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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ara Mar 13. 2024

타향살이를 통해 알게 된 내적 성장

성장일기 _캐나다라이프

타향살이 8년 차


내가 매일 안고 살아가야 했던 감정은 불안이었다.


처음에는 이 감정이 무슨 감정인지 몰랐다. 그래서 우울이나 외로움이라고 생각했다. 타향살이를 시작했던 첫해부터 3년까지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았다. 특히 한국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마음이 한결 편해지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타국에서 한국 사람들에게 의지하며 지냈던 것 같다. 


이곳에서는 홀로 어린아이 두 명을 데리고 머나먼 타국에 와서 지내다 보니 내가 한국에서 살아왔던 생활반경 속에 있던 사람들이 아닌 전혀 다른 지역 사람들 혹은 전 세계 어딘가에서 살다왔던 외국인들과 다양한 관계 속에서 살아가야만 했다. 


이런 관계들이 내 불안의 시작이 아니었을까 싶다.  

누군지 잘 모르지만 살아가기 위해 알아야만 하는 사람들. 

유학생 특성상 1,2년 머물다가 떠나는 사람들.  

늘 새로운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다 보니 자주 바뀌는 인간관계에서 오는 불확실한 신뢰감.

이런 감정들을 자주 겪다 보니 불안감도 자연스럽게 오게 되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다양한 문화에 대한 경험이 많아져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다문화에 대한 편견이 줄어드는 장점도 많지만, 반면에 그로 인한 불편한 단점들도 많다.


나와 비슷한 점이 하나도 없는 사람들과 만남을 유지하며 겪는 낯선 감정들의 연속과 예상할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은 늘 나를 불안하게 하였다. 


특히 외향인이 아닌 나는 지나치게 친화력이 넘치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관계에 많은 부담을 느꼈다. 늘 관계에서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던 나에게 갑자기 감정적 많이 기대거나, 지나치게 부탁을 많이 하거나, 안면만 있을 뿐인데 친하다고 말하며 나의 감정에 대해 함부로 평가하는 사람들 속에서 겪어내는 같은 시간 속의 다른 감정들은 내가 소화하기에 버거운 시간이었다. 


간혹 내가 지키는 매너 혹은 약간의 거리감을 그들은 "정이 없는 서울깍쟁이"라고 치부하며 나를 몰아세우기도 하였다. 


나는 생각했다.

'본인들이 더 깍쟁이면서…'


그놈의 "정"이라는 경계를 누가 정의해 놓았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이 말하는 정이라는 표현은 자기 마음대로 남의 마음을 쉽게 판단하고 자신의 감정대로 타인의 마음을 휘둘러도 되는 수단으로 여기며 타인의 마음을 함부로 사용하는 특권 같이 느껴졌다. 


정이라는 말로 포장되어 내가 원하지 않아도 받아야만 했던 많은 감정들과 불편한 행동들을 받지 않으면 나는 늘 서울깍쟁이가 되었다. 


내가 한국에서 겪어 보지 못했던 이런 종류의 정서적 교류들이 자주 반복되다 보니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여긴 캐나다 아니야?  개인의 의사와 의견 감정이 더 존중되는 나라 아닌가?  당연히 타인의 의사를 물어야 하는 거 아니야? 왜 해외에서 살고 있는데 80년대 서울에서 사는 기분이 들지?'


해외에서 오래 산 사람일수록 그들이 한국을 떠나왔던 예전 시간 속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한국에서 살던 습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옆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알고 지내던 시절, 네 집이 내 집이었던 그 시절 1980년대.  그러나 21세기 캐나다에서 살고 있는데 나는 여전히 1980년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곤 한다. 


 예를 들어 내 집을 자신들의 안방처럼 드나드는 것에 미안함을 느끼지 않으며, 본인 집도 마음대로 와도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들이 조금이라도 피해를 볼 것 같으면 여기는 캐나다라고 말하며, 자신은 캐네디언이고 캐나다에서는 개인의 감정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말하며  정확하게 선을 긋는 태도를 취한다.  아이러니다.


여하튼 많은 한인들과 소통하다 보면 이런 복잡한 감정들을 반복하게 되고 이 관계로 인해 피로감과 불안감만 늘어나게 되었다. 


'대체 어느 감정에 맞추라는 거야?'


문화, 정서, 생활방식, 대화법이 전혀 다른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며 매 순간 나를 설명해야 하는 관계의 피로감이 최고조에 달했지만, 여전히 만남을 끊을 수 없었다. 캐나다는 추천사회이기 때문이다. 내가 어딘가에 취업을 하려고 한다면 반드시 누군가의 추천이 필요했다. 


여하튼 한국에서 독립적으로 살아왔고 외로움을 타지 않는다고 자부했던 나지만, 이곳에 와서 느끼는 외로움은 결국 우울감까지 끌어들였다.


돌이켜 보니 그 감정들은 외로움이 아니라 불안이었다. 타향살이에서 오는 불안감.


내가 이곳에서 매일 느끼는 기분 중 하나는  땅에 발을 딛고 서 있지만 허공에 둥둥 떠 있는 듯한 기분이다.

문득 신호등을 건널 때 반대편에 서있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을 바라보며 마치 꿈을 꾸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던 적도 많았다. 정작 주변에 아는 사람들은 많지만,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가족이 없기에 언제나 마음 한편이 갑갑함으로 가득했다. 


다양한 민족과 다양한 관계 속에서 살아가지만 늘 혼자 붕 떠있는 기분이다.


