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때 키우던 아지는 내 건강상의 이유로 남의 집에 파양 했고,
지금의 아지는 내 일 때문에 부모님께 맡겨야 했어.
아니다.
내 일 때문에 부모님께 파양 했다는 말이 더 정확하겠다.
나보다 부모님이 더 오래 너를 돌봐주셨으니까.
초등학생 때는 어쩔 수 없었다 치고
맞아, 두 번째는 내 욕심 때문이야.
ㅡ
그런데 내가 부모님께 널 보내던 그날,
내가 직접 부모님 댁으로 너와 함께 가서 헤어진 게 아니라
부모님이 우리 집으로 찾아와서 너를 데려갔었잖아.
내가 일을 간 후에 엄마한테 물어봤지.
“아지 잘 있어?”
“아니, 얘 우리집 누구한테도 마음을 안 열어.
불안해하는 거 같아.
내가 얘를 너한테서 강제로 떼놓았다고 생각한 모양이야. “
나는 그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어.
나는 네가 부모님 집을 간 적이 있으니까,
네게 낯선 환경일 거라는 생각을 못 했었거든.
그런데 너는 엄마라고 부르는 나 없이
그 긴 밤을 며칠이나 보냈어야 했으니
얼마나 무서웠겠어?
ㅡ
내가 일을 마치고 부랴부랴 집에 간 날,
너의 꼬리는 헬리콥터처럼 흔들리다 못해
어디론가 날아가버리는 줄 알았어.
그때 나는 또 생각했지.
’내가 책임지지도 못할 일을 벌였구나.‘
‘또 다른 아지에게 상처를 줄 일을 만들었구나.’
ㅡ
내가 일 때문에 집을 떠날 기미를 보일 때마다
너는 항상 한 발로 내 발을 밟고 가지 못하게 했어.
아니면 내 다리 위에 앉아 일어설 수 없게 만들었지.
너를 두고 집을 나설 때마다
미안함에 눈물도 많이 흘리고
보고 싶어서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기도 했어.
네가 나와 함께 할 시간을 기다리듯
나도 그건 마찬가지였으니까.
ㅡ
나는 그럴 때마다 이런 생각을 했던 거 같아.
물론 네가 나에게는 강아지 그 이상이지만,
만약 네가 내가 낳은 자식이었다면 얼마나 더 마음이 아팠을까 하고.
그리고 자식을 두고 일터에 나간 부모들의 마음을
너를 통해 이해할 수 있었던 거 같아.
왜 일터에서 아이의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는지,
왜 틈날 때마다 전화해서 아이의 안부를 묻는지.
ㅡ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내게
책임감 없는 견주라고 손가락질해도 감내할 수 있었어.
내가 감내하지 못했던 건
너를 슬프게 만든 나의 행동일 뿐.
그래도 모든 건 시간이 해결해 주더라.
너는 엄마집에서 사는 걸 적응했고
우리 엄마도 널 정-말 좋아하게 되었잖아.
너도 그런 마음을 알았는지
둘이 죽고 못 사는 사이가 되어버리지 않았니?
결국 해결되지 않은 건
부모님 집을 나설 때마다 느끼는
내 복잡한 마음뿐이었지.
이제 나는 너와 두 번 다시 함께 살 수는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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