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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소멸의 역학 관계

by Jane C

벌써 세 번째다.



내가 사랑하던 맛집이 사라진 것이. 맛집 따위에 '사랑'이라는 정신적인 단어를 붙이는 것이 가당 키나 하냐고 반문한다면 내 사랑은 깃털처럼 한없이 가볍기도 태산처럼 한없이 무겁기도 한 것이라 대답하겠다. 그러므로 이 사랑은 전자에 해당된다.


처음 치앙마이에 왔을 때 내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과제 중 하나는 '사랑하는 것' 찾기였다. 그리고 그 시작은 좋아하는 음식 찾기였다. 나는 한국에서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뭔지 묻는 아이의 질문에도 쉽게 대답하지 못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오랜 시간 나를 잊고 다른 이들에게 나를 맞추며 살아온 결과였다. 그것이 가장 쉽게 평화를 얻을 수 있는 길이었기에.


내가 맨 처음 꽂힌 음식은 조금 황당하게도 아이들의 입맛이라 치부하던 '마라탕'이었다. 집을 구하기 전까지 작은 호텔에서 지냈는데 그 근처엔 저녁에만 문을 여는 음식점들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그 마라탕집이었는데, 한 개당 5밧짜리 여러 가지 꼬치를 골라서 바구니에 담아주면 마라 국물과 함께 끓여주는 식이었다. 맛은 한국에서 먹는 마라탕보다 많이 약하고 맵지 않아 오히려 야채 해물탕에 가까웠다. 그땐 매일 외식으로만 대충 때우고 살았던 때라 이곳의 마라탕과 세븐일레븐에서 파는 39밧짜리 '매운 돼지 김치 볶음 김밥'을 함께 먹으면 좁은 호텔방은 금세 한국이 되었다. 이사 후에도 일주일에 한두 번씩 들러 꼭 포장을 했는데 어느 날부터 갈 때마다 문이 닫혀 있었다. 가는 날이 쉬는 날인 줄 알았는데 한날보니 아예 건물이 헐려 있었다. 그렇게 내 사랑 '마라탕'집은 사라져 버렸다.



치앙마이에 와서 꼭 누려야 하는 호사 중 하나는 바로 착즙 주스다. 신선하고 맛있는 과일이 많은 데다 저렴하기까지 하니 신장 기능이 받쳐주는 이상 1일 1 주스는 기본이다. 특히 갓 짠 오렌지 주스는 슈퍼에서 파는 여느 주스보다 더 달고 맛있는데 꼭 달다고 능사는 아니다. 쇼핑몰 푸트코트나 야시장에서 쌓아놓고 파는 오렌지 주스 중에는 시럽을 첨가해 단맛을 낸 것도 많기 때문이다.

우연히 길가 구석진 코너에서 오렌지 주스만 파는 가게를 발견하게 되었다. 반짝반짝 윤이 나도록 관리해놓은 착즙기에 정말 오렌지 외에는 아무것도 넣지 않는 걸 직접 확인했지만 맛은 꿀을 섞은 것 마냥 달콤했다. 마침 다니던 테니스장 근처라 일주일에 2번 이상 꼬박꼬박 사 먹었다. 우리 차가 가게 앞에 서기만 해도 주인아주머니는 500미리 2통을 미리 봉지에 넣어 바로 건네주었다. 남편이 잠시 한국에 가 2주 정도 테니스장을 못 나가게 되어 덩달아 오렌지 주스 집도 들르지 못했다. 그리고 다시 갔더니 웬걸 공사 중이 아닌가. 간이 가게 같은 곳이었던지라 정식으로 가게를 만드시려고 하나 하고 기다렸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내 사랑 '오렌지 주스' 아줌마는 사라지고 왠 시커먼 오뎅 꼬치 아저씨가 등장했다.



내 마지막 사랑은 '나초'. 치앙마이에서 웬 나초냐 하겠지만 이곳이었기 때문에 더욱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태국 음식은 소스를 많이 쓴다. 첫 입에 다양한 맛을 느낄 수 있지만 그만큼 자주 먹으면 질리기도 한다. 마야몰 푸드 코트에서 발견한 나초집은 태국 음식에 물리고 더위 탓에 입맛이 없을 때면 자주 이용하던 곳이다. 식사로는 80밧짜리 으깬 콩과 사워크림, 할라피뇨, 과콰몰리가 푸짐하게 올라간 나초를, 간단히 간식으로 먹으려면 나초칩에 살사소스와 과콰몰리만 따로 주는 40밧짜리 메뉴를 고르면 되었다. 전날까지도 분명 사이드 메뉴로 시켜 먹었는데 다음 날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지금은 덩그러니 우동집이 입점해 있다.



여기 온 지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건만 내가 사랑했던 음식점이 세 군데나 사라져 버렸다. 소멸은 내가 당연시 여겼던 존재의 가치를 더욱 애틋하게 만든다. 나는 마라탕도 오렌지 주스도 나초도 그리 사랑하던 사람인 줄 미처 깨닫지 못했다. 그것들이 사라지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아빠가 돌아가셨다.

아빠는 내가 태어날 때 뜨거운 사우디 건설 현장에 있었고 5살이 되어서야 한국으로 돌아오셨다. 난 그때까지 이모부를 아빠라 부르며 지냈고 아빠는 자신을 아빠라 부르지도 않는 막내딸을 이 방법 저 방법으로 꾀어낼 넉살도 없던 사람이었다. 첫 단추부터 헐겁게 끼워진 우리는 내내 쭈뼛쭈뼛하기만 했다. 우리의 관계는 항공 마일리지만큼이나 넉넉하게 쌓이지 못했으므로 나는 아빠의 죽음에 오래 통곡하지 않았다.

문득문득 아빠에 대해 떠올린다.

삶은 밤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딱딱한 밤껍데기를 손이 발게지도록 요령 없이 까서 한가득 통에 넣어주던,

천연 수세미를 쓰는 나를 위해 직접 수세미를 키우고 삶아 껍질을 벗긴 후 깨끗하게 말려주던,

백골뱅이를 좋아하던 나를 위해 곰솥 가득 골뱅이를 삶아 일일이 내장을 따서 냉동시켜 쌓아두던.

기억나는 아빠의 사랑은 이토록 촌스럽고 투박하기만 하다.

나도 아빠도 서로에게 단 한 번도 사랑한다 말한 적이 없었다.



오렌지 주스 아줌마에게는 아줌마의 주스가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는 얘기를 잘만 떠들었으면서 아빠가 까준 밤을 먹을 때마다 행복하다는 말은 왜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걸까. 큰 바위처럼 무겁고 어려운 나의 사랑을 잘게 쪼게 먼지처럼 가볍게 흩날리고 싶어진다.

드라마 <쌈, 마이웨이>의 여주인공은 남자친구도 뺏기고 좋아하는 일도 뺏기는 상황에서 왜 세상은 자신에게서만 사랑하는 모든 것을 뺏아 가는 거냐고 원망한다. 하지만 그녀가 잘못 알고 있는 거다. 우리는 모두 사랑하는 것들만 잃으면서 살아간다. 사랑하지 않는 것이 없어지는 건 인생에 아무런 자극도 타격도 되지 않기에, 오로지 사랑하던 것이 사라져야만 우리는 비로소 상실의 아픔을 깨닫게 되는 것이기에.


존재했다는 것도 소멸했다는 것도,

가슴 한쪽에 서늘한 바람이 성성하게 일게 만드는 것은 결국 사랑이다.






오늘은 아빠의 첫 번째 기일이다.

소멸된, 끝끝내 사랑이었던.









Photo: Michael Fen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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