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일 사이, OFF가 조금이라도 길어질 때면
나는 항상 너를 보러 지하철에 몸을 실었어.
일 때문에 몸은 천근만근 무거웠지만
네게 가는 발걸음만큼은 깃털처럼 가벼웠지.
일분일초라도 빨리 집에 가고 싶어서
내 발은 종종걸음을 하거나
뛰기를 반복했어.
지하철은 그런 내 마음을 일분도 이해해주지 않았어.
급행열차는 코앞에서 떠나가고
일반 열차는 평상시보다 유난히 느린 것 같은 조급한 마음을 괜스레 들게 했거든.
그뿐인가?
환승하는 구역마다 벽면에
‘뛰지 마세요!’, ‘여기서부터 뛰어도 이미 늦었어요!’
따위의 문구로 내가 지하철을 놓칠 거라는 공포감이나 형성 안 하면 다행이었어.
그렇게 나는 매번 지하철과의 전쟁을 치르고
무사히 생존하여 너에게로 도착했지.
“생존 신고합니다!
도무지! 이번에도 안전한 비행을 마치고
집으로 복귀 완료!“
ㅡ
그거 아니?
나는 발이 답답한 걸 정말 싫어해.
그래서 여름에는 운동화를 신는 법이 없어.
무조건 크록스.
겨울에도 털이 달린 슬리퍼를 가장 애용하지.
그런 내가 집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하는 행동은 신발을 벗자마자 양말까지 집어던지는 일이었어.
ㅡ
그런데 집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하는 행동이
너를 만나고서부터는 달라졌어.
내가 집에 도착해 비밀번호를 누르는 순간,
대문으로 나를 환영하러 달려오는
타닥타닥 소리의 그 발걸음.
내가 문을 열면 그 누구보다 환하게 웃고
온몸을 비틀며 기쁨을 감추지 못한 그 얼굴.
이산가족을 상봉하는 사람과 다를 바가 없었어.
나는 항상 그런 너를 상상하며 비밀번호를 눌렀지.
그래서일까,
이제는 신발을 벗고 양말을 벗는 게 아니라
네 얼굴을 쳐다보는 게 우선이 되어버렸어.
너를 안고 잘 지냈냐는 안부를 물으면
뽀뽀를 참 싫어하는 너인데도
그 순간에 백만 번의 뽀뽀로 화답했지.
그리고는 내가 다시 그 집을 떠날 때까지
내 옆에 붙어서 한시도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어.
그러니 내가 어떻게 너를 두고
마음 편히 오갈 수 있었겠어.
ㅡ
그런데 말이야,
갑자기 전 세계에 팬데믹이 찾아왔네?
그건 바로 코로나19.
엄청나게 길고 긴 대공황이었어.
나는 갑자기 휴직 명령이 떨어졌어.
당황함 속에 내가 가장 먼저 찾은 건 바로 너였지.
‘와!!! 드디어 아지랑 같이 살 수 있다!!!’
나는 내 전셋집에 너를 데려와 함께 지내기도 하고
부모님 댁에 너를 데려가 온 가족이 함께 있기도 했어.
그런데 코로나가 끝나면,
나는 또 일상에 복귀할 거고
그럼 또 너와 헤어지는 레퍼토리가 반복될 텐데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는 게
네 정서에 괜찮을까?
아니, 일단 내가 다시 일을 하기 이전에
너와 좋은 추억들을 쌓는 게 먼저일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간 우리에게 행복한 시간이 너무 조금 주어졌었잖아.
그래서
내가 너와 갖게 된 그 시간들은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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