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록수에서 정린으로
아호(雅號)는 본명과 별개로 문인, 학자, 예술가들이 따로 짓는 이름이다.
단순한 별명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과 철학을 담아 짓고, 활용하는 이름이다.
이름은 부모가 지어주는 것이지만, 아호는 내가 선택하고 결정하는 이름이다.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이름과 달리, 아호는 필요할 때 직접 만들 수 있다.
2월 27일, 나는 아호를 정했다.
브런치 작가 이름도 오래도록 써온 닉네임 ‘상록수’에서 ‘정린’으로 바꾸었다.
이메일 계정도 새로 만들었다.
‘상록수에서 정린으로’라는 의미를 담고 싶어 evergreen_junglin을 원했지만, 길어서 e_green_junglin으로 정리했다.
아호를 문의한 지 한 달여 만에 네 가지 대안을 전달받았고, 며칠을 고민한 끝에 하나를 골랐다.
사주, 원래 이름, 그리고 아호를 짓는 이유까지 고려해 정성스럽게 지어진 이름이다.
이제 나에겐 이름도 있고, 닉네임도 있고, 아이디도 있고, 그리고 아호까지 생겼다.
이름을 지어주신 선생님이 요즘 아호를 의뢰하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했다.
여러 직업과 정체성을 갖게 되는 시대, 그리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신을 알리는 일이 쉬워진 덕분일까.
자신을 더욱 주체적으로 정의하고, 표현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아진 시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아호는 낙관을 만들기 위해 필요했다.
이왕 오래도록 활용할 아호라면,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싶었다.
설 연휴 전에 아호를 의뢰했지만, 그사이 많은 일이 있었다.
그때는 생각하지 못했던 브런치 작가 도전을 결심했고, 이곳에서 연재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연재글을 발행하는 법을 몰라 연재 소개만 만들고 첫 발행 날짜를 미뤄야 했다.
결국, 아호가 지어진 후에야 비로소 첫 발을 내딛게 되었다.
이게 다 때가 있어서였을까?
또 하나의 나를 지칭하는, 새로운 이름으로 연재의 첫걸음을 뗀다.
정린(鼎粼, 솥ㆍ세발솥 정 + 물 맑을 린)
"물처럼 맑은 기운을 지니고 여러 사람과 어울려 뜻을 이루어 나아가는 형세."
넘어지지 않도록 발이 세 개 달린 솥처럼,
이곳에서 글을 쓰는 이들에게 맑은 마음을 담아 글밥을 나누고 싶다.
시간을 내어 내 글을 읽어주는 분들에게,
맑고 따뜻한 한 그릇을 대접하는 마음으로 글을 써야지.
"정린."
나의 또 다른 이름.
반갑다.^^
#브런치북 취향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