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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

< 에필로그 >

by 해보름

올해 1월부터 달려온 출간 여정이 8월, 마침내 하나의 점으로 찍혔다.

긴 중거리 달리기가 끝났다. 잠시 멈춰 숨을 고른다.

지친 체력을 회복하고, 쉼을 통해 다음을 준비한다.


인생은 마라톤이다.

결국 중요한 건 자기만의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이다.

처음엔 누군가의 속도에 맞춰 뛸 수 있지만,

장기전에서는 자신의 리듬을 찾아야만 완주할 수 있다.

그래야 쓰러지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나아갈 수 있다.


동행은 소중하다.

서로를 격려하며 함께 걷는 시간은 큰 힘이 된다.

그러나 끝까지 같은 속도로 달릴 수는 없다.

등산을 하다 보면 처음엔 혼자 시작하지만,

길 위에서 자연스럽게 옆에 선 사람들이 생긴다.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서로에게 힘이 된다.


그러나 정상에 도착할 때는 각자 다른 자리에 서 있다.

새로운 동행자를 만나고, 또 헤어진다.

그렇게 우리는 저마다의 속도로, 각자의 리듬으로 살아간다.


이번 출간 작업을 마치며 ‘함께’의 의미를 새삼 되새긴다.

혼자였다면 해내지 못했을 일도, 함께였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그 여정을 마친 지금, 나는 다시 나의 자리에 다시 선다.

이제 다시 나의 길을, 나의 속도로 걸어간다.


내 것을 놓지 않고,

나를 잃지 않으며,

나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나의 때를 향해 나의 길을 나아가는 것.

그것이 나로서 살아가는 방식이다.


내 속도로 나를 잃지 않고 갈 때만이, 흔들리더라도 잠시 멈추더라도 숨을 고른 뒤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나온다.


출간 행사를 마치고 돌아온 뉴질랜드에서 나를 기다려준 사람들과 다시 나의 자리에서 일상을 맞는다. 여유로운 햇살, 아이의 웃음, 반가운 인사들이 따뜻하다.

그 일상은 예전과 같지만, 내게 다가오는 의미는 전혀 다르다.

쉼 없이 글을 써온 끝에, 하루의 일상이 새롭게 느껴진다.


하루를 그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고 살아내는 것, 그 자체가 충만한 글이 되는 것임을 안다. 글로써 나의 삶을 비워내고, 다시 삶으로써 채워간다. 그렇게 비움과 채움을 반복한다.


머리를 비우고, 잠시 멈춘 후, 다시 나아간다.

멈춘다는 건 끝이 아니다.

내 안의 속도를 되찾고, 삶의 결을 다시 느끼기 위해서이.



나는 글을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니라,

삶을 통해 글을 쓰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그렇게, 글은 여전히 내 안에서 흐를 것이다.

다만 이번에는 더 단단한 삶의 온도와 함께.


제자리란 ‘제격’인 자리야.

남의 자리가 아닌,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바로 너의 속도에 맞는 자리.

퇴보가 아닌, 더 큰 진보로 이어질 그 자리. (주 1)


그곳에서 나는, 다시 나의 속도로

삶을 써 내려간다.




주 1> 엄마의 유산- 네가 바로 블랙스완이야, 정아라, 강해정, 정근아, 서유미, 김채희, 김주현 공저, 건율원, 2025.



*** <무너진 마흔, 글로 다시 일어서다.> 연재를 이번 편으로 마칩니다. 들러주시고 응원해주신 글벗분들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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