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무지 Jan 03. 2024

또다시 파양 한 책임감 없는 견주

초등학생 때 키우던 아지는 내 건강상의 이유로 남의 집에 파양 했고,

지금의 아지는 내 일 때문에 부모님께 맡겨야 했어.


아니다.

내 일 때문에 부모님께 파양 했다는 말이 더 정확하겠다.

나보다 부모님이 더 오래 너를 돌봐주셨으니까.


초등학생 때는 어쩔 수 없었다 치고

맞아, 두 번째는 내 욕심 때문이야.


그런데 내가 부모님께 널 보내던 그날,

내가 직접 부모님 댁으로 너와 함께 가서 헤어진 게 아니라

부모님이 우리 집으로 찾아와서 너를 데려갔었잖아.


내가 일을 간 후에 엄마한테 물어봤지.

“아지 잘 있어?”


“아니, 얘 우리집 누구한테도 마음을 안 열어.

불안해하는 거 같아.

내가 얘를 너한테서 강제로 떼놓았다고 생각한 모양이야. “


나는 그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어.

나는 네가 부모님 집을 간 적이 있으니까,

네게 낯선 환경일 거라는 생각을 못 했었거든.


그런데 너는 엄마라고 부르는 나 없이

그 긴 밤을 며칠이나 보냈어야 했으니

얼마나 무서웠겠어?


내가 일을 마치고 부랴부랴 집에 간 날,

너의 꼬리는 헬리콥터처럼 흔들리다 못해

어디론가 날아가버리는 줄 알았어.


그때 나는 또 생각했지.

’내가 책임지지도 못할 일을 벌였구나.‘

‘또 다른 아지에게 상처를 줄 일을 만들었구나.’


내가 일 때문에 집을 떠날 기미를 보일 때마다

너는 항상 한 발로 내 발을 밟고 가지 못하게 했어.

아니면 내 다리 위에 앉아 일어설 수 없게 만들었지.


너를 두고 집을 나설 때마다

미안함에 눈물도 많이 흘리고

보고 싶어서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기도 했어.


네가 나와 함께 할 시간을 기다리듯

나도 그건 마찬가지였으니까.


나는 그럴 때마다 이런 생각을 했던 거 같아.


물론 네가 나에게는 강아지 그 이상이지만,

만약 네가 내가 낳은 자식이었다면 얼마나 더 마음이 아팠을까 하고.


그리고 자식을 두고 일터에 나간 부모들의 마음을

너를 통해 이해할 수 있었던 거 같아.


왜 일터에서 아이의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는지,

왜 틈날 때마다 전화해서 아이의 안부를 묻는지.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내게

책임감 없는 견주라고 손가락질해도 감내할 수 있었어.


내가 감내하지 못했던 건

너를 슬프게 만든 나의 행동일 뿐.


그래도 모든 건 시간이 해결해 주더라.


너는 엄마집에서 사는 걸 적응했고

우리 엄마도 널 정-말 좋아하게 되었잖아.


너도 그런 마음을 알았는지

둘이 죽고 못 사는 사이가 되어버리지 않았니?


결국 해결되지 않은 건

부모님 집을 나설 때마다 느끼는

내 복잡한 마음뿐이었지.

이제 나는 너와 두 번 다시 함께 살 수는 없는 걸까?


이전 04화 엄마가 나를 외면한 그날의 악몽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