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임 리터러시 : 열 두 번째 이야기
11년 전, 서울을 대표하는 디자인문화복합공간 DDP가 개관했다.
그곳에서 나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디자이너, 언론인, 기업인, 교수…
명함을 주고받고, 짧은 인사를 나누는 순간들이 쌓여갔다.
그 인연들 중에는 이제 국내를 넘어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이들도 있다.
요즘 가장 주목받는 기업의 대표가 된 사람,
세계적인 전시를 이끄는 디자이너, 고인이 된 교수님 등
그들에게 나는 스쳐가는 인연일 뿐일지 모르지만,
나는 여전히 그들의 얼굴과 목소리를 기억한다.
반대로, 내가 오래도록 잊고 있던 얼굴도 있다.
몇 해 전, 한 행사장에서 한쪽에 조용히 서 있던 한 사람.
그는 그저 평범해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TV 속에서 다시 만난 그는
이제 많은 사람들에게 핫한 인물이 되어 있었다.
그 순간, 마음 한쪽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그때 조금 더 따뜻하게 말을 걸었다면,
아니, 그저 관심 어린 눈빛을 한 번 더 보냈다면 어땠을까.
문득 떠오른 이야기가 있다.
세계적인 작가 J.K. 롤링이 무명 시절 글을 쓰던 작은 카페.
카페 주인은 그녀에게 따뜻한 커피와 함께 이렇게 말했다.
“언젠가 당신이 쓴 책을 꼭 읽어보고 싶네요.”
그 말은 단순한 친절이었지만,
몇 년 뒤 해리포터가 전 세계를 휩쓸었을 때,
그 카페는 ‘해리포터가 태어난 곳’으로 알려졌다.
작은 친절이 세상을 놀라게 한 꽃이 된 순간이었다.
인연을 소홀히 해 잃어버린 기회의 이야기도 있다.
애플이 이제 막 걸음마를 떼던 시절,
스티브 잡스와 워즈니악은 투자를 받기 위해 벤처캐피탈리스트를 찾아갔다.
그 투자자는 그들의 작은 전자기기 회사가 성공할 리 없다고 판단하며 거절했다.
몇 년 후, 애플은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기업이 되었지만,
그는 그 기회를 두 번 다시 잡을 수 없었다.
처음 만난 인연을 가볍게 여겼던 대가였다.
오늘 아침, 지하철 안에서 이 두 이야기를 곱씹는다.
창밖은 보슬보슬 비에 젖어가고,
열차 안에는 무수한 표정들이 흐른다.
책장을 넘기는 손, 졸음에 고개를 떨군 사람,
휴대폰 화면 속 세상에 몰두한 시선들.
겉으론 아무 일 없는 듯 보이지만,
이 속엔 각자의 우주가 숨 쉬고 있다.
누군가는 오랜 꿈을 세상에 보이기 위해 도전하며
누군가는 막연한 미래와 씨름하며 생각에 잠긴다.
사람을 겉모습으로 가늠하는 건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별이 몇 개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많은 별들이,
아직 빛을 발하지 않은 채 숨 쉬고 있다.
그래서 오늘, 나는 다짐한다.
스치는 인연에게도, 익명의 얼굴에게도
조금 더 부드러운 시선을 건네자고.
누군가의 가능성은,
때로는 가장 평범한 옷을 입고
우리 곁을 지나가니까.
그리고 그 별은,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순간에
세상을 환히 밝힐 테니까.
그리고 나 역시,
그저 평범한 오늘 .
조용히 40대 후반에도 오래된 꿈을 도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