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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취미는 비밀

묻지 않아도 좋은 취미, 말하지 않아 더 소중한 나의 일상

by 정린

앙케이트의 시대에서


초등학교 때,

공책에 ‘앙케이트’라는 제목을 붙여 페이지마다
“이름, 성별, 별명, 취미, 특기, 혈액형, 좋아하는 연예인, 좋아하는 꽃” 같은 질문을 써서 친구들과 주고받던 기억이 있다.
서툰 글씨로 빼곡히 채운 그 공책은,

서로의 취향을 나누던 유년의 우정 노트였다.

‘앙케이트(アンケート)’란?

원래 프랑스어 enquête에서 온 말로, ‘조사, 탐문’이라는 뜻입니다.

일본에서는 이 단어를 설문조사나 질문지라는 뜻으로 사용했고,
우리나라에서도 같은 말로 전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요즘은 ‘설문지’, ‘자기소개서’ 같은 표현이 익숙하지만, ‘앙케이트’라는 단어엔 왠지 모를 아날로그 감성이 살아 있습니다.


주말에 뭐 하세요?


요즘은 주말에 뭘 하냐는 질문을 가끔 듣는다.
의도는 두 가지쯤 된다.
“너 같은 사람은 주말에 뭘 해?”
혹은
“재밌는 주말 꿀팁 없어?”

호기심일 수도 있고, 정보 탐색일 수도 있다.
전자는 나란 사람 자체에 대한 관심,
후자는 재미있는 콘텐츠를 찾는 마음 정도일 것이다.

나의 취미는 ‘쓰기’다.


첫 번째는 캘리그라피.
붓으로 시작해 자격증도 따고,

공방에서 작업하는 분들과 전시도 했다.
얼마 전엔 처음 나간 공모전에서 특선과 입선을 받았다.

두 번째는 글쓰기.
작년 2월, 50일 글쓰기 챌린지에 참여했던 것이 시작이었다.
올해는 1월부터 매일 130일 넘게 써왔다.

물론 며칠 빼먹긴 했다.^^

이 두 가지 쓰기를 바탕으로

지금은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있다.
직접 찍은 사진, 직접 쓴 캘리 글제목,

그리고 내 손으로 채워 쓰는 나의 하루.
둘 다 초보지만,

시간과 노력은 배신하지 않으리라 믿는다.



나만의 조용한 기쁨


친한 친구들에겐 배운 것들을 사진으로 공유하고,
재능 있는 친구에겐 배우라고 권하기도 한다.
하지만 직장 사람들에게는

"주말엔 집안일로 바빠요"라고 둘러댄다.

왜냐면,
취미도 개인정보인 시대니까.

누군가의 입에서 나의 취향이 소비되는 것이 싫고,
무관심한 사람에게 내 일상을 굳이 설명하고 싶지도 않다.
누구에게 잘 보이기 위한

'진상품용 취미정보'를 전할 이유도 없다.
“그냥 늘 하시는 술, 담배로

사내정치나 취미로 하세요.”라고 말하고 싶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
말 한마디, 사진 한 장도

맥락 없이 회자되는 좁은 세계 속에서
취미 하나쯤은 숨겨야 마음이 편하다.

가끔은 씁쓸하다.
그 많던 앙케이트를 거리낌 없이 써주던 시절엔,
취향을 나누는 게 자유로움이었는데,
이젠 경계가 일상인 정글 속에서

취미조차 먹잇감이 될까 봐 감추게 된다.

그래도 어쩌랴.
순진하게 '취밍아웃' 했다가는 내 행적들이

누군가의 입에 오르내릴 수 있다.


나의 주말, 나의 즐거움을 조용히, 소중하게 지켜내자.

그러니 지금 이 글도 ‘비밀 취미’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
무려 나의 비밀을 공유한 ‘친구’이다.





여러분의 비밀 취미는

무엇인가요?

혼자만 아는 재미있는 시간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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