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랑 샌드위치 하나 하실래요?

by 예쁜손

밥 먹기 싫을 때 가끔 우리 동네 새로운 명물 명일당에 들러 리코타 치즈 샌드위치를 사서 그걸로 점심을 대신하곤 한다. 바게트 안에 바질 소스와 발사믹 소스 그리고 로메인과 토마토 사이에 견과류와 리코타 치즈를 듬뿍 넣어 만든 샌드위치는 먹을수록 묘한 맛의 신세계를 경험할 수 있어 즐겨 찾는다. 더욱이 이스트 대신 천연 효모로 빵을 발효하고 설탕과 버터를 첨가하지 않은 저온 숙성한 빵은 평소 건강한 먹거리에 관심을 가진 내게 매력적인 식사 대용 빵이다.

주로 아침에 통밀로 만든 빵을 먹는데 오늘은 아침을 밥으로 든든히 먹어서 점심은 간단하게 샌드위치로 해결하려 명일당의 늦은 오픈 시간에 맞춰 집을 나섰다. 장마철이라 요즘은 햇볕 보기 힘든 흐린 날이 많다. 수시로 예고 없이 뿌리는 비에 작은 우산을 챙겼다. 샌드위치 하면 명희 씨의 에그 포테이토 샌드위치가 내가 머리털 나고 먹어본 샌드위치 맛 중 최고인데 여름철엔 카페에서 샌드위치를 판매하지 않아 조금 아쉽다.

습도 높은 대기가 후덥지근하니 좀 불쾌하지만 그래도 간간히 부는 바람이 있어 아직은 더위가 참을만하다. 동네라도 갖춰 입고 나가는 편인 나인지라 꾸민 듯 안 꾸민 듯 데님 스커트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블라우스를 받쳐 입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얼굴을 마스크와 선글라스로 가리고(ㅋㅋ) 명일당으로 고고씽~~~

친구들의 나에게 갖는 선입견(?)과 달리 난 한식을 좋아하고 별로 음식에 까탈스럽지 않게 소박한 음식을 좋아한다. 청국장, 감자탕, 순댓국, 추어탕, 콩비지 찌개, 된장찌개 등을 좋아하는 무난한 입맛의 토종 한국인이다. 이런 나에게 단 한 가지 까다로운 맛은 가끔 식사 대용으로 먹는 샌드위치의 맛을 고르는 나의 입맛이다.



결혼초 남편의 도시락으로 샌드위치를 여러 번 싸준 적이 있다. 바게트 빵에 양상추, 토마토, 햄. 치즈나 달걀 스프레드를 넣어 꽤 자주 싸주었다. 신혼 몇 년간의 일이다. 이상하게도 사이가 그나마 좋았을 때는 더 빈번히 싸웠는데... 마음에 빗장을 걸게 되니 싸울 일도 없고 우리 사이엔 침묵만 무겁게 감돌았다.

아들이 어릴 적엔 종종 간식으로 만들어줬는데 아이도 독립하고 나 혼자 먹겠다고 재료 구입해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는 게 비용과 시간이 더 들게 되면서 만들지 않았다. 그 대신 먹고 싶을 때에 베이커리에서 가끔 구입해 먹는데 항상 2% 부족한 맛을 느꼈는데 명희 씨 카페에서 파는 명희 씨가 만든 샌드위치나 '명일당'이라는 우리 동네 빵집에서 파는 샌드위치에서는 화려함은 없지만 사랑 가득한 엄마표 맛이었다. 나에게 흡사 고향의 맛 같은 느낌. 신혼초 서툰 솜씨로 낯선 이국 땅에서 만들어 먹던 그때가 떠올랐다.



묵직한 나무 문을 밀고 명일당으로 들어간다. 두, 세 사람 매장에 들어서면 꽉 차는 초소형 아주 작은 가게 진열대에 치아바타, 호밀빵, 통밀 식빵, 샤워 도우, 바게트, 크로와상, 에그타르트, 스콘, 브라우니 등이 바구니에 담겨있다. 단맛보다는 담백한 맛을 선호하는 나는 주로 통밀빵이나 샌드위치를 사는데 오늘은 점심 식사용으로 리코타 치즈 샌드위치를 주문했다.(이곳의 샌드위치는 주문과 동시에 즉석에서 만들어 준다.)

가끔 들르는 곳이지만 거의 매번 같은 빵을 사가는 나를 기억하시는지 반갑게 웃으며 인사하신다. 아줌마들 특유의 친화력으로 사장님과 주문한 샌드위치가 만들어지는 5분 남짓을- 빵 이야기에 날씨 이야기 그리고 블라우스가 내게 잘 어울린다는 사장님의 기분 좋은 칭찬까지 덤으로-폭풍 수다를 떨었으니 모르는 남들이 보면 못해도 10년 지기는 된 사이로 보였을 것이다.

나를 가두던 틀에서 벗어나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와진 나는 요즘의 내가 좋다. 환경과 여건은 달라진 것이 없는데, 아니 어쩌면 코로나 이후 사는 형편은 더 나빠졌고 얼굴에 주름은 더 늘었지만 수더분하게 늙어가는 내 모습이 좋다. 경직되고 자기가 보고 싶은 부분만 보려 하는 고집스러운 사고 대신 상대의 입장과 마음을 헤아리려 하는 유연함이 커졌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르겠다. 늦게라도 철이 들었으니 참으로 기특하다.



세차게 내리는 소나기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가슴속이 시원하다. 준비된 나의 소박한 점심식사를 앞에 두고 일용할 양식을 주신 신께 감사 기도를 드린다. 잘 차려진 만찬은 아니어도, 같이 먹어 줄 사람이 곁에 없어도 맛있는 샌드위치 한 조각과 살아있는 미각이 나를 잘 익은 행복으로 이끈다.

"카톡" 아들 녀석이 "엄마 좋은 하루 보내세요~♡" 하고 덤으로 하트까지 꾹 찍어 보냈다. 멀리 있어 자주 보지는 못하는 아들이지만 언제나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나와 함께 하는 아들. 그 든든한 존재에 가슴이 따뜻해진다.


거짓말처럼 거세게 쏟아지던 비가 멈추고 구름 사이로 해가 나왔다. 오늘의 변화무쌍한 날씨가 우리네 삶과 닮아있다. 오늘 평온하면 감사함과 겸허한 마음으로 일상을 즐기며 또 다른 먹구름과 비바람 치는 하루를 마주 할 때는 언젠가는 다시 떠오를 태양을 고대하며 그 또한 지나갈 것임을 믿으며 감사하면 될 것이다. 기쁨과 빛은 고통과 어둠이 있기에 더욱 빛나는 것임을, 그 변하지 않는 진리를 소나기 걷힌 하늘을 보며 마음에 새긴다.



저랑 샌드위치나 하나 하실래요? 매일 먹는 밥이 먹기 싫은 날, 특식이 필요한데 주머니가 가벼운 날. 삶이 무료하고 심드렁한 날. 짜증 나게 외로운 날. 맘에 드는 이것저것 속재료를 입맛대로 취향대로 넣어 만들어 보세요. 저는 오늘 적당한 긴장감과 유쾌함과 상냥함을 소스로 행복과 평안과 감사를 버무려 소박하고 건강한 샌드위치를 완성했습니다. 여러분의 레시피엔 어떤 것을 넣고 싶으세요? 입맛대로 넣어 보세요! 오늘의 셰프는 당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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