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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무지 Dec 29. 2023

약속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나 강아지 키우면 너도 같이 봐주는 거다? “


나는 같은 오피스텔, 같은 층에 거주하는 회사 동기가 있었어.


갑자기 그 동기가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하더라?

그런데 우리는 스케줄 근무라서 강아지와 함께 사는 일이 쉽지 않았지.

그래서 동기는 각자 스케줄에 따라 공동 육아를 하자고 했어.


나는 강아지를 너무 좋아하니까

덜컥 약속을 해버렸지.


동기는 강아지를 데려왔고

너무 사랑스럽고 자그마한 그 아이를

매일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


나는 동기 집 비밀번호를 알고 있었어.

그래서 강아지가 보고 싶다면

언제든지 문을 열고 들어가서

살랑이는 꼬리를 볼 수 있었지.


그런데 사실 명명백백히 따지자면,

그 강아지는 내 강아지가 아니잖아.


이름도 내가 지을 수 없었고

내 지갑을 열어 무언가 사줄 수도 없었지.

그뿐인가?

내가 만지고 싶을 때, 산책 가고 싶을 때 등등

그런 모든 순간 있잖아,

나한테 선택권은 주어지지 않았어.


허락이 필요했고 눈치를 봐야 했지.

그러니 나도 소유욕이 엄청나게 커지는 거야.


순간적인 판단으로 데려오면 안 되지만,

나도 결국 내가 키울 강아지를 데려왔어.


맞아,

그 강아지가 지금 이 책의 주인공 ‘아지‘야.


이름은 고민도 하지 않고 지었어.


이전 아지에 대한 일종의 죄책감을 덜기 위해서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이전 아지를 끝까지 기억하기 위해서라고 해야 할까?


평생 그럴 일은 없었으면 좋겠지만,

지금 내 곁에 있는 아지가 하늘로 가서

내가 또 다른 강아지를 곁에 둔다고 해도

그 강아지의 이름은 아지가 될 거야.


어쩌면 지금 하늘에 있는 아지가

나에게 이제 그만 미안해해도 괜찮다고

지금의 아지를 곁에 두게 한 건지도 모르겠어.

네 잘못이 아니라면서.


사람들이 강아지 이름을 물어볼 때마다

‘왜 그렇게 대충 지었어요?‘라는 말을 꼭 같이 해.


내가 아무리 사연이 있다고 말해도

내 마음을 알리가 없지.


결국 사람들이 사연이 뭐냐고 물어서

긴긴 이야기를 늘어놓으면

돌아오는 대답도 ‘별 거 없네’였어.


내게는 한 생명을 포기한 아주 슬픈 이야기였는데 말이야.

만약 강아지가 아니라 사람이었대도 같은 반응이었을까?


나랑 동기는 각자 스케줄에 맞춰 두 강아지를 돌봤어.

함께 쉬는 날에는 같이 산책도 가고,

강아지 둘이 이리저리 날뛰는 모습도

엄마 미소를 지으며 보면서 시간을 보냈어.


그런데 말이야,

갑자기 동기가 이사를 간다네?

우리 아지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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