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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ara Mar 13. 2024

타향살이의 불안과 내적 성장

성장일기 _캐나다라이프

타향살이 8년 차


내가 매일 안고 살아가야 했던 감정은 불안이었다.


무슨 감정인지 몰랐을 때는 외로움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타향살이를 시작했던 2017년 초반에는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며 그 속에서 살았다.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마음이 한결 편해지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사람에게 마음을 많이 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린아이 두 명을 데리고 홀로 머나먼 타국에 와서 지내며, 한국에서 내가 살던 지역과는 전혀 다른 지역 사람들과 어울리며, 아이들이 학교에서 만난 같은 반 친구들로 인해 알게 된 전 세계 어딘가에서 살았던 지금은 캐나다에서 살고 있는 외국 엄마들과의 관계가 그랬다.


이런 다양한 관계를 경험하며 겪는 다민족과 다양한 지역 사람들과의 생활방식과 문화 차이가 주는 불편함, 혹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불안감은 타향살이나 해외살이가 주는 장점이자 단점이다. 다양한 문화에 대한 경험이 많아져 편견의 폭이 줄어들고,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로 인한 불편한 단점들은 양면의 칼날을 갖고 있다.


나와는 비슷한 점이 하나도 없는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면서 겪는 낯선 감정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


내가 외향적인 듯 내향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낯선 사람들과 친구가 되는 것은 어려워하지 않지만, 마음을 나누고 깊게 사귀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빨리 친해지지 못하고 최대한 매너를 많이 지키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종종 지나치게 친화력이 넘치는 사람들을 만날 때 관계가 부담스러웠던 적이 많았다.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던 나에게 갑자기 감정적으로 훅 들어오거나, 지나치게 부탁을 많이 하거나, 안면만 있을 뿐인데 친하다고 말하며 나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 속에서 겪어내는 같은 시간 속의 다양한 감정들은 나를 불편하게 했다.


그들을 무엇이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고, 내가 지키는 매너에 대해 "정이 없는 서울깍쟁이"라고 치부해 버리는 일부 지방 출신 지인들의 과잉 일반화하여 말하는 그 말이 너무 싫었다.


나는 생각했다.

'본인들이 더 깍쟁이면서…'


여하튼 그 말에 동조하는 다른 지방 출신 지인들에게 나는 깍쟁이로 치부되고 싶지 않아서 성격 좋은 척, 밝은 척을 많이 하며 그들이 나에게 주는 예상치 못한 행동과 말들을 받아들이며 많은 불안을 감내하며 지냈다.


그놈의 "정"이라는 경계를 누가 정의해 놓았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에게 정이라는 표현은 자기 마음대로 남의 마음 경계선을 쉽게 넘어도 되는 어떤 수단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적어도 이곳에서 말이다. 

정이라는 말로 포장되어 내가 원하지도 않는 많은 행동들을 당연히 받아들이게 만드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다수의 무리 속에서 있던 나는 반박할 수 없었다. 그저 매우 불편하고 불안한 것뿐이었다.


갑자기 지나다 집 앞에 찾아와서 문을 두드리며 커피 타임을 제안한다 던 지, 본인 마음대로 음식을 사 와서 같이 점심을 먹자고 한다 든 지 그들의 행동은 타인의 감정을 전혀 배려하지 않고 정이라는 마음을 이용할 뿐이다.  정이란 단어는 타인을 마음을 함부로 이용해도 되는 어떤 정당화의 다른 표현처럼 느껴졌다. 


내가 한국에서 겪어 보지 못했던 이런 종류의 정서적 교류들이 자주 반복되다 보니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여긴 캐나다 아니야?  개인의 의사와 의견 감정이 더 존중되는 나라 아닌가?  당연히 타인의 의사를 물어야 하는 거 아니야? 왜 해외에서 살고 있는데 80년대 서울에서 사는 기분이 들지?'


해외에서 오래 산 사람일수록 그들이 한국을 떠났던 그 시간 속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한국에서 살던 습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옆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알고 지내던 시절, 네 집이 내 집이던 그때가 1980년대였다. 그러나 그들이 필요한 상황에는 여전히 그 시절의  삶을 고수하며 살아가지만, 분리한 상황에는 그들은 캐네디언이다. 나는 나 너는 너 인 것이다.  예를 들어 내 집을 자신들의 안방처럼 드나드는 것에 미안함을 느끼지 않으며, 본인 집도 마음대로 와도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들이 조금이라도 피해를 볼 것 같으면 여기는 캐나다라고 말하며, 자신은 캐네디언이고 캐나다는 그러한 것들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하면서 정확하게 선을 긋는 태도를 취한다. 


