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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무지 Dec 27. 2023

어쩐 일인지 그날은 엄마가 이상했다.

“오늘 친구들이랑 실컷 놀다가 와~“


내가 친구와 놀 때면 주어진 시간은 늘 1시간,

엄마는 내가 친구들과 노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어.


나는 친구들과 12시에 약속이 있으면

13시에 친구들과 헤어지는 게 아니라

친구들을 만나러 가고 집에 오는 시간을 포함해서

1시간을 놀아야 했어.


1분 1초가 아까웠던 나는

11시 59분에 뛰어나가 친구들을 만났어.

그리고 친구를 만나면 놀기 위한 장소로 이동하기까지

다 같이 죽어라 뛰었지.


그렇게 시간을 아끼며 놀던 나였는데,

어쩐 일인지 그날은 엄마가 이상했어.


‘실컷 놀다가 오라니?’

마음속에서 불편함이 올라왔지만

내게 자유가 주어진 게 그저 행복했어.


“아지야!

누나 친구들이랑 놀고 오면 놀아줄게!

이따가 보자! “


밝은 미소와 씰룩이는 엉덩이를 감추지 못하고

엄마의 말이 바뀔세라 문밖을 뛰쳐나왔지.


친구들이랑 백화점 시식코너도 돌고

캔모아에서 맛있는 음료수랑 빵도 먹었어.

놀이터에서 대장 놀이도 하고

모래성을 쌓고 다시 부수기를 반복했지.


‘노는 게 이렇게 재밌는 일이었나?’

라는 생각이 사라질 때까지

소리를 지르며 방방 뛰어다녔는데,

이제는 아지를 보러 가야 한다며

친구들에게 아쉬운 인사를 했어.


오늘은 실컷 놀 수 있는 날이라

집에 뛰어가지 않아도 괜찮은데,

아지가 나를 오래 기다릴 거 같아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이 빨라졌지.


“아지야~”


집에 도착하자마자 우리 아지 이름을 불렀어.


‘숨바꼭질을 하는 건가?‘

아무리 불러도 아지는 보이지 않았어.


“엄마, 아지가 없어! 어디에 숨었어? “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를 하고 있던 엄마는

나를 쳐다보지 않고 대답했어.


“아지는 없어. 다른 사람이 데려갔어.”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오열하기 시작했어.


나에게 자유시간이 주어진 건

아지를 보내기 위함이었다는 걸 깨닫고는

“나가지 말았어야 했다”

눈물을 멈출 수 없었지.


때마침 나처럼 자유 시간을 얻었던 언니도 집에 들어왔고, 언니에게 고자질을 했어.


나와 함께 울던 언니는

피자와 치킨을 사준다는 말에 눈물을 그쳤고,

“어떻게 아지가 그깟 먹을 거와 동등해!!!!!”

라고 언니에게 소리 지르며 배신감을 느꼈지.


엄마는 급기야 나를 데리고 쇼핑을 갔어.

내가 원하는 걸 사주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나 봐.


결국 나는 오른쪽 엉덩이에 반짝이는 별이 박힌 청바지 하나를 사가지고 들어왔어.


기분은 아주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지만

사실 나는 알고 있었어.


내가 계속 기침하기 때문에

아지는 나와 평생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을.


너와 떨어지게 될 날이 이렇게 빨리 오게 될 줄이야,

전혀 짐작하지 못했어.

그래서 나는 몇 날 며칠이고 눈물로 하루를 보냈지.


오른쪽 엉덩이에 반짝이는 별이 박힌 청바지는

내가 스무 살이 넘도록 버리지 못했어.


그 어린 시절 나는

청바지와 너를 바꾼 것 같은 죄책감을 느꼈거든.


내가 키가 자라고 몸이 커져서

이 옷을 입지 못해도

이 바지를 버리면 또다시 너를 버리는 것 같아서.


그렇게 나는 죄책감에 평생을 살아 아지야.

내가 그때 몸이 좋지 못해서 미안해.


지금은 수년이 흘러 하늘나라에 있겠지만

잠시라도 네 곁에 있던 나의 마음이

네게 가닿았으면 좋겠다.

아지야, 사는 동안 행복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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