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선을 오래 하다 보면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이 점점 어렵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시끄러운 대화 속에서는 조용히 빠지고 싶고, 가벼운 농담에 웃어주는 일도 왠지 부자연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실제로 어떤 분은 명상을 시작한 이후 친구들과의 만남이 불편해졌다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스님, 예전에는 친구들이랑 만나 수다 떠는 게 재미있었는데요, 요즘엔 그런 시간이 오히려 지치고 허무하게 느껴져요. 제가 이상해진 걸까요?"
이런 질문을 생각보다 자주 듣게 됩니다. 어떤 분은 가족들과 이야기하는 것도 버겁게 느껴진다고 말합니다. 관계가 힘든 게 아니라, 그저 말수가 줄고 고요한 상태에 익숙해지다 보니 일상적 관계에 피로를 느끼는 겁니다.
저 역시 비슷한 느낌을 경험했습니다.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 나가도 마음이 예전만큼 즐겁지 않고, 오히려 절에 있을 때가 더 편하고 자유롭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변화가 과연 '올바른 수행의 결과'일까요? 정말 명상에서 진도가 나가면 사람들과 멀어져야 할까요?
사람들과 멀어지고 싶은 마음, 그건 '과정'의 일부입니다. 선에서는 이런 단계를 "고요함에 빠지는 병(着靜病, 착정병)"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고요하고 싶은 마음, 혼자 있고 싶은 마음, 그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수행을 통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변화일 수 있습니다. 다만 그 고요함을 추구하고, 사람과 섞이는 일을 회피하게 되는 상태는 일종의 중간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명상은 세상에서 멀어지기 위한 도피가 아니라, 더 깊이 관계하고, 더 넓게 껴안을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고요함에 잠시 머무르는 시간도 필요합니다. 그 속에서 나의 감정과 습관적 반응을 더 선명히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수행은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다시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말하고 듣고 함께 웃고 울 수 있는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스스로 닫는 건 아닌지 돌아보기... 자비심은 함께 있을 때 드러난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을 '수행'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서는 안 됩니다. 때로는 외면하고 싶고, 귀찮게 느껴지는 시기가 있지만, 그건 아직 내가 아직 내려놓지 못한 괴로움이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합니다.
그냥 소음을 피하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닫고 있는 것인지, 이건 늘 솔직하게 점검해봐야 할 질문입니다.
우리는 다시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보아야 비로소 알 수 있습니다. 견디기 힘든 상황에서도 피하지 않고 누군가를 도울 수 있을 때, 나의 수행은 바른 방향으로 가는 겁니다.
그리고 그때 우리의 약점과 문제를 제대로 점검할 수 있습니다. 명상에서 진전이 생길수록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싶어질 수 있지만, 그건 단지 하나의 지나가는 과정일 뿐입니다.
여러분이 선명상으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평화와 고요함을 얻었다면, 이제 그 고요함을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지, 그 속에서도 괜찮을 수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여전히 사람들이 피곤하고 혼자만의 고요함을 즐기고 싶다면, 아직 그 고요함을 넘어서야 할 때입니다. 바로 그게, 선명상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