신기하다. 그 심보가 이해하기 어렵다.


이런 감정들의 반복이 나에게 피로감과 불안을 준다. 


'대체 어느 감정에 맞추라는 거야?'


문화, 정서, 생활방식, 대화법이 전혀 다른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며 매 순간 나를 설명해야 하는 관계의 피로감이 최고조에 달했지만, 여전히 그들과의 만남을 끊을 수 없었다. 너무 외로웠기 때문이다. 아니 불안했기 때문에...


한국에서 독립적으로 살아왔고 외로움을 타지 않는다고 자부했던 나지만, 이곳에 와서 느끼는 외로움은 극치에 이르러 우울감까지 끌어들였다.


그런 생각을 가지며 주변에서 주는 정서적인 불편함을 감수하고 지인들을 지척에 두고 살아왔다.


돌이켜 보니 그 감정들은 외로움이 아니라 불안이었다. 타향살이에서 오는 이름 모를 불안감.


타향살이 8년 차인 내가 매일 느끼는 기분은 땅에 발을 딛고 서 있지만 허공에 둥둥 떠 있는 듯한 기분이다.

주변에 아는 사람들은 많지만, 정작 내 어려운 일을 속 깊게 나눌 가족이 없기에 언제나 갑갑함이 가득하다.


다양한 민족과 다양한 관계 속에서 살아가지만 늘 혼자 붕 떠있는 기분이다.


자동차 수납함에 보관된 보험증서, 혹은 지갑 안에 늘 손글씨로 쓰인 한국 가족들의 비상연락처 및 위급상황에 연락할 영사관 전화번호, 나의 인적 사항 등이 빼곡히 적혀 있는 메모.

가끔 그 종이를 꺼내어 확인하며 안도의 마음을 느낀다.


아이들에게 나의 일신상 문제가 생기면 누구에게 연락하라는 식으로 알려주며 비상연락을 공유하는 그 안쓰러운 마음이 내 안에 있다.


이 많은 감정들을 나열하고 보니 나는 깨달았다.


오랜 타향살이가 주는 내 기본적인 정서는 불안이었다.


매일매일이 평온하지만 무언가 불편한 마음. 이유를 알 수 없는 우울감과 답답한 기분들이 나에게 정서적 문제를 일으키며 늘 지옥 같은 마음속에서 살아왔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몇 해 전부터 내 감정에 대해 깊이 공부하는 계기가 생겼다. 평소에도 감정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지라, 함께 공부하는 지인을 만나 큰 성장을 하게 되었다.


감정을 공부하던 후반부쯤에 알게 된 내 마음의 불편함의 본질을 정확히 이해하자, 마음 깊게 박혀 있던 우울이 많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 우울의 시작이 불안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고, 현재는 그 불안도 3분의 2 가량 줄어든 상태다.


지금의 내 외부적 상황은 최악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해결되지 않는 많은 일들로 매일매일이 버겁지만, 나는 생각한다.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가?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인가?”


내가 해결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따로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에만 집중하여 매일매일 할 수 있는 일을 해결해 나가고 있다.


어쩌면 세월이 많이 흘러 아이들이 많이 자랐고, 본인 스스로 챙길 만큼의 판단력이 생기다 보니 내 불안이 반으로 줄어든 것은 아닐까? 


아이들의 성장과정 속에서 주는 예측 불가능한 상황들이 주는 불안감은 어마어마하다.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면서 엄마가 가진 마음 중에 아이들이 가장 빠르게 흡수하는 것은 양육자의 '불안한 마음'이다.


홀로 캐나다에 도착하여  내가 가지고 있던 불안의 마음을 온전히 먹고 자라난 아이들. 아이들을 위해 이곳에 왔으면서도, 나는 정작 아이들에게 늘 불안한 마음을 안겼다.


