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사랑의 기억도 이제는 아련하고 아름다운 기억으로 떠오르는 것은 세월이 주는 치유의 힘임을 부인할 수 없다. 지나간 추억은 적당히 윤색되고 각색되어 아프지 않을 만큼 바랜 기억으로 남는다. 지나온 먼 시간만큼의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사랑의 기억은 아픔보다는 빛나던 청춘의 특권인양 눈부시다.아니 어쩌면 그리운 것은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그 빛나던 시절의- 젊음의 시절이 그립고 보고 싶은 것은 아닐까.
오늘 갑자기 왜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곽진언의 '시청 앞 지하철 역에서'라는 헤어진 연인을 우연히 만난 소회가 들어있는 노래 가사를 듣다 보니 한참을 잊고 있던 가슴속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마음속에 꽁꽁 숨겨둔 애틋한 사랑의 추억 하나쯤은 누구나 지니고 있을 것이다. 그동안 정신없이 사느라 잊고 살았었는데... 부질없는 기억을 떠올리고 센티해지는 것을 보니 나도 늙나 보다.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문득 어리석은 질문이 떠올라 씁쓸하게 웃었다. 아마도 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운명론자는 아니어도 사람과의 만남과 헤어짐의 인연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끊어진 인연을 아쉬워할 만큼 이제 나는 어리지도, 어리석지도 않다. 다만 한 가지 욕심은 나도 누군가에게 아주 가끔 떠올려질 수 있는 그런 좋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아들은 가끔 내게 엄마 지금이라도 좋은 남자 친구 사귀어 보라고 진담 반 농담 반 이야기를 꺼낸다. 그러면 나는 피식 웃다가" 네가 좋은 사람 소개해줘~~" 하고 말을 꺼내면 "엄마는 내가 엄마 또래 아저씨를 어떻게 알아요?"하고 껄껄 웃고 만다. 주변머리 없고 집순이인 내게 남자 친구는 남의 이야기이다. 여중ㆍ여자고등학교, 여대를 나온 나는 남사친이 편하지 않고 어색하고 불편하다. 이십 대 때는 남녀공학 다니는 친구의 과친구들과 종종 어울렸으나 결혼과 동시에 남편의 늦은 공부로 해외에 잠시 체류하면서 그나마 남자 친구이던 여자 친구이던 친구들이랑 소식이 많이 끊겼다. 결혼 생활 22년을 끝으로 남편과의 종지부를 찍었지만 아들의 초등학교 3학년부터 오랜 기간 별거를 해왔던 까닭에 아들은 늘 혼자 있던 엄마가 이제라도 사람 사는 것처럼 살아보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외롭고 힘든 결혼생활은 아들을 잘 키우는 것. 나 자신의 행복보다는 아이에 대한 책임감과 사랑으로 버틸 수 있었다. 결혼생활에 예상치 못한 난관이 있어도 스스로와의 약속을 끝까지 지키는 것이-결국은 지키지 못했지만- 도리라고 생각했었다.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는 진리를 나도 엄마가 되면서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휴일이나 주말이 싫다. 그건 오래된 불편함이다. 시간을 한참 거슬러 올라가 30대부터- 난 늘 아이와 단둘이 생활한- 나에게 휴일 가족단위로 외출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는 것은 한편으로 부러우면서도 아픈 일이었다. 늘 아빠와 남편과 동행하는 내 또래 가족들은 나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온 식구가 마켓에서 장을 보고 쇼핑을 하고 외식을 하는 그 모습이-평범한 소시민의 삶이라 여겼던 보통의 삶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그때 처음 알았다.
그때는 내가 그리고 아이가 아빠랑 남편에게 버려진 것 같아 원망과 분노가 나를 병들게 했는데, 이제와 생각해 보니 그때의 내가 생각했던 가정을 유지하기 위한 최선보다는 아니, 내가 주고 싶은 사랑보다 그가 원하는 사랑을 주기 위해 노력했었다면 아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는 않았을지 모르겠다. 시간이 이렇게 많이 흘러서야 내가 그를 진실로 뜨겁게 품지 못했음을, 그를 존중하지 못했음을 그리고 최선을 다한 노력이 결국은 나를 위한 이기적인 최선이었음을 고백한다.
젊음의 시절을 돌아 돌아 -소용돌이의 중심부에서 빠져나와 -제3의 시선으로 보니 내가 피해자라는 생각에서 그도 나도 모두 피해자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새 분노도 미움도 사라지고 아픈 마음의 생채기가 아물어 간다.
타고난 성향에 주어진 환경은 나를 귀차니스트, 집순이, 무던하고 경우 있는 사람, 합리적인 사람, 별로 화낼 일 없는 뜨뜻미지근한 사람, 극 소심함에 겁 많은 사람, 도전정신 제로에 가까운 -변화보다는 안전을 택하는 -사람. 우유부단한 햄릿형 인간, 개인주의를 선호하는 이기주의자이면서도 막상 조건보다는 사랑을 택하는 실속 없는 허당, 타인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예민함의 소유자, 어제보다 오늘이 나은- 꼰대가 안되려고 노력하는 장년의 나, 그리고 약한 듯 강한 나를 만들었다. 이 모두가 내 안의 나를 이루고, 나를 나답게 존재하게 하며, 나를 더 나은 나로 이끌기 위해 노력하게 한다.
생활이 참 단조로운 요즘이지만 감사하게도 마음이 많이 평온하다. 물론 문득문득 다람쥐 쳇바퀴 같은 생활에 갑갑할 때도 외로울 때도 있지만 그래도 마음이 쉽게 요동치지 않는다. 명희 씨 카페에서 2,3시간 있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내야 하는 나로서는 외로움이 턱밑까지 차오르는 경우도 허다하지만 엄살 부리지 않고 씩씩하게 무소의 뿔처럼 앞만 보고 가는 내가 대견하다.
사실 어떤 때는 아들 녀석 말대로 어디 근사한 남친 하나 생겼으면 하고 소원을 갖다가도 금세 연애의 과정이 귀찮다 여겨지며 도리질을 하고는 그럴 때마다 인간은 누구나 이 땅에 태어난 이상 외로운 존재라고 외로움은 숙명이라고 둘이 있다고 외롭지 않은 건 아니야 하고 중얼거리는 갈팡질팡의 내 모습을 발견한다.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 이소라의 '바람의 분다'를 연거푸 5번째 듣고 있다. 좋아하는 음악을 연속으로 듣는 습관이 있는데 요즘은 이소라의 이 노래와 권진아의 'Lonely night'를 셀 수 없이 듣고 있다. 모두 '슬기로운 의사생활'에 수록된 ost이다.
첫사랑이랑 명동에 클래식 음악감상실에 갔던 생각이 떠오른다. 이별 후 들었던 김현식의 노래도 떠오른다. 3,40대에만 해도 길에서 우연히 한번 만났으면 싶었는데 이제는 혹시 만날까 두렵다. 첫사랑의 추억은 가슴속에 간직한 채 묻어 두는 것이 더 아름다운 일 아닐까. 앳된 소녀 같은 20대로 열정 가득했던 청춘으로 첫사랑 -그의 가슴에 남고 싶은 건 나의 지나친 욕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