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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무지 Jan 08. 2024

하루 19시간을 함께한 그날의 추억

코로나19로 너와 함께 살게 되면서

참 많은 시간들을 보냈는데,


코로나 때문에 밖에 돌아다니지 못한 탓인지

혹은

내가 다른 것에 눈길을 돌려 너를 바라보지 않았던 것인지


생각처럼 기억나는 일들이 많이 없는 것 같아.


내가 그때도 기록하는 습관을 지녔었다면

우리의 이야기가 한층 깊었을까?


네가 내 자취방에서 함께 했던 날들을

추억해 보려고 해.


네가 우리집에서 지낼 때는

내가 난생처음으로 멋진 몸을 만들겠다며

헬스장을 하루에 3번씩 출근 도장을 찍었었어.


하루에 5시간씩 운동에 투자했으니,

오고 가며 마주치는 헬스장 PT 선생님들이랑

인포랑도 말을 섞고 친해졌었지.


그러니 얼마나 체중을 감량했겠어?

네가 생각하기에도 그때 나 정말 대단하지 않았니?

아니다.


너는 그때 어땠어?

행복했어? 아니면 불행했어?


내가 운동을 가려고 옷을 갈아입으면

산책 가는 줄 알고 네 얼굴이 밝아졌었잖아.


현관문에서 신발을 신으면

나보다 먼저 앞에 서서

문에 몸을 붙이고서는

당장 뛰어나갈 태세를 보였지.


그런데 내가

‘아지야, 들어가!

지금 산책 가는 거 아니야.

나 운동 다녀와서 같이 가자.

집 잘 지키고 있어~‘

라고 하면

시무룩해진 표정과 축 쳐진 꼬리로

나를 배웅해 줬어.


너 그거 아니?

먹는 거까지가 운동이라고,

김종국과 헬창들은 그렇게 말해.


나는 그래서 운동이 끝나면

집에 와서 바로 밥을 먹어야 했어.


닭가슴살 한 덩이

혹은

계란 3개

그리고 손가락 3개 합친 크기의 고구마

발사믹 오일을 곁들인 샐러드


이렇게 지겹도록 삼시 세 끼를 먹었지.


네가 계란이라면 환장을 하잖아.

내가 닭과 관련된 음식을 만지기만 하면 난리가 났었어.

너는 닭 알레르기가 있어서 먹으면 안 되는데

빤짝거리는 눈으로 쳐다보면

쥐꼬리만큼이라도 안 줄 수가 없었지.


내 식단이 정말 콩알만큼 적은 양이지만

나는 콩 한쪽도 너와 나눠먹었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만 해. 알겠니?


살을 빼는 방법은 사실 모두가 알아.

그만큼 간단하고 실천만 하면 되지.


그건 바로,

덜 먹고 많이 움직이기.


그래서 나는 너와 함께 산책도 굉장히 많이 했었어.

나도 너도 활동량이 많아지니까

힘들어서 둘이 꼭 껴안고 잠도 정말 많이 잤었지.


그래서인지도 모르겠어,

우리 집에서 너와의 추억이 생각나지 않는 게.


나한테 그때 기억은 운동과 잠 이외에 없으니까.


나는 항상 네가 나를 기다린 거에 대한

미안함이 있었잖아.

그런데 이때 네게 미안한 점이 또 생겼었어.


내가 운동을 미친 듯이 하고

밥도 거의 안 먹는 탓에

신경이 예민해지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잖아.


특히 나는 먹으려고 사는 사람인데

먹는 게 극악무도하게 통제되어 있었으니까.


그래서 네가 내 말을 잘 듣지 않을 때면

네게 소리치고 무섭게 했었어.


너는 사람이 아니라 강아지인데.

너는 내 소유물이 아니라 너라는 존재 자체인데.


나는 정말 강아지를 키울 그릇이 못 된다는 걸

그때 다시 한번 깨달았지.


화를 내고서 매번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네게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다시 안아주고 예뻐해 줬지만

내 미안한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어.


그래서 난 네가 산책을 많이 해서 행복했을까

아님 내 화로 인해 불행했을까

그게 궁금해.


어쩌면 내가 너에게서 대답을 들을 수 없으니까

다행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만약 네 대답이 불행이었다면

나는 또 덧칠해진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야 할 테니까.


물론 그때 이후로 네게 같은 일을 반복한 적은 없어.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들었어.


내가 내 상황과 내 감정 하나 컨트롤하지 못하는데

나중에 아이를 낳아 잘 키울 수 있을까?


갓난아기는 울어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잖아.

하루종일 그 우는 소리를 들으면

아무리 내 자식이라도 스트레스를 받을 텐데,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과연 내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있을까

지레 겁이 나고 걱정이 되더라고.


나는 남들보다 상황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취약한 편이야.

마음이든 몸이든 여유가 없으면

다른 상황을 흡수할 여력이 없어져.


그래도 지금은 정말 많은 훈련을 통해

굉장히 좋아지고 발전했지만,

아이를 키우는 데 있어서는 적용할 수 있을지 미지수야.


그리고 너는 강아지잖아.

하는 행동이 거기서 거기일 수밖에 없는데,

사람은 예측이 불가해.


아직 결혼도 안 한 마당에

허튼 고민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너를 데려온 게 무책임한 행동이었듯이

앞으로 새로운 생명을 키우는 데 있어서 만큼은

‘더 이상 무책임하게 행동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해서

더 신중하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거 같아.


아지야, 만약 나에게 아이가 생긴다고 해도

그 아이와 함께 잘 지내줄 거지?


우리 다음에는 부모님 집에서 있었던 일을 추억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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