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몽 Feb 01. 2022

캐나다 집 인테리어

집, 그곳의 의미.

이십 대부터 늘 짐을 싸고 옮겨 다녔다. 처음 독립한 언니와 함께 살던 샤워실이 있는 고시원. 바빠서 집에 안 들어오는 언니의 부재로 외로움에 화들짝 놀라 냉큼 엄마가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


일본에서는 캐리어를 끌고 네다섯 번의 이사를 했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작은 고시원에서 대학을 다녔다. 내가 없는 사이 우리의 집도 몇 번의 이사를 거쳤다.


결혼해서는 이삿짐 부르는 이사는 두 번 (고급 이사..) 내가 짐을 싸고 처분하는 이사는 열 번이 넘는다.


너무 지겨워 이제는 그만하고 싶었으나,   아이들과 함께 캐나다로 넘어와 이렇게  나의 공간을 만들고 있다




집 사진을 찍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내 사진첩에 집 사진과 공간의 대한 사진이 많아지면서, 아 자주 옮겨 다니는 나에게 집은 이제 예전과는 다른 의미이구나.라고 깨닫게 되었다.


필리핀 선교를 나가서 처음 간 집은 센터에 화장실 딸린 방한칸이었다. 누군가가 준 선반으로 책상도 쓰고 아이들 젖병도 놓고 멀쩡한 가구들을 주워다 쓰기도 했다. 통나무집에서 사는 것이 선교라 생각한 나에게는 굉장히 호사스러운 집이었다.


나중에는 더 좋은 이층 저택으로 이사 갔는데, 남편의 부재와 어린아이들을 돌봐야 했고, 저택들이 떨어져 있어서 밤만 되면 두려움에 소리도 잘 못 냈다.

실제로 고양이 소리를 도둑이 든 것이라 착각해 숨도 못 쉴 정도로 공포에 떨고 난 후, 그 집은 내게 아픈 기억만이 가득하다.


65년 된 사택에서는 쥐가 들어와도 놀라지 않았고, 그곳에 살던 할아버지가 쓰던 장롱과 서랍장을 써도 괜찮았았다. 좀이 가끔 보이긴 했지만. 화장실 타일이 깨져 타일 사이로 벌레들이 올라왔고 곰팡이는 기본에 비가 오면 그릇으로 떨어지는 물을 받기도 했다.


사실 다 괜찮았다. 그곳이 나의 집이라면 난 쉽게 정을 붙일 수 있다. 하지만 자유가 없었다. 늘 공개되어 있고 누구든 언제나 올 수 있는 집이었다. 늘 대비하고 갖추고 있어야 했다.


처음으로 나의 집이 생겼다. 사택이라서 눈치 보지 않아도 되고 누군가가 아침 일찍 문을 두드리거나, 창문을 두드릴 일도 없는, 나의 .

경제적으로 무지했어서 십 년 된 청약통장도 이삿짐 백만 원 돈이 없어 깼던. 내가 무리하면서 집을  이유는 우리 가족의 공간, 나의 공간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내가 나다워지는 공간이 집이다.

일찍 일어나 누군가 올까 봐 옷을 입고 있지 않아도 되는. 자고 일어남에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곳. 착하고 늘 이해한다는 표정을 장착하지 않아도 되는 곳. 내가 좋아하는 다이어리 꾸미기. 어린아이 같은 취미 같은 것도 눈치 보지 않고 맘껏 할 수 있는 곳, 나의 집,


나의 캐나다 집, 이곳에서도 난 무지막지하게 추억을 쌓고 커갈 것이며 파도 속에서 강해지고 성숙해질 것이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