내 마음이 가진 온갖 불안함 감정들을 다양한 이유를 만들어 그 감정의 고통과 괴로움을 정당화했다. 그 정당화 속에서 미워해야 할 사람 하나쯤은 필요했고, 그것이 가장 가까운 남편과 친정엄마였던 것 같다.


그렇게 나를 위로하며 지내왔던 것 같다. 결국 내 마음의 불편함은 내가 만든 불안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나는 늘 핑곗거리를 찾고 살았다.


얼마 전 아들과 단둘이 운전하며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던 중 아들이 요즘 겪고 있는 개인적인 스트레스와 시험,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면서 짜증 섞인 말들을 내뿜었다.


문득 아들이 짜증을 많이 내는 거 보니, 이 아이 지금 불안한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이 들기도 잠시, 걱정이 많았던 나를 꼭 닮은 아들은 다가올 미래와 인생에 대한 수많은 문제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었다. 아들에게 뭐라도 이야기해주고 싶었기에, 요즘 느끼는 나의 감정들을 공유해 주었다. 


“아들, 엄마가 요즘 운전 잘하지? 엄마가 처음 캐나다에 왔을 때는 맨날 울면서 운전하고 무섭고, 어렵고, 힘들었던 기억이 나. 그런데 지금은 운전하는 데 마음이 참 편해.”

“그러게 엄마, 운전 정말 잘해. 나도 그때 엄마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어디 가는 게 진짜, 진짜 무서워했어. 불안하고 엄마가 불안해하니까 내가 더 불안했지 그때는.”

“그랬어? 지금은 어떤 기분이야?”

“지금은 편해.”


“다행이다. 엄마도 지금은 너무 편해. 신기한 건, 그때와 지금이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그때는 모든 게 처음이라 이 길이 어디로 연결되어 있는지 모르고, 정확하게 그려지지 않아서 예상치 못한 상황에 마음이 너무 조마조마하고 불안했어. 그런데 이제는 이 길들이 너무 익숙해서 길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아는 것 같아. 그래서 엄마의 마음이 편해진 것 같아. 그때 엄마가 계속 운전을 두려워하고 가만히 머물러만 있었다면 지금처럼 편안해질 수 있었을까 싶어. 인생도 그런 것 같아. 내가 처음 해보는 것들에 대한 두려움. 해보지 않은 것들에 대한 어색함, 먹먹함, 그리고 걱정들. 그냥 하다 보면 그 두려움은 점점 옅어지는 것 같아. 한 번 갔던 길을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가다 보면 길의 끝에 뭐가 있는지 보이는 거지. 그런데 내가 도전을 하지 않고 멈춰 있었더라면, 엄마는 아직도 계속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무언가 도전할 때 두려움이 드는 것은 당연한 거니까 겁먹지 말고 무조건 해보자. 그것이 인생을 덜 불안하게 살아가는 길인 것 같아. 그리고 요즘 엄마의 좌우명이 뭐지, 알아?"


“뭔데?”


“Just do it이야. 그냥 해. 이 말은 정말 멋진 말인 것 같아. 두려움을 없애는 마법 같은 말이야. 그러니까 너도 고민을 너무 많이 하지 말고 그냥 해보는 것은 어때?”


“에이, 엄마는 어른이니까 그렇지! 이미 해봤으니까!”


“그건 맞아. 나도 네 나이 때는 정말 두렵고 힘들었으니까. 그런데 그때 누군가 나한테 이렇게 말해줬더라면 조금 더 다르게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어.  아는 얘기가 되어버렸으니까, 조금 덜 두려웠을 거야. 여하튼 엄마는 그랬다고 말해주고 싶어. 시간이 이렇게 많이 지나서야 깨닫게 됐어. 그래도 우리 아들은 엄마보다 더 지혜로우니까 잘 헤쳐나갈 거라고 믿어!”


“응.”


아들의 짜증 섞인 말투는 수 그러 들었다. 


그 후 한동안 우리는 한동안 아무 대화 없이 목적지를 향해 갔다.


지금, 늘 불안한 우리에게 혹은 그대에게 말하고 싶다.


“그냥 해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당신의 경험만 하나 더 늘어났거나 한 걸음 더 나아갔을 뿐이에요.”


타향살이의 불안도 한 걸음 나 아기지 않으려는 나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일 지도 모르겠다. 


열린 마음으로 그냥 있는 그들이 존재하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적어도 그리 오래 불안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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