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다. 더위와 잦은 비를 피해 아이와 갈 수 있는 야외는 많지 않다. 이럴 땐 아이 손을 잡고 도서관을 간다. 평일 낮 시간대 도서관은 한산하다. 사람 드문 도서관에 들어서면 사서의 여유롭고 부드러운 인사에 마음을 놓인다. 걸음마 전부터 도서관을 다닌 아이는 자연스럽게 신발을 벗고 유아자료실로 앞장선다. 다양한 모양과 색, 크기로 들쭉날쭉 책이 꽂혀 있는 공간에 앉아 자유롭게 책을 뽑아 읽는다. 글을 읽지 못하는 아이가 책을 선정하는 기준은 ‘공룡’이다. 표지나 책등에 좁쌀만큼 공룡이 그려져 있는 책을 귀신같이 잘 찾아 읽는다. 발꿈치를 들어도 책이 손에 닳지 않는 경우는 내게 도움을 요청해 책을 뽑아 읽는다. 그 옆에서 나도 흥미로운 제목이나 눈길이 가는 그림책을 한가득 쌓아두고 읽는다. 아이와 서로 방해하지 않고 한 공간에서 보내는 조용하고 소중한 시간이다. 정신없는 육아 현장에서도 이런 순간이 힘이 되어 일상에 틈이 생기면 아이와 도서관을 나들이 삼아 집을 나선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그림책을 보지 않았다. 주로 자료 수집과 정보 습득을 위해 책을 읽었던 나에게 그림책은 관심사가 아니었다. 유익한 정보도 없고 1분 안팎으로 읽는 그림책의 목적을 알지 못했던 내가 출산하고 아이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그림책을 읽기 시작했다. 똑같은 그림 한 장 겹치지 않는 유일무이한 그림책들을 보며 깊이 감응한다. 다양한 색감과 선을 표현하고, 신문을 오려 붙였고, 여러 색을 콜라주하고, 여러 재질로 입체를 표현하는 작업들을 보며 내가 그림책을 만든다면 어떤 작업을 할까 상상해 본다. 스토리는 또 어떠한가. 아직도 서툰 소통 방식과 어린 시절 다정한 어른들이 없어 배우지 못했던 삶의 지혜를 그림책을 통해 배우고 있다. 친구를 사귀는 법, 다름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법, 삶에서 소중하고 지켜야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그림책을 통해서 배우고 있다. 감동적이고 슬픈 내용도 많아 아이 몰래 눈물을 훔치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반짝이는 그림책 하나 발견했다. ‘바본가’라는 제목이 흥미로워 뽑아 읽었는데 철학 용어 ‘자유의지’를 다시 생각해 보는 내용이었다. ‘비가 내린다는 게 아니라 내리는 게 비’인 것처럼, 내가 행동을 하는 게 아니라 행동하는 게 ‘나’이다. 행동하는 주체가 ‘내’가 아니라 행동과 사고를 따라 정해지는 ‘나’라는 가르침이다. 10쪽 분량의 짧은 내용이지만 기존 사고 체계가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림책을 쓴 작가는 누구인지, 어떤 작품을 썼는지, 아이들에게 전하고자 어떤 수많은 고민과 공부를 했을지, 출판사가 어디인지 등 궁금증이 이어졌다. 배움은 언제나 예상치 못하게 다가온다. 그림책을 등한시했던 내가 그림책의 아름다움과 순수함, 가르침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름을 느낀다.
시골에서 예술/문화를 겪을 기회가 적은데 운 좋게 내가 사는 지역에서는 군과 도에서 각각 운영하는 도서관이 두 곳이다. 덕분에 휴무일 걱정 없이 도서관을 갈 수 있다. 군에서 운영하는 도서관은 휴무일에도 도서관의 1층을 개방해 공부를 하고 책을 읽을 수 있다. 휴무일을 잊고 도서관 방문을 하더라도 문 앞에서 돌아가지 않고 열린 공간에서 잠시 쉬어 갈 수 있다. 이곳은 우리 모자(母子)뿐 만 아니라 어린이, 학생, 노인, 취준생 등 일반 시민들에게 피난처가 되어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런 환경을 만들고 도서관 문화 활성화에 앞장선 이름 모를 이들에게 감사하다. 오늘도 우리는 그림책 읽는 즐거움을 느끼며 도서관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