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이름으로 속박하지 않기.

by 예쁜손

동생의 안색이 안 좋다. 눈은 허공을 보는데 눈가가 눈물이 맺혀있다. 이 시기는 1년 동안의 아이들의 학교생활과 교과과정 평가가 이루어지는 때이다.

작은 아이의 생활 평가서를 내게 내민다. 집중력, 학습태도, 성취감, 자존감, 교과 성적, 학습 환경 모두 낮은 상태이다. 동생은 이 중에서 낮은 학습 환경에서 목이 메었던 것 같다. 나름 아이들을 위해 맞벌이를 하는 것도 그렇고 항상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서 노력하고 공부하는 엄마였으니 그 허탈감은 클 것이다.

조카는 중학교 1학년 사내아이로 코로나로 등교를 못 하면서 온라인 수업하다 자연스레 게임중독에 빠진 케이스이다. 스스로 당연히 통제할 수 없는 상태라 상담 선생님의 도움을 받고 있었고 당연히 부모의 고민거리였는데 막상 학교서 보내온 통지서로 직접 확인을 하니 속상함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천성은 밝고 다정하고 예의 바른-눈에 넣어도 안 아픈 아이다. 조카는 식물과 곤충, 동물을 좋아하는 소년이다.

마음 아파하는 동생에게 아이들은 여러 차례 변한다는 얘기와 아이의 적성을 찾아 동기를 부여해주면서 기다려주자고 위로했다.

지 엄마와 이모의 속상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조카는 제 방에서 해맑게 만화책을 보고 낄낄 거려 우리는 마주 보고 어이없어 피식 웃었다.



막상 나도 동생을 위로하고 조카를 보고 느긋하게 웃었지만 아들의 학창 시절, 내가 학부모이던 시절에는 여유롭지만은 않았다.

남편은 밖으로 돌고 나는 남편과 나와의 어그러진 사이에 대한 보상심리로 아이를 더 다그쳤다. 아이가 내 기대대로 반듯이 자라 주는 것만이 아니- 정확히 표현해 사회적으로 그럴듯한 대학과 직업을 갖게 뒷바라지하는 것만이 남편에게서 받지 못한 사랑을 보상해 줌과 동시에 혼자서도 아들을 이만큼 키웠다는 자부심, 자긍심일 거라 생각했다

나는 엄마의 역할이 처음이었고 감정적으로 불안했으며 아들은 나의 기대를 충족시킬 만큼 영리했다.

그렇다고 나의 이기심만은 아니었다. 그때는 철석같이 아들의 미래를 위한 길도- 경주마가 앞만 보고 달리듯이 조금이라도 먼저 나가 결승점에 빨리 도달하는 것이 아이의 인생에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건 하나의 신념이 되었다.

아들은 순하고 착한 아이였다. 얼마 동안은 엄마의 기대에 부응하려 노력을 했지만 억지로 보여주기 식 공부는 한계가 있었고 세상일이 그러하듯 자식일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처음엔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아이한테 화를 내기도 달래기도 그런 아이의 마음을 돌리려 교육심리에 관련한 책을 섭렵하기도 했지만 허사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리석었다. 부모의 불화를 유아 때부터 보고 자란 아이의 마음, 정서를 먼저 다독여 주었어야 되었는데, 마음의 토양이 건강치 못한 아이에게 공부만 강요했으니 아이는 항상 시험에 대한 공포감이 있었다.

그래도 그 순간에는 남편과의 관계가 극에 달했을 때라 아이 마음을 헤아리고 살피기보다는 내 마음의 생채기에 더 집중하고 고통스러워했다.



학창 시절 내내 나는 아이의 성적표에 마음이 오르락내리락하기를 반복했다. 부끄럽게도 그 당시에는 아이의 존재 자체로 사랑해 주지 못한 미숙한 엄마였다.

무언가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낄 무렵 암이 찾아왔고 아이에 대한 나의 개입은 거기서 멈추게 되었다... 큰일을 겪으니 삶에서 무엇이 소중한 가치이고 우선순위인지가 보였다. 내가 비로소 철이 든 것이다. 나는 아들에게 사과를 했다.


나는 아들의 중ㆍ고교 시절을 제외하고 그 후로는 일체의 잔소리를 끊었다. 아이의 학창 시절 아이를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려는 조언이나 충고도 아이의 귀에는 여전히 쓸데없는, 불필요한 소리로 들린다는 것을 변화하지 않는 아들을 보며 알 수 있었다.

인생의 선배로 아이만은 웅덩이나 자갈밭길을 피해 걷게 해 주고 싶은 마음에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면 무엇하랴. 본인이 직접 경험하고 체득하여 앞으로의 갈길은 알아서 결정하게 하는 게 먼 인생길을 봤을 때 아이의 자생력을 높이는 길일 것이다.

그냥 믿어주면 믿어준 만큼 자란다. 위태롭고 엉성한 걸음걸이라도 자기 스스로 땅에 발을 디디고 앞을 보고 걷기도 때로는 길을 잘못 들어 헤맬지라도 그 아이의 소중한 선택을 존중해 주는 것이 진정 아이를 사랑하는 길이라고 여겨진다.



아들은 내 걱정과는 달리 아주 독립적으로 잘 자라줬다. 부드러운 성격과는 달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도 스스로 잘 헤쳐나갔다.

혹 실수하고 위태롭게 보여도 나는 아이에게 쉽게 충고라는 이름으로 잔소리하지 않는다. 아이는 죽을 때까지 나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된 사랑의 존재임은 분명하지만 아이가 성장한 이상 엄마로부터 독립되고 분리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이를 사랑한다는 명목 하에 내 생각을 강요하거나 부담을 지우게 하고 싶지는 않다.

더 큰 사랑은 울타리에 가두는 게 아니라 자유롭게 비상하게 놓아줘야 되는 것 아닐까.



"진정은 됐니?"

동생에게 물었다. 동생이 씩 웃는다. 쿨한 그녀는 그녀 나름의 아들에 대한 계획을 고심 중이다. 그녀 생각은 공부를 잘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적성을 찾아 주려해도 지금의 학습태도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게임중독부터 바로 잡겠다고 한다.

잘 생각했다고 격려해줬다. 현명한 그녀는 이미 아이는 자기 소유물이 아니고, 아이가 다 자랄 때까지만 잘 자라도록 물을 주고 지지대를 대 주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비록 나는 그녀보다는 뒤늦게 깨달았지만 나는 느낄 수 있다. 아들과 내가 태초부터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된 것은 맞지만 때가 되면 자식은 놓아주어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것이 더 큰 사랑의 힘이라는 것을.



사랑은 무엇일까? 사랑의 품은 저마다 다르다. 어미와 자식과의 사랑은 본능적이다.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하지만 그것이 부모라는 이름으로 아이의 생각을 지배하려 든다면 그건 이미 사랑이 아닌 자기 이기로 변질된다. 아이들이 잘 성장할 때까지만 보조자의 역할을 해주는 것이 부모의 몫이다. 사랑할수록 집착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상대를 봐줄 것. 이것은 부모 자식 간의 사랑뿐만 아니라 남녀 간의 사랑도 마찬가지 아닐까.

이제야 비로소 철들어 가는 아줌마가 자신을 돌이켜보며 씁쓸히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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