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결혼식

28

by ZAMBY



이제 막 오후로 넘어가는 겨울공기가 제법 따스하다.


열댓 명은 되는 사람들의 체온 때문일까.

엘리베이터 안은 오히려 후덥지근하다.


“여기!.”

“미안 늦었네.”

“괜찮아. 저기가 신부대기실이야.”

“아직 사진 안 찍었어. 너 오면 같이 찍으려고.”

“응. 미안.”


생각보다 하객이 많다. 내가 아는 정민은 그런 사람이다.

생각보다 사람을 잘 사귀고 생각보다 화려한 것을 좋아하고

그리고 생각보다

불안하다.


혜정은 검은 울 바지에 검은 폴라티를 입고 검은 가죽 가방을 들고 있다.

은정은 핑크색 레이스 원피스에 9센티는 돼 보이는 핑크색 새틴 슈즈를 신고 나란히 걸어간다.

이질적인 질감이다.

그래도 검정과 핑크는 제법 잘 어울린다.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신부대기실로 들어간다.

조금 늦은 나는 앞니에 립글로스가 묻은 건 아닐까 살짝 걱정하며 정민을 향해 다가간다.

대기실 안에는 늘씬하게 예쁜 정민의 동생이 언니의 소지품이 든 천 가방을 어깨에 걸치고

사진을 찍어준다.

“어머. 정은아 오랜만이다. 너는 어쩜 갈수록 더 이쁘니.”

인사를 건네며 정민을 본다.


대부분의 신부대기실은 희고 핑크나 하늘, 연초록으로 꾸며져 있다.

신부들은 무거운 플라스틱 속눈썹을 들어 올리며 수줍은 듯 웃는다.


정민은 정말 너무 이쁘다.

하얀 백합처럼 피어난 그녀는 눈을 가늘게 늘어뜨리며 웃는다.

그녀의 쌍꺼풀 없는 얇고 긴 눈꺼풀에도 플라스틱 속눈썹이 붙어있을까.

나는 얼마 전에 나눈 포기 이야기가 생각나 정민의 눈을 외면한다.

그녀의 손에 들려있는 작은 은방울꽃이 조롱조롱 흔들린다.

릴리 오브 더 밸리.


우리는 서둘러 사진을 찍고 하객들이 가득한 연회장으로 향한다.

둥근 테이블들이 넓은 연회장에 가득하고 각각의 테이블에 숫자가 적혀있다.

숫자를 찾아 앉는다.


정민은 원하던 대로 호텔에서 결혼을 한다.

나에게는 그저 밥이 맛있는 예식장이지만

그녀에게는 예비 신랑의 부모님과 첫 불화를 만든 원인이다.

그녀는 늘 부유한 남자들과 교제했고 그래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녀가 생화로 장식된 고급스러운 홀에서 결혼식을 하게 될 거라 믿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녀가 결혼상대자로 선택한 그는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쪼잔하지 않은' 대기업 사원이었다.


우리는 좀 혼란스러웠다.

스테이크를 먹으며 축가를 듣게 될 거라 여겼던 우리는

혹여 정민이 실망하게 될까 봐 마음을 졸였다.

하지만 그녀는 결국에 서울 시내 많고 많은 5성급 호텔 중 하나를 예약하는 데 성공했고

우리는 마침내 원형 테이블에 앉아 식전 빵을 먹으며

신부 입장을 보게 되었다.


혜정과 은정은 이미 다녀온 경험자들이라

결혼식을 어디서 하는가가 결혼생활에서 그다지 중요한 요소가 못 된다는 것을 아는듯하다.

그녀들은 식사를 즐겼고

훤칠한 결혼식 사회자를 보며 흐뭇해한다.

정민의 아름다운 동생이 축가를 부르는 모습을 보며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짓기도 한다.

결혼식에 올 때면 늘 그렇듯 사람들의 경건함. 하객들의 소란함.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어머니들의 어색함.

이런 것들이 한꺼번에 몰려와 낯선 기분에 젖게 된다.


사진을 찍어 너에게 전송한다.

몇 가지 문장을 쓰다가 지운다.

그냥 사진만 보내기로 한다.

알고 있다. 이런 행동이 너를 곤란하게 한다는 것을.


너와 결혼하겠다 결심하지 않는 나 자신이 초라할수록

너를 몰아쳐서 쓰러뜨리고 싶어진다.

그리고는

이미 수 년 전 내가 본 너의 결혼식 사진을 떠올리며 깊은 상실감을 느낀다.

그게 마치 내 것이어야 했던 것처럼.


앞에 놓인 물 잔을 들어 한모금 마신다.


맞은편에 눈 밑에 검은 마스카라가 살짝 번진 은정이 디저트를 먹고 있다.

그녀의 사랑스러운 하얀 피부가 살짝 붉게 변했다.


휴대전화 진동이 울린다.


그날 메시지 받고 생각을 좀 해봤습니다.

결혼 생각이 없으시면 연애는 어떠신가요.

이런 말은 직접해야하는데 전화를 안 받으실거같아서

실례를 무릅쓰고 메시지 드립니다.

내일 오후 2시에 전화드리겠습니다.

안받으시면 저는 그제야 진의를 알아채는 걸로.


지난주에 만난 1Q84다.


기다리던 너에게는 답장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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