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헐뜯고, 모함하고, 음해하고 싶은 충동이 생긴 적이 있습니까?
누군가를 헐뜯고, 모함하고, 음해하고 싶은 충동이 생긴 적이 있습니까?
특히 그 대상이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는 사람일 때, 우리의 마음은 이상할 정도로 시기심에 휩싸이기도 하고, 화를 내는 내가 더 쉽게 정당하게 느껴질 겁니다.
불교 경전 『사십이장경』은 이러한 마음을 경계하며 단호하게 경고합니다.
"악한 사람이 어진 사람을 해치는 것은 하늘을 우러러 침을 뱉는 것과 같아서, 침은 하늘에 닿지 않고 도리어 자기 얼굴에 떨어지며,
바람을 향해 먼지를 날리는 것과 같아서, 먼지는 저리로 가지 않고 도리어 자기 몸을 더럽히는 것이니라."
이 얼마나 통쾌하고 명징한 비유입니까.
어진 사람을 해치려는 이는 결국 자신을 더럽히고, 스스로를 해칠 뿐입니다. 상대는 하늘처럼 높아 침조차 닿지 않고, 바람처럼 가볍고 청정하여 티끌 하나 묻지 않습니다.
남을 해치려는 마음은 자신 안에 쌓인 독에서 비롯됩니다. 도리어 그 악한 행위의 업보는 고스란히 가해자에게 돌아옵니다. 선한 사람을 해치려는 그 마음 자체가, 자기 안의 복과 지혜를 갉아먹는 독이 되는 것입니다.
먼저 때리는 사람이 지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즉시 대응하라고 말합니다. "가만히 있으면 당한다", "맞기 전에 먼저 쳐야 산다"는 식의 조언도 흔합니다. 하지만 사실 먼저 공격하는 사람은 이미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그 죄의 무게는 언젠가 반드시 자신에게 돌아옵니다.
우리는 성인이 아닙니다. 지혜도, 수행력도 부족합니다. 그래서 더더욱 스스로에게 되물어야 합니다. 이 이야기는 단지 종교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 성찰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화가 나거나 억울할 때, 누군가를 헐뜯고 싶은 마음이 들 때, 그 순간 누구를 탓하기보다 먼저 자기 마음을 비춰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그 마음을 바라보는 용기,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수행'의 시작입니다.
특히 한국 사회는 그 자체로도 아름답고 깊은 문화적 전통을 지니고 있지만, 동시에 '생긴 대로 살기 어려운' 구조 속에서 많은 이들이 마음의 무게를 안고 살아갑니다. 체면과 비교, 끊임없는 경쟁 속에서 쌓인 분노와 억울함은 쉽게 밖으로 표출되지 못하고 마음속에 갇혀버리기 쉽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유명하고 잘나가는 사람이 작은 실수를 했을 때, 그를 비난하고 헐뜯는 자신의 말이 정당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비난은 종종 그 사람에 대한 분노라기보다는, 스스로 억눌러온 감정의 배출구를 찾으려는 무의식적인 몸부림일 수 있습니다.
그럴 때일수록 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정말로 내가 화내는 이유는 그 사람 때문인가, 아니면 내 안의 억눌린 감정 때문인가? 누군가를 비난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날 때, 그것이 정말로 그 사람 때문인지, 아니면 내 안에 쌓인 응어리가 만들어낸 것인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 남을 향한 분노를 다스리는 것은 곧 자신을 돌보는 일입니다. 그 마음을 일으키는 순간, 그것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무엇을 위한 것인지 다시 묻고, 그 물음 속에서 자신을 맑히는 것. 그것이 수행의 시작이고, 해탈의 실마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