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사의 아침 편지
참 아쉽습니다.
올해는 김장을 담그러 못 갑니다.
주말 일정을 빼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이번 주말에는 김장 대신 상담을 담가야 합니다.
어머니가 김장을 담그러 가신답니다.
친척들과 함께 모여서 무도 뽑고 배추도 씻고 저리고 양념을 준비하고 함께 김장을 하겠지요.
저는 그 시간이 참 좋습니다.
많이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다 같이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한마음으로 움직이는 것.
그러다 보면 산더미 같은 배추가 다 겉절이가 되는 기적.
그 푸근함이 좋습니다.
그 가을 햇빛이 좋습니다.
늦가을에 쌀쌀하지만 일을 하면서 넉넉해지는 가슴.
우리가 함께 나누는 시간.
그리고 왠지 모르게 충만해지는 느낌들이 좋습니다.
올해는 김장을 담그러 가지 못합니다.
아쉽게도 그 시간을 이번엔 누리지 못합니다.
그러면서 생각했습니다.
이번에도 김치를 얻어먹겠구나.
내 손으로 김치를 만들어 본 적이 살면서 한 번도 없습니다.
김장이라고 해 봐야 짐 나르고 시중드는 것 정도.
그러면서 매 끼니 잘도 먹는 김치.
넓게 보면 나는 나의 먹거리를 구한 적이 없습니다.
내가 직접 구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지 않나 싶습니다.
내 생명 활동에 가장 중심이 되는 먹는 행위.
그런데도 내 입으로 들어오는 먹거리와 나는 접점이 거의 없습니다.
친척들이 농사짓는 데 일말의 기여도 하지 않고, 농사지은 것을 수확하는 데 손 하나 까닥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잘도 받아먹습니다.
친척들이 손수 지는 것들이라면 그나마 낫습니다.
사실상 내 입에 내가 넣고 있는 것은 먹거리가 아니라 상품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비닐을 뜯고 상품을 냄비에 넣고 조리하는 행위.
이럴 때 나는 내가 정말로 먹거리를 먹는 것인지 아닌지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기계에 기름을 넣어주듯 몸 보고 잘 작동하라고 무언가를 기계적으로 넣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번에 김장을 가지 못 한다는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렀습니다.
이왕이면 내 손으로 김장을 담그고 싶습니다.
다음에는 꼭 같이 담그러 가겠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다음에는 김장하러 같이 가요. 나도 먹거리와 내 몸이 직접 만나게 해 주고 싶어요."
당신의 먹거리는 먹거리입니까?
아니면 상품입니까?
오늘 먹음의 행위에 그리고 먹음의 대상에 좀 더 주의를 기울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