나의 자동차 수납함에는 보험증서와 함께 손글씨로 쓰인 한국 가족들의 연락처 및 위급상황에 연락할 영사관 전화번호, 나의 인적 사항 등이 빼곡히 적혀 있는 메모가 있다.  가끔 그 종이를 꺼내어 확인하며 안도의 마음을 느끼기도 한다. 


'이 종이 따위가 뭐라고 보고 있으면 편하냐?'


 타향살이가 나에게 주는 기본정서는 불안이다.


매일매일이 평온하지만 무언가 불편한 마음. 

이유를 알 수 없는 우울감과 답답한 기분들이 가득한 날들.

알 수 없는 외로운 마음.

반복되는 불편한 관계와 감정

예측 불가능한 먼 미래에 대한 두려운 감정.

가고 있는 길이 어딘지 정확히 모를 때 오는 두려움.

해결해야 하지만 해결하지 못하는 많은 일들.


모든 것이 불안감이었다. 


또한 사춘기 아이들의 예측 불가능한 상황들과 나의 타향살이가 겹쳐지니 불안의 크기는 어마어마하게 커져나갔던 것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면서 엄마가 가진 마음 중에 아이들이 가장 빠르게 흡수하는 것은 양육자의 '불안한 마음'일 것이다. 홀로 캐나다에 도착하여 난생처음 겪는 많은 일들을 처리하면서 보인 불안정한 행동들 그 마음아이들이 온전히 받고 먹고 있었다.  아이들을 위해 이곳에 왔으면서도, 정작 아이들에게 늘 불안한 마음을 안겼었던 것 같다.


얼마 전 아들과 단둘이 목적지 꽤 먼 곳가지 운전을 하며 가게 되었다.  차 안에서 아들이 요즘 겪고 있는 개인적인 스트레스와 시험,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면서 짜증 섞인 말들을 내뿜었다.


문득 아들이 짜증을 많이 내는 거 보니, 이 아이 지금 불안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걱정이 많은 나를 많이 닮은 아들은 다가올 미래와 인생에 대한 수많은 문제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었다. 아들에게 뭐라도 이야기해주고 싶었기에, 요즘 깨달은 생각을 공유해주고 싶었다.


“아들, 엄마가 요즘 운전 잘하지? 엄마가 처음 캐나다에 왔을 때는 맨날 울면서 운전하고 무섭고, 어렵고, 힘들었던 기억이 나. 그런데 지금은 운전하는 데 마음이 참 편해.”

“그러게 엄마, 운전 정말 잘해. 나도 그때 엄마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어디 가는 게 진짜, 진짜 무서워했어. 불안하고 엄마가 불안해하니까 내가 더 불안했지 그때는.”

“그랬어? 지금은 어떤 기분이야?”

“지금은 편해.”


“다행이다. 엄마도 지금은 너무 편해. 신기한 건, 그때와 지금이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그때는 모든 게 처음이라 이 길이 어디로 연결되어 있는지 모르고, 정확하게 그려지지 않아서 예상치 못한 상황에 마음이 너무 조마조마하고 불안했어. 그런데 이제는 이 길들이 너무 익숙해서 길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아는 것 같아. 그래서 엄마의 마음이 편해진 것 같아. 그때 엄마가 계속 운전을 두려워하고 가만히 머물러만 있었다면 지금처럼 편안해질 수 있었을까 싶어. 인생도 그런 것 같아. 내가 처음 해보는 것들에 대한 두려움. 해보지 않은 것들에 대한 어색함, 먹먹함, 그리고 걱정들. 그냥 하다 보면 그 두려움은 점점 옅어지는 것 같아. 한 번 갔던 길을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가다 보면 길의 끝에 뭐가 있는지 보이는 거지. 그런데 내가 도전을 하지 않고 멈춰 있었더라면, 엄마는 아직도 계속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무언가 도전할 때 두려움이 드는 것은 당연한 거니까 겁먹지 말고 무조건 해보자. 그것이 인생을 덜 불안하게 살아가는 길인 것 같아. 그리고 요즘 엄마의 좌우명이 뭐지, 알아?"


“뭔데?”


“Just do it이야. 그냥 해. 이 말은 정말 멋진 말인 것 같아. 두려움을 없애는 마법 같은 말이야. 그러니까 너도 고민을 너무 많이 하지 말고 그냥 해보는 것은 어때?”


“에이, 엄마는 어른이니까 그렇지! 이미 해봤으니까!”


“그건 맞아. 나도 네 나이 때는 정말 두렵고 힘들었으니까. 그런데 그때 누군가 나한테 이렇게 말해줬더라면 조금 더 다르게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어.  아는 얘기가 되어버렸으니까, 조금 덜 두려웠을 거야. 여하튼 엄마는 그랬다고 말해주고 싶어. 시간이 이렇게 많이 지나서야 깨닫게 됐어. 그래도 우리 아들은 엄마보다 더 지혜로우니까 잘 헤쳐나갈 거라고 믿어!”


“응.”


그 후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목적지를 향해 갔다.


지금, 늘 불안한 우리에게 혹은 그대에게 말해주고 싶다.


“지금 두려운 당신! 그냥 해봐. 당신의 경험만 하나 더 늘어났거나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일이 일어났을 뿐입니다.  용기 냅시다. ”


타향살이의 불안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한 걸음 더 나아가지 않으려는 나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일 지도 모르겠다.  열린 마음으로 그냥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것들을  받아들였다면 조금 덜 불안하게 살지 않았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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