 지어진 교회 건축물들에게서 공통되게 발견되는 오로지 하나로만 된 벽이 계속 이어지는 건물의 형태를 대체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듯 다양한 건축 구조물들을 풍부히 활용하고 아울러 복합적 구조물들 또한 활용했다는 점에서 건축가이자 예술가들이었던 그들의 창조성이 촉발된 듯합니다. 특히 조각과 관련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기둥머리 장식이나 문 장식, 창문 장식과 후진 장식에 있어서는 거의 독보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생 조르쥬(Saint-Georges) 수도원 회중석, 1140년경, 생 마흐탱 드 보쉐흐빌(Saint Martin de Bosherville), 프랑스.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에 위치한 생 마흐탱 보쉐흐빌(Saint Martin Boscherville)은 전형적인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은 수도원 교회가 아직도 남아있는 